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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안녕 Sep 19. 2024

나만 빼고 퇴사해18

중소기업 지역 청년 연쇄 퇴사 소설

태양은 회색빛 구름에 가려 빛을 잃고

세상은 그 깊은 시름 속에서 춤을 추네.


 바꿔


 이젠 다 바꿔


 그 모든 걸 바꿔


 거꾸로 돌아가는 이 세상을


 바꿔


 못돼먹은 욕심과


 그 어리석은 자존심을 포기해


 바꿔


 제 모습을 드러내봐


 금으로 발라놓은 가면을 깨뜨려


 바꿔


 사람 밑에 사람 없다.


 그리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


 


 성현은 탈주에 성공한 기쁨을 포효하며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하였다.


 


 “아니 그러면 누가 가져갔다는 소리야? 설마 신입이?”


  사무실에 있던 윤 대리와 곤 부장까지도 소식을 듣고 왔다.


 “공장장님. 이게 무슨 일이예요?”


 “아… 참나.”


 기풍은 골치가 아픈 얼굴이었다.


 “신입사원 한 명이 또 안 보인다는데요.”


 “이야… 첫날 출근해서 도주에 절도에…”


 “부장님,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윤 대리, 신고는 무슨? 일을 크게 만들려고 작정했어?”


 “CCTV도 없으니 증거 확보도 할 수 없잖아.”


 그때 탑차 기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네? 탑차가 와 있다고요?


 천 공장장과 곤 부장, 윤 대리는 어리둥절하면서 놀라운 눈으로 기사를 쳐다보기만 했다.


 - 아니 박기사님은 다른 일이 생겨서 자기가 몰고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박기사님한테 전화 한 통 넣으래요.


 


 곤 부장은 긴급 회의를 소집하였고 윤 대리, 인오, 하진, 진성, 상준이 모였다.


 “오늘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막걸리 공장에 CCTV가 있어야겠다는 의견이 나왔는데 비용 절감을 강조하는 회사의 방침에 따라 CCTV는 어렵고 다른 방안으로는 뭐가 있을까 각자 의견을 제시해봤으면 해서 내가 갑작스럽게 모이라고 했어요.”


 직원들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사람이 지키는 방법 외에는 없겠는데요.”


 “누가 지켜? 그 인건비는? 윤 대리가 댈 거야?”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나머지는 더욱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은 의견이 없어?”


 직원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참… 혹시 반려견 키우는 사람? 대형견이면 더 좋고.”


 모두 눈치만 보기 시작했다.


 “뭐야? 아무도 안 키워? 우리나라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천만 명이 넘는다는데 여기는 해당 사항이 없어?”


 “윤 대리.”


 “네.”


 “저번에 공장 주변에서 떠돌던 개 기억나?”


 “아… 네.”


 “요즘도 보이는가 모르겠네. 혹시 보이면 좀 잡아와.”


 “저기, 부장님. 제가 개를 못 만지거든요.”


 “뭐? 개를 못 만져?”


 “어릴 때 개한테 물리고 나서 가까이한 적이 없어요.”


 신입사원들은 곤 부장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개가 무섭다, 비위가 약하다, 알레르기 반응이 있다며 한사코 피하려고 했다.


 


 같은 시간, 기풍은 영우를 불렀다.


 “삼촌. 무슨 일이에요?”


 “야, 회사에서는…”


 “아무도 없는 것 확인했어요.”


 “곤 부장이 하는 얘기 들었지? 천기랑 같이 출·퇴근하면 어떻겠냐? 집이랑 사료는 내가 챙겨올게.”


 다음날부터 영우는 대형견 천기와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인오와 하진, 진성, 상준은 위생복을 입고 찌은 밥을 뒤집거나 발효통에 담긴 밑술에 밥을 넣어 섞으면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한 달쯤 지나 상준이 퇴사를 했다. 그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알아보다가 정 안된다면 공무원 시험을 치겠다고 말했다. 석 달이 지나자 이번에는 진성이 회사에서 나갔다. 그는 금수저도 은수저도 아닌 편수저였다. 부모님께서 매출이 꽤 나오는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그 밑에서 일을 하겠다고 했다. 인오와 하진은 어쩌다보니 천기식품에 남아 3년 넘게 다니고 있었다.


 


 “우리 둘만 도망을 못 갔어.”


 인오가 말했다.


 “징글징글해. 도망쳤으면 다른 인생이 펼쳐졌을까?”


 “그거야 장담할 수 없지.”


 “면접을 보러 다녀도 여기보다 더 못한 회사가 더 많아서 충격이었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정말 막막하다.”


 “참, 너 면접은 어떻게 됐냐?”


 “연봉도 안 알려주는 회사라 글러 먹었지.”


 “얼마나 연봉이 형편없으면 그러겠냐?”


 “다른 회사나 더 알아봐야겠다.”


 인오는 구직 사이트에서 접속을 하고 하진은 주가 창을 열심히 들여다봤다.


 


 그날 저녁. 인오는 옛 동기 진성이 일하는 편의점을 찾았다. 인오가 살고 있는 곳에서 편의점이 그리 멀지 않아 퇴사 후에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손님이 없는 틈을 타서 대화를 나눴다.


 “이 좋은 편의점을 내놨다고?”


 “부모님은 도시를 떠나겠다고 하고 나도 더는 하기 싫어서…”


 “그럼 뭐하려고?”


 “계획은 나도 모르겠어. 정말 어이없지?”


 인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뭔가 모르게 부럽다.”


 “나 요즘 웹툰 그리고 있어.”


 “웹툰?”


 진성은 인오에게 웹툰 링크를 보냈다.


 “확인해봐. 아직은 시작이라서 도전 단계인데…”


 인오는 진성이 보낸 주소로 웹툰을 보기 시작했다.


 “제목이 야간 편의점이야?”


 “밤마다 바코드 찍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날 때 한번 그려본 거야.”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도 달아야 하겠지?”


 “당연한 것 아니냐?”


 “편의점을 방문한 손님들의 사연… 나도 실어주냐?”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손님 이야기는 써먹었는데.”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한 둘이야? 윤 대리님 이야기도 그리면 대박인데.”


 “그건 진짜 대박 신화 아니냐? 잘 살고 계시겠지? 난 윤 대리님 떠올리면 노래방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회사를 떠나요?”


 


 윤 대리, 곤 부장과 신입사원인 인오와 하진, 진성, 상준이 1차를 끝내고 노래방에 도착을 했다. 곤 부장은 고주망태 상태로 진성과 상준의 부축을 받았다.


 “부장님은 자리에 앉히면 돼.”


 윤 대리가 말했다.


 시간이 지나자 곤 부장은 곯아떨어졌고 나머지는 흥에 겨워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다음 노래는 회사를 떠나요.”


 윤 대리의 말에 일동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노래가 있어요?”


 “신곡인가? 제목부터 대박인데.”


 윤 대리는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윤 대리의 노래에 맞춰 다 같이 흥을 돋우었다.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 곳으로 다같이~ 회사를 떠나요

 회사를 떠나요

 즐거운 마음으로

 모두 함께 떠나요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 곳으로 회사를 떠나요


 그곳으로 모두 함께 떠나요


 


 열광의 도가니가 끝난 다음에 진성이 노래를 부를 차례가 왔다. 그는 임재범의 ‘비상’을 열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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