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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Oct 31. 2024

나를 잡아주세요!

훌륭한 직장과 예쁜 아이를 가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

대학동기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물었다. 


「효림아. 나 대학때 뭐했냐?」


「연애했지. 것도 아주 뜨거운..」


「그래? 것 말고는...」


「몰라. 너 서클에 콕 쳐 박혀 있어서 대학땐 우리, 얘기도 별로 못했잖아. 너랑 나랑 친해진 게 졸업하고 나서지. 아마?」


「그랬던가?」


생각해보니 그랬다. 대학시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장면이라곤 서클룸으로 쓰던 휑한 스튜디오뿐이다. 짝사랑하던 남자아이이따라 암 생각없이 들어갔던 서클이라 활발하게 활동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넉넉한 공간이 보장되는 서클룸이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학교에 가면 나도 모르게 서클룸으로 찾아들어갔다. 그러고보니 대학시절의 주요사건은 거의 서클룸을 배경으로 일어났던 것 같기도 하다. 나의 첫사랑도 예외는 아니었다.


2006년 여름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서클룸에서 비디오를 보고 있었는데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방송반이죠? 민수 찾아 왔는데...」


모두 일제히 그를 쳐다보긴 했지만 누구하나 나서서 민원을 해결하려 드는 사람은 없었다. 원래 그 동네 분위기가 그랬다. 


「저 민수 고등학교 동긴데, 여기에 오면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여기 없습니까?」


역시 묵묵부답. 힐끗봐도 그는 무안해하고 있었다. 인간사 무심하기로 유명하던 내가 무슨 맘이 들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했다.


「민수 지금 없어요. 잠깐 나간 것 같은데 괜찮으면 여기 앉아서 비디오 보고 있을래요?」


「네..그럴게요.」


이 모든 상황은 어디까지나 그가 기억하는 버전이다. 나는 솔직히 뭔 얘기를 했는지 별 기억이 없다. 하여간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가 끝나갈 무렵 그가 찾던 김민수가 나타났고 그들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그게 다였다. 


보던 비디오를 정리하고 회의테이블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민수가 들어왔다.


「소연아, 너 뭐 할 일 있어?」


「아니.」


「그럼 같이 나갈래? 오랜만에 친구를 불렀는데 마침 여자친구가 찾아와서 말야. 셋이 있기 뻘쭘해서 그런데 괜찮으면 같이 놀자!」


「됐어!」


「그러지 말고 나가자! 부탁한다. 박소연!」


끌려가다시피 서클문을 나섰다. 그것이 병호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민수와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나와 그, 이렇게 넷이서 학교 앞 <나그네 파전>이라는 주점에서 술을 마셨다. 아마 민수네 커플이 오랜 냉전 끝에 화해를 하던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과하게 술을 마신 그녀는 연신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민수도 따라 왔다갔다하는 통에 그와 나는 둘이서 말똥말똥 파전만 쳐다보며 어색함을 쫒느라 애궂은 술만 축내고 있었다. 


군대에서 막 제대했다던 그는 전주가 집인데, 고등학교 동기인 민수에게 다니러 일부러 서울에 올라왔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 얼굴 봤으니 내일은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전주에서 고등학교 선생님을 하시고 학교는 S대라고 했다. 「아∼!」했으나 그뿐이었다. 좀처럼 대화가 이어지지가 않았다. 그도 무안했던지 잊을만하면 「아까, 말 걸어줘서 고마웠다」는 인사만 거듭할 뿐이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누군가의 차 안에서 그와 입을 맞추고 있었다. 길고도 긴 입맞춤이었다. 민수와 여자친구가 풀지 못한 감정을 정리하느라 밖에 나가 있는 동안 민수의 차 안에 남아있던 우리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민수와 여자친구의 인기척이 나서야 자세를 고치고 아무 일 없는 척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음 날이었다. 그가 내려간다던 날이었다.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모르던 나는 민수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전화벨이 울리자 나는 당연히 민수라 생각하고 말했다.


「친구는 갔어?」


「....................」


「게, 니 친구들 중엔 젤 괜찮더라. 인사라도 하고 보냈으면 싶었는데..갔음 할 수 없지.」


「나 안 갔어. 아니 나 오늘 안 가도 돼.」


그였다. 이런 걸 인연이라고 하는 걸까? 당연히 그와 다시 만났고, 또 술을 마셨다. 또 키스를 했다. 그리고 약속했다. 내일 과외마치고 전주로 내려가겠다고. 막상 다음날이 되니 정신이 돌아왔다. ‘어딜 간다는 거야? 게가 누군 줄 알고. 미쳤냐? 정신차려! 박소연!’ 전화를 걸었다.


「나 못 가겠어.」


「왜. 너 오면 맛있는 거 해주려고 장도 다 봐 놨는데..」


마음이 흔들렸다. 말할 것도 없이 마음은 벌써 그의 곁에 가 있었다. 결국 고속버스를 타고 말았다.


그의 본가는 김제였다. 전주에는 그의 아버지가 늦은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 어려운 상황을 대비해서 마련해놓은 작은 아파트가 있었다. 그는 나를 그 아파트로 안내했다. 삼일인가를 그와 함께 있었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둘러대며 변명을 해대는 나를 아빠는 그리 심하게 꾸짖지 않으셨다. 죽었구나하며 쫄아 있었던 내게 아빠는 딱 한마디만 하셨다.


「다친 데 없으니 됐다. 가서 쉬어라.」


그렇게 불같이 시작한 그와의 연애는 내가 일본으로 유학을 가던 2010년까지 계속되었다. 유학 중에도 명목상으로는 우리의 관계는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후뉴라는 일본남자아이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는 것은 그 관계가 실질적으로 종료되었다는 의미였다. 아니 어떻게 해서든 종료시켜야할 관계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지 모르겠다.


일본만화 슬램덩크에서 바로 걸어나온 것 같은 훌륭한 외모. 아마 내가 그에게 끌렸던 첫 번째 이유였을 것이다. 이 정도라면 지긋지긋한 짝사랑을 끝내기에 썩 만족스러운 대상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모른다. 좀처럼 몰입의 대상을 찾지 못하고 헤매던 무렵 나타난 그는 내가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쏟지 못했던 사랑을 받았다. 모든 센서가 그를 향해 열려있었고, 모든 에너지가 그를 향해 흘렀다. 적어도 내가 새로운 몰입의 대상을 찾기 전 몇 달간은 정말로 그랬다. 그와 가까이에 있기 위해 아빠에게 거짓말을 둘러대며 그의 고향으로 어학연수를 가기까지 했으니 어느 정도였는지 굳이 덧붙일 것도 없는 것 같다. 


그가 좀 더 믿음직한 남자였다면 나는 지금쯤 그의 아내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잘생긴 그는 학교를 힘들어했다. 방학 때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의기양양해있다가도 중간고사가 끝날 무렵이면 아무도 몰래 휴학을 해버리곤 했다. 몇 학기째 같은 일이 반복되니 지켜보던 나도 지쳐갔다. 


나에겐 어린 시절 아빠가 만들어 주었던 넉넉한 그늘을 재현시켜줄 그런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와 사귄지 1년쯤 되던 시점, 그러니까 내 공부를 시작한지 6개월쯤 되던 그 시점부터 떨어져 있으면 헤어질 궁리를 하다가 만나면 ‘이렇게 좋은데 무슨 생각을 한 거야?’를 반복하며 세월을 보냈다. 나쁜 습관같은 관계였다. 


일본남자에게 의식적으로 집착했던 것은 어쩌면 내게 그 말고도 다른 남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나 자에게 각인시키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귀국할 때쯤엔 그를 만나도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후뉴는 그럴만한 의지도 없었고 그럴 재목도 아니었다. 일본 생활이 끝날 무렵 나는 다급해졌다.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도 모르게 그를 찾아가 그의 품에 안겨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나를 잡아준 사람이 바보 다나카상이었다. 


다나카상은 이중 안전장치였다. 일본에서는 후뉴를 차단하고 한국에선 병호를 차단하기 위해 설치했던. 그는 나보다 열두 살이나 많은 연구실 동료였다. 그에게 미안하지만 그는 그저 마음 좋은 삼촌같은 사람이었다. 서른일곱.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나이도 아니건만 스물다섯인 내게 서른 일곱의 그는 살아숨쉬는 생명체라기보다는 먼지 냄새나는 오래된 책 같은 느낌이었다. 좋은 사람인 건 분명했다. 시원스러운 외모에 훤칠한 키. 스타일도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게 한 번도 남자인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가 나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은 일본생활도 막바지에 이를 무렵 한국유기농공동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였다. 함께 일을 하면서 믿을 만한 그에게 많이 의지했던 나는 그의 배려에 늘 감탄하고 있었다. 세심한 마음씀이 또래 남자아이들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책임감없는 어린 것들에게 질려있어서였는지 그의 어른스러움은 내게 무엇보다 소중한 안식이 되어주었다. 


그가 몰랐을 리가 없다. 자신이 후뉴라는 늪을 빠져나가기 위한 구명줄같은 존재로 내 삶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것을. 어느 취한 날밤. 취기에 기대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을 때 그는 말했다. 이러지 않아도 된다고. 네게 바라는 것 없다고. 그저 안스러워서 힘이 되어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와의 관계는 지속되었다. 그 덕분에 나도 모르게 병호에게 달려가 안기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그에게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다. 그는 농담처럼 말했다. 우리는 계약커플이라고. 계약대로 나는 그의 논문을 도왔고, 그는 나의 논문을 도왔다. 


그와의 관계가 끝난 표면적인 이유는 입사였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 인생에서 그의 역할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서 돌아왔더니 집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게다가 논문은 시작도 못한 상황이고 또 논문을 마친다고 할지라도 대체 나의 미래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 것인지 불안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 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날이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나카상, 결혼해요.」


「생각 좀 해보고.」


「그 생각은 언제쯤 끝나는데요?」


「그것도 생각 좀 해보자.」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국제결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내가 다나카상에게 결혼을 말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절대로 「그러자」고 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혼해요」는 ‘나, 지금 너무 불안해요.’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다. 어리고 철이 없긴 했지만 불안하다고 진짜로 더 불안해질 결혼을 저질러 버릴 만큼 대책 없진 않았으니까.


번듯한 직장에 입사함으로써 지긋지긋한 불안에서 해방되자 다나카상과의 통화는 내게 즐거움이 아니라 의무로 변해갔다. 비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의 방은 다른 사람 차지였다. 그와의 대화는 일본어 스파링 이상의 의미가 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마저 지겨워진 어느 날 그에게 말했다.


「다나카상. 나 이제 전화 못할 것 같아요. 회사를 다니려면 당신과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어요. 저는 회사랑 결혼했다고 생각해주세요.」


그는 말없이 끊었다. 그리고 한달쯤 지났던가.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아닌 것 같아. 회사랑 결혼했다니 말이 되니? 결혼하자. 이제 알겠어. 너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걸.」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바꿨다. 그게 내 두 번째 사랑의 결말이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는 과거의 사람이었다. 나의 현재는 바다 건너 가물거리는 그보다 훨씬 생생한 존재감으로 내 앞을 아른거렸다. 마음의 방은 참 신기하기도 하다. 누군가를 비워내야겠다 마음먹으면 거짓말처럼 새로운 누군가가 들어와 새 방주인 노릇을 하니 말이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한참을 솔로로 지냈다. 가끔 마음속에 누군가를 품고 있던 적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나만의 짝사랑이었으니 공식적으론 언제나 어베일러블한 상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소개팅 시장에 진출했다. 라틴댄스와 인라인 동호회도 기웃거렸다. 동호회 가입의 기본목적은 소개팅과 동일했다. 수많은 만남이 있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허탈함 뿐이었다. 그 시절 일기장은 혼자 읽기에도 민망할 정도다. 스스로가 영업사원처럼 느껴졌다. 상품은 다름 아닌 나 자신. 비굴하거나 잔인하거나 언제나 둘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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