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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를 만들고 싶다는 꿈

삶이라는 미로에서 나를 구해준 아리아드네의 실

by 아난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미 작가야’. 무슨 소리냐구?


‘읽고 쓰고 소통하는 에너지


지난 2년간 내가 발굴해낸 내 존재의 본질이야. 다시 말해 라는 사람은 ‘배우고 익히고 나누는 활동을 통해서 에너지를 공급받는 종류의 생명체더라구. 더 쉽게 표현하자면 이런 흐름에 연결되어 있을 때만 전원을 공급받는 노트북같은 존재랄까. 물론 충분히 충전된 상태라면 얼마정도는 전원과 분리되어도 기능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상사태일 뿐. 건강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충전이 필수적이지.


내가 노트북이랑 다른 점은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은 강력하고도 자발적인 열망을 갖고 있다는 것인데, 바로 이 열망 때문에라도 나는 반드시 작가로 살아가게 될 거야. 얼마나 잘 나가는 작가가 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지만 스스로에 대한 존경심이 남아있고, 또 숨이 붙어있는 한은 내 인생이라는 작품을 다듬어가는 작가적 삶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바로 그게 내 존재의 이유라는 걸 분명히 알아버렸으니까.


...슬슬 걱정되기 시작하지? ‘작가로서의 삶에 이렇게까지 확신이 있다면 집필에 전념해야겠다며 어느날 갑자기 훌훌털고 사라져버는 게 아닌가? 하하. 이 역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젠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그간의 치열한 실험을 통해 깨달았거든.


읽고 쓰고 소통하는 활동이 내 에너지의 원천이라면 가족은 그런 활동들을 통해 모은 에너지를 함께 나누고 싶은 최초의 세상이라는 말야. 게다가 읽어야 할 텍스트가 책만이 아니며 쓸 수 있는 지면이 노트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작가적 삶이라는 표현에 당신이 조금이라도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건 아마도 내 자신과의 소통이라는 과제를 풀고 있던 무렵의 나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나도 알아. 당신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그렇지만 이젠 우리 모두 다 알게 되었잖아.


자기 자신과의 소통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들과도 제대로 소통하기 어렵다는 걸. 만약 내가 두렵다는 이유로 아직도 그 길의 입구에서 서성대고 있다면, 그리고 당신이 출구가 있는지조차 미심쩍은 미로를 헤매는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깊은 교감을 맛 볼 수 있었을까?



어디서 많이 본 수식이라구? 맞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공식이지. 프리초프 카프라라는 사람이 쓴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 공식이 존재상태의 변화원리를 설명하는데도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인간의 삶에서 질량은 자존감, 자아존중감 정도가 아닐까? 그러니까 자존감 레벨이 1 이상 즉, 존재가 스스로 기쁨을 창출해낼 수 있는 역량(자기와의 소통능력)을 갖고 있다면 속도, 소통의 볼륨이 에너지 상태를 결정하는 결정변수가 된다고 믿는 거지. 여기서 소통의 볼륨이란 소통하는 대상의 개체수가 아니라 소통의 질을 의미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럼 마음이 통하기만 하면 그 깊은 소통의 대상이 굳이 가족일 이유는 없지 않냐구? 하하. 예리하긴. 근데 틀렸어. 정확히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같은 소통을 해도 가족들과 함께하면 만족감의 격이 달라. 당신과 함께 만든 우리의 가족은 더더욱 특별하고. 조금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70-3'과의 소통을 통한 충만감보다 세 식구랑 나누는 교감이 훨씬 짜릿하다구. 그러니 내가 가긴 어디로 가겠어. 왜 그런지 당신은 알 것 같다구? 그래. 맞아. 이 말도 안 되는 숫자게임을 설명할 있는 어휘가 사랑말고 또 뭐가 있을까?


세상일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 학교 다닐 때 내가 젤 싫어하던 과목이 물리였는데 바로 그 물리학에서 내 인생의 미로를 빠져나올 아리아드네의 실을 찾아내게 되었으니 말야. 물론 아직도 물리는 넘 어려워. 도저히 과학적인 함의까지 설명해 낼 재간은 없어.


래도 확실한 건 어찌되었던 바로 그 실타래가 내 마음을 끌었고, 그래서 무작정 잡고 따라걸었더니 어느새 미궁밖으로 나와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거지. 혹시나 내가 또 다시 미궁속으로 내 던져지게 되면 그때도 나는 같은 방법을 쓰게 되리라는 예감과 함께. ? 대안이 없으니까. 헤헤.


넘 무책임한 거 아니냐구? 아니. 난 믿어. 아마도 그 안에 내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비밀의 언어가 숨어있으리라는 걸. 지금은 그냥 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좀 더 쉽고도 편안한 어휘로 그 마법의 언어를 풀어낼 수 있으리라는 것도. 바로 그 작업이 내가 평생을 바쳐야 할 사명이라는 것까지.


~. 참 길었다, 그치?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살았네. 근데 당신 기억나? 내가 이 편지를 쓰기 시작한 이유 말야?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결혼할 거니까. 내가 지금의 나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런 나에게 맞는 존재는 전 우주를 통틀어 당신 밖에 없다는 걸 아니까. 그렇다면 하루라도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각자의 꿈을 엮어 만든 우리의 꿈을 함께 꾸며 이루어가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또 있을까?


눈치챘지? 나는 이 길고 긴 편지를 우리의 꿈 이야기로 마무리하려고 해. 내가 꿈꾸는 부부, 내가 꿈꾸는 가정에 대한 이미지를 당신과 공유하고 싶거든. 물론 거듭 말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버전일 뿐이야. 그러니 반쪽짜리, 아니 1/4쪽짜리 꿈인 셈. 굳이 고쳐 말하자면 가정경영 제안서정도라고 할 수 있으려나?


☐ 2011.1

서로의 성장과 삶의 균형을 위해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파트너. 얼마나 바라고 바랐던 관계인가. 남편이 이해해준다고 생각하니 뭘 해도 힘이 더 난다. 천군만마. 라는 표현이 부족하다. 만군억마정도를 얻는 기분이랄까.

☐ 2011.8

프랑스다.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유럽이 그렇게 좋다더라고. 떠날 수 없는 이유는 셀 수 조차없이 많았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엄마가 하루라도 더 젊으실 때 조금이라도 더 기운이 있을 때 누리게 해드리는 게 더 현명한 것을 아닐까. 늦어지면 절약할 수 있는 것보다 잃어버리는 게 더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하는 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라는 안심에 아이들도 데려올 수 있었다. 7살 훈이 3살 영이가 있어 동행들과 보조를 맞추지는 못한다. 하지만 여행지 몇 곳 못 들르면 어떠랴. 마음을 비우고 가족의 시간에 집중하니 만족도는 오히려 작년보다 더 높은 것 같다. 올해의 여행은 앞으로 우리 가족이 하게 될 세계여행의 예행연습으로서의 의미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세계를 누비게 될 날을 꿈꿔 본다. ^^

☐ 2015.9

계절의 변화가 한눈에 들어오는 베란다. 독서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흐르는 섹스폰 선율과 향기로운 허브티까지. 남편과 훈이, 영이도 각자 책상에 앉아 저마다의 과제에 몰입해있다. 퇴근 후 온가족이 즐기는 독서타임!!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 2018.7.25

시원한 그늘, 가끔씩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탄력 쨍쨍한 햇살과 함께라 더 고마운 자연의 아침.. 이곳에 머문지도 벌써 엿새째 어느새 이 아침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훈이는 해먹에 누워 책장을 넘기다 그대로 잠이 들기도 하고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스케치북을 찾기도 한다. 훈이는 이번 여행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녀석이 없는 새 살짝 컨닝한 스케치북안에 그려진 세상에서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본다.

영이는 마당에서 펜션손님들과 놀고 있다. 바다로 나가는 길을 알려주기도 하고..제 입맛에 맞았던 식당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도 하고..또 그들이 이곳까지 오는 길에 보앗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마치 제가 이곳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사람 한사람 세심히 살피는 모습이 제법 어른스럽다.

누워서 보는 하늘은 온통 나뭇잎이다. 잎이 흔들릴 때마다 빛이 그 사이를 파고들며 부서진다. 아~!! 이 순간의 감동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서둘러 일어나 노트북앞에 앉는다.

오늘은 서울에서 남편이 온다. 일때문에 모든 일정을 함께 할 수 없는 남편은 주말이 되면 우리가 머무는 곳으로 바로 날아온다. 남편이 오면 꼭 바다에 데려가야지..쏟아질듯 빛나는 밤별을 그와 함께 느껴봐야지..보고 싶다.

☐ 2020.1.1

똘똘하게 스스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아이들..프로젝트가 완료되면 그 결과물을 잘 관리하고 포장해 세상에 내어주는 것이 엄마인 나의 몫이다. 스스로 성장하면서 그 과정과 결과를 또래집단과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두 아이. 폭발적인 반응..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엄마인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참 담담하다. 그저 스스로 정한 길을 따라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 그 자체의 소중함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참 신기한 녀석들이다. 열여섯, 열둘..아직은 너무나 어린 나인데..이 학원 저 학원 따라다니기 바쁜 또래들과는 삶의 차원이 다른 아이들..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들이지만 지켜보노라면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서로서로를 북돋우며 끊임없이 성장하는 가족으로 살 수 있다니..참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참 행복하고 또 행복하다.

☐ 2022.5

가족 각자의 개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면서도 함께하는 기쁨을 누릴 줄 아는 공동체. 부모는 관리자가 아니라 협력자이자 조력자 일 뿐이다. 위계가 아닌 수평적 네트워크를 추구하는 소규모팀. 가정이야말로 딱 그 컨셉에 맞는 조직아닌가?

이런 가정경영철학 덕에 열여섯살 훈이와 영이도 천진함을 잃지 않는 가운데 제법 똑똑하게 제 길을 찾아간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무작정 조르는 것이 아니라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가족 커뮤니티에 제시하고, 이 계획에 동조하는 사람의 투자를 자원으로 일을 추진해가는, 보통 가족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우리가정만의 방식.

어릴 때부터 이런 시스템에 훈련되어서인지 실제로 가족 전체가 운영하는 사업에서도 각각 제 역할들을 해내고 있다. 이런 시스템은 우리 4가족을 너머 양가의 형제들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다. 명실상부한 가족기업으로서 토대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내 꿈이 현실에서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젠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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