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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Feb 10. 2022

언젠간 너무도 그리워질 바로 이 순간

그리도 그리던 지금 이 순간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서 책을 보았습니다.
봄날의 잠기운에 몽롱해져 하루 종일 쉬듯이 책을 보며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인가 봅니다.
죽은 다음에나 이 흔들림이 그치는 것인가 봅니다.
소리처럼 그 떨림이 곧 살아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흔드는 사랑에 빠지고,
감동하고 전율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일 것입니다.

소리가 되어 공간과 더불어 울리다 이내 사라져 없어지면
음이 끝나는 것이고 생명도 다하는 것인가 봅니다.
소리의 색깔은 그 재료의 색깔이고
사람의 삶도 그 사람의 색깔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인생의 음과 빛깔과 깊이와 맑기가 다른 것입니다.

- 구본형의 <일상의 황홀> 중에서


틈만나면 책을 펼쳤습니다.

퇴직하고 살림과 육아가 어느정도 익숙해지자

아이들이 학교에 간 이후의 시간은 오롯이 저를 위해 쓸 수있었습니다.

안 하면 명백한 문제가 되는 기본중에 기본 의무를 해치우고 나면

그 다음은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야말로 꿈같은 시간이었네요.


그런데 그런 축복의 시간, 저는 왜 그렇게 불안하고 또 불안했을까요?

평생 이렇게 살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용도폐기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다시는 가족을 제외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저를 자꾸만 나락으로 빠뜨렸습니다.

어쩌면 당시 제가 했던 모든 도모는 바로 이 두려움을 다뤄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이제 가족을 넘어선 관계에서도 저를 찾는 사람들이 제법 생겨났습니다.

더 반가운 것은 그 대부분이 제가 가장 잘하고,

또 좋아하는 방식으로 저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너무나 반갑고 기쁜 일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그 고마운 존재들의 필요에 대응하느라고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지내다보니

자꾸만 홀로 고요히 책과 교감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이러다 다시는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될까 봐 진심으로 노심초사하고 있는 저를 만나게 됩니다.

한참을 그렇게 흔들리다 지쳐 걱정할 힘조차도 다 빠지고 나니 다시 깨어나는 감각이 있네요.


 그리도 간절히 그리던 이 순간, 언젠간 너무나 그리워질 바로 이 순간의 향기, 소리, 실루엣, 맛과 감촉.

너무나 나다운 추구와 선택들이 빛어낸 유일하고도 고유한 내 세상의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모든 것을 허락하신 삶에 온 마음을 다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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