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생각에 그쳐서 다행인 그것
Prologue
〈너와 이혼까지 생각했어〉는 지난한 우리 부부의 싸움을 총망라한 책(으로, 지난해 독립출판으로 적게 발간해냈던)이다. 내 인생 첫 책이 이런 내용이 될 줄은 나도 몰랐는데, 책을 쓰려다 보니 내가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글이 우리 부부의 싸움록이었다!
우리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혹자는 ‘둘이 똑같다’(조금 억울함)거나, 혹자는 ‘네가 한 살이라도 더 많은데 좀 져줘라’(그러기 싫음)라거나 ‘지겹지도 않니?’라는 힐난을 종종 받기도 하지만- 싸움 자체가 제어가 되기라도 했다면 나도 피곤해서 이렇게까지는 많이 안 싸웠을 것이다. 스스로도 정말 지겹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가끔은 왜 우리 부부는 이토록 성숙하지 못하여 매번 모든 일을 다 싸워야만 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의문이 들곤 하는데 성숙한 인간이었다면 서로를 만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미성숙한 서로에게 끌린 서로의 탓이려니,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모두의 정신건강에 이롭다.
TMI지만 나와 앞으로도 이 책에서 질리도록 등장할 호떡(남편이다)과는 2008년 대학 입학 때 만나 2010년 겨울부터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후 만 6년의 연애 끝에 2016년 결혼에 성사했다. 결혼을 결심한 것은 2015년 여름, 내가 결혼하자고 프로포즈한 건 2015년 크리스마스이브인데, 이 책에서 등장하는 싸움들은 프로포즈 이후의 시점으로 한정한 싸움들이다. 그 이유는 그때부터의 기록이 데이터로 비교적 분명히 남아있기 때문이고, 그전부터 싸운 것까지 다 합하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너무도 숱하게 싸워 어떤 것 때문에 싸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나를 위해 스마트폰이 고생을 좀 해줬다. 2015년 12월 경부터의 모든 대화를 한 번도 날리지 않고 저장한 저장 강박증이 있는 나에게 일단 칭찬을 한 번 해주겠다. 잘했어. 이렇게 꾸역꾸역 저장해서 얻다 쓰나 했는데 싸움록 정리에 이렇게 쓰일 줄이야! 참고로 모든 싸움이 메신저에 다 남아있지는 않아서 내가 모든 싸움의 기록을 다 길어 올리진 못했다. 이를 테면 싸우다 화가 나서 얼굴도 보기 싫어져서는 용산에 있는 빈 친구 집에서 잤던 일이라든가, 비슷한 이유로 부모님이 집을 비우신 틈을 타 본가로 가는 KTX 티켓을 야밤에 발권해서 갔던 일, 가서 하트시그널 2 마지막 회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베란다 문을 안 잠그고 간 것 같다며 엄마가 확인을 부탁한 탓에 집에 들른 이모를 하의 실종 상태로 맞았던 일 같은 것들.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약 삼사 년 간의 모든 기록 중 ‘미안’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것만 속속들이 골라내어 그중에 싸움인 것들, 그중에서도 기억이 선명하게 나는 것들만 잘 풀어쓴 것임을 감안하고 봐주시길 바란다.
참고로 이렇게까지 싸우면서 아직도 한 이불 덮고 같이 생활할 수 있는 모든 동력은 호떡에 대한 나의 진실된 사랑에서 비롯됨을 궁색하게나마 밝혀둔다. 정말 조금이라도 덜 사랑했으면 이렇게 지난한 싸움 따위 없이 진작에 이혼에 이르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