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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alm Jan 16. 2019

안녕 페리야?

나는 더 이상 애완견을 키우지 못한다.

[커버 사진: 사당동 우리 집 정원에 페리와 제리. 페리는 늘 저 모습, 저 자리에게 대문을 지켰다.] 


페리.


초등학교 때였다.

아빠가 처음 보는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퇴근하셨다. 주택이었던 우리 집 감색 대문에 새로 페인트칠을 하실 거라며 주말 되기 전 미리 준비해두신다고 퇴근길에 동네 페인트 집에 들르셨단다. 그리고는 페인트 대신 생각지도 못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오셨다.


첫 강아지였다. 눈이 얼마나 큰지 눈망울이 튀 나올 만큼 눈 똥그란 새끼 치와와였다. 이름은 '페리'래.

지금 생각해보니, 나름 세련된 영문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페'인트집에서 입양해와서 '페'리였나 이름이? 

고향 색이 짙은 이름일세.. 마치 미국 패밀리 네임에 지명, 직업 등에서 유래해온 것 같은 미쿡 스타일이네.

대장장이를 뜻하는 '스미스 smith'라든가, 제분 제빵사 '밀러 (Miller)', 목수 '카펜터 (Carpenter)', 정육점 주인 '부처 (Butcher)', 마부 '카터 (Carter)'. 


페인트 집 리틀 베이비였다고 치자. 우리 '페리'는. ㅋㅋ  



나중에 알고 충격받은 사실 중 하나는,

치와와가 세상에서 가장 작고 못난 견종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아닌데?!! 치와와는 원래 엄청 잘생기고 체격도 작지 않은데 밥도 많이 먹으면 살도 통통하게 올랐는데!"

내가 오랜 시간 키워온 우리 집 치와와 페리는 체격이 겁나게 크고 오동통했으며 얼굴이 모델 뺨치게 아주 잘 생긴, 알고 보니 우리 집 (내가 그간 치와와라고 알고 있던 이 녀석은) 전문용어로 '잡종'이었던 것이다. #개잡종


우리 집 페리는 

성격도 얼마나 개지랄 맞은 지 내가 가족이어도 끊임없이 물어대 허구한 날 나를 울렸고, 

머리는 얼마나 영리한지 우리 집 가장이 아빠라는 건 어찌 잘도 알아서 아빠 앞에서는 순한 양 같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얄밉고 꼴 보기 싫던지 나도 실수인 척 몇 번 페리 발을 밟은 적도 있다. 쳇!

그렇게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다. 그 녀석이랑. 


사랑과 정력은 또 얼마나 넘치는 아이였던지 대문만 열어놓으면 어릴 적 살던 사당동 주택가의 온 동네 강아지들과 서로 사랑을 해대서 나중에 우리 집에는 페리 자식만 7마리까지 새끼 친적도 있다. 물론 다 분양해줬었지만. #개족보


페리의 자식이므로 이름도 페리의 돌림 이름으로

제리, 메리, 세리, 체리 등등 온통 리짜 돌림으로 지어줬었다. 그게 페리에게 표현할 수 있는 내 초딩레벨의 가장 세련된 사랑 표현법이었다.


요즘은 애완견을 집 안에서 키우고 개사료를 따로 주고 예방접종도 맞춰주고 돈이 많이 든다는데, 우리 집 페리는 1원 한 푼 특별대우 없이 그저 주택 정원에서 봄여름 가을 겨울을 났다. 눈이 오면 개집에 내 옷도 벗어 포개어 덮어주고, 비가 오면 개집에 내 우산도 씌워주고, 한여름 폭염에는 개집에 시원하게 물도 적셔주고 개밥그릇에 물 대신 얼음도 담아주곤 했다. 그때만 해도 동물병원이 지금처럼 많지도 않아서 주사는 사람만 맞는 건 줄 알았고, 다만 매 주말마다 아빠와 함께 개 목욕을 거품 가득 풀어 빡빡 씻기는 일에 충실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비누도 빨랫비누였을지도 모른다.) 동물에게 이런 방식이 도움이 되는 건지는 아직도 무지하지만 당시에는 내 눈높이의 사랑 표현 방식이었다. 우리 가족이 먹고 난 밥을 같이 먹었고 외식으로 갈빗집을 다녀올 때면 페리를 위해 갈비뼈를 비닐에 꼭꼭 싸서 챙겨다가 '개 뼉따구'로 스페셜 에디션 디저트를 선물해주곤 했었다.


고등학교 때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페리를 데려올 수 없었다.

대신 우리 집으로 이사해오신 분들이 페리를 맡아 키우겠다고 하셔서 눈물의 이별을 했고 가끔씩 페리를 만나러 다녀오곤 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노견이 된 페리는 여름 햇볕 좋은 날 우리가 키우던 감나무 아래로 가더니 스르르 잠을 청하듯 눕고는

다시는 깨지 못 한채 편안히 잠자듯 죽었다고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 가족 외에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장난치며 안아줄 수 있는, 소위 말해 동물과도 정을 나누는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걸 페리와 리짜돌림 강아지들에게 배웠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난 더 이상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아니, 못 키운다.

사랑하는 가족이 나보다 먼저 죽어 떠나보내야 한다는 게 얼마나 큰 슬픔인지 여러 차례 떠나보낸 강아지를 보며 느꼈고 지금은 남의 집 강아지를 보는 것만으로 대리 만족해오고 있다. 어떤 강아지를 보든 나는 페리가 떠오른다.

나의 첫사랑, 개잡종 치와와 페리.


앞으로도 강아지는 못 키울 것 같다.

잘 생긴 우리 페리 얼굴이 생각난다.


안녕, 페리.


눈이 엄청 많이 내린 날, 막내 외삼촌이 놀러 왔다. 사당동 우리 집 앞에는 이 놀이터가 있어 좋았다. 제리 궁둥이가 귀엽다.
페리 제리 얼굴 사진을 찾아봤는데 도통 궁둥짝 사진들만 있다. 막내 외삼촌이 놀러 온 날은 신났다. 
페리와 제리의 얼굴 사진은 끝내 못 찾고 내 기억 속에만 있는 걸로. ㅋㅋ
페리와 제리의 모델 뺨치는 얼굴 사진은.. feat. 내 동생. 어린 시절을 애완동물과 함께 보내는 건 정서적으로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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