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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Feb 11. 2022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좋은 게 다 좋은 건 아니다.

어둠이 깔리고 바다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혼자 있다는 사실이 싫어졌다.
 혼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와
되는 대로 수염을 기르고
배낭 하나로 떠돌기를 바랐는데,
지금 이 방 안으로 찾아드는 외로움은 무엇인가?

내일 짐을 싸가지고 서울로 다시 올라갈까 하다가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에 웃고 말았다.
아이들도 보고 싶고 처도 보고 싶다.
만일 참으로 다시 돌아갈 곳이 없이 떠도는 나그네라면
그처럼 외롭고 지친 인생은 없을 것이다.

- 구본형의 <떠남과 만남> 중에서

이상하게 마음을 끄는 일이 있습니다.

마음만 고쳐먹으면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이라는 걸 알면서도 좀처럼 그 마음 고쳐먹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화 에베레스트에는 만만치 않은 비용을 감수하고 그 위험을 자처하려는 일반참가자들이 등장합니다.  

목숨을 건 대가로 보상을 받는 프로등반가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대체 그들은 무엇을 위해 그 어마어마한 고생을 사서하기로 한 걸까요?

아마 이것은 저만의 궁금증은 아니었나 봅니다.

영화속에서 바로 이 질문을 주고 받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아무리 편안하고 호화로운 곳에 있어도 왠지 편치가 않아. 난 이곳에서만 살아있음을 느껴"


"에베레스트를 왜 오르냐면 그건 오를 수 있기 때문이죠. 정상에 서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데 오르지 않는다면 그건 죄악이죠"


"나 같은 보통 사람이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걸 보여주면 애들도 꿈을 키울 수 있겠지."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저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 이유만으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엄청난 위험이라고 판단했으니까요.

그러다 저절로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대답을 만났습니다.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목숨을 건 고생을 기꺼이 사서하려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으러 왔다는 그의 이야기에

온 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앞선 그 모든 대답들을 품고 있지만,

그 어떤 새로운 가능성의 여지를 남기고 있는 그 답은

오롯이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끌림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야말로

저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었으니까요.


저산소, 추위, 배고픔 등등

기꺼이 감당하자 각오했던 위험이 한계치에 이를 때마다

두고 온 안온함이 그리워집니다.

정확히 같은 부대낌을 치르고야

왜 그토록 간절히 원했는지를 기어코 알아내고야만

그 따뜻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또 어김없이

계속가보자는 쪽과 이제 그만하자는 편의

치열한 전쟁이 시작되곤 합니다.

한참을 양쪽 당사자의 입장에서 핏대를 올리다 지칠 즈음이면,

전쟁의 현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점에서 사태를 조망하는 존재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갈등한다는 것은 조금 더 가볼 수 있다는 증거다.

이 상태에서 내려가면 반드시 다시 되돌아오게 되어있다.

다시 이 모든 과정을 되풀이하게 되어 있다.

힘들면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춰 쉬면 된다. 그렇게 숨이 돌아오면 또 한걸음 간다.


그러다 정말 단 한걸음도 갈 수 없는 것이 확실해질 때,

그 때는 미련없이 돌아선다.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피해를 입을까봐 두렵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라.

여생을 이곳과 저곳을 오락가락하는 것보다 더 큰 피해가 무엇인지.


이번엔 기필코 이 전쟁을 끝낸다.

나를 이끄는 이 욕망이 알곡인지 쭉정인지를

반드시 규명해낸다.

바로 그것이 지금 여기 우리에게 주어진 공통의 과제다.


그렇게 어느 한쪽편이 완전히 백기를 들 때까지는

한 치의 양보없는 필사적인 싸움을 계속합니다.

좋은 게 다 좋은 건 아니라는 걸

몸으로 온전히 이해하고 나서는

필연적인 싸움의 시간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이 싸움의 현장을 떠나 서둘러 도착해야

그 곳 따위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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