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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May 19. 2021

가장 현명한 ‘포기’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 변화가 필요한 당신에게


눈감은 채로 얼마나 누워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불을 빠져나올 무렵 시계는 5시 16분을 깜빡이고 있었다.


“벌써 일어났어?”


“그냥 눈이 떠지네.”



다시 잠든 남편을 남겨두고 새 속옷과 요가복을 챙겨 욕실 문 앞에 내려놓는다. 걸친 옷을 하나씩 벗어내다 열린 문 안의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친다. 쾡하게 총기를 잃은 눈빛과 유난히 짙어진 팔자 주름. 뒤를 돌아 화장대 거울에 비친 나도 생기없고 축 처져 있긴 마찬가지다. 보고 있자니 더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아 서둘러 칫솔에 치약을 짜 얹고 눈을 감는다.


민트향 솔이 닿는 곳마다 텁텁함이 상쾌함으로 바뀌어간다. 마지막 물양치를 마치고 나자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샤워부스로 들어가 물을 튼다. 눈을 감고 한참 물을 맞고 있다 살짝 실눈을 뜨고 샴푸를 펌핑한다. 손가락을 오무렸다 폈다하며 두피를 씻어낸다. 문지를 때마다 퍼져나가는 허브그린 향과 거품 적은 텍스처의 뻐덕한 느낌이 현미밥 같은 안도감을 준다. 아침 첫 의례는 몸을 닦은 수건으로 욕실 거울을 닦아내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거울을 보니 아까보다는 조금 생기가 돌아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침준비를 시작해야하는 시간까지 한 시간 반은 족히 남았다. 얼마 전 책상을 옮겨놓은 안방으로 들어간다.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 위에 어제 저녁 꺼내놓은 책이 한 권 놓여있다. 의자에 앉아 책을 펼쳐 읽다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 변화가 필요한 당신에게’라는 챕터 안에 ‘때로는 포기가 삶을 이어줍니다’라는 꼭지에서 눈이 머문다.


10년째 고시에 매달리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않는 합격의 문 앞에서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버려 이제는 붙기 위해서가 아니라 달리 할 일이 없어서 공부를 하고 있는 남자. 설상가상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상해 이제는 책상 앞에 앉아있기도 힘든 그에게 필요한 것은 ‘포기의 지혜’라고 했다. 그렇지, 더 붙들고 있어봐야 뭐하겠어.


베란다로 나가 지난 10년간의 기록들이 한가득 담긴 5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끌어와 현관 앞에 놓아둔다. 남편이 방문을 열고 나오다 쓰레기봉투를 발견하고 묻는다.


“어! 이거 당신 일기장이랑 원고들 아냐?”


“맞아. 이따 운동하러 갈 때 밑에다 내려다 줄 수 있어?”


“이거 이렇게 버려도 돼?”


“지겨워져서. 난 좀 더 나은 인간이 된 줄 알았는데 하나도 안 변했더라고. 심지어는 오늘 내가 쓴 것 같은 글들도 간간히 보이더라니까. 소름끼쳐. 비슷한 감정과 생각의 무한반복이 내 인생이겠구나 싶으니 심난하기도 하고. 이렇게 꾸준히 써온 덕에 이렇게 좋아졌어요! 하는 책을 쓰고 싶어서 모아뒀던 건데 하나도 안 변한 걸 알았으니 이걸 뒀다 뭐하겠어?”


“당신 많이 변했는데... 점점 이뻐지고 있잖아. 청소도 엄청 잘하고.”


“지금 비꼬는 거야?”


“......”


“미안, 내가 요즘 상태가 별로야. 나 들어가서 좀 쉴게. 밥 차려 놨으니까 먹어.”


방문을 열고 들어왔지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PC를 켜고 일기 파일을 열어 떠오르는 말들을 남김없이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자판을 두드리고 나니 그제서야 숨이 좀 쉬어졌다.


호흡을 고르고 다시 한번 써놓은 글들을 찬찬히 읽어 보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의 본질은 되고 싶은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괴리였다. 고착된 패턴을 훌쩍 넘어 읽기만 해도 힘이 나는 생명에너지 듬뿍 담긴 책을 써 내고 싶은 욕심과는 달리 여전히 자기파괴적인 생각과 감정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기 일쑤인 나.


같은 함정에 빠지고 또 빠지는 나를 바라볼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화를 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저 견딜 수 밖에 없었다. 묵묵히 지금 여기를 지키다 보면 언젠가 붕 날아오를 때도 있겠지 하는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어. 그런데 지난 시간들의 기록들을 통해 시간이 가면 나아질 거라는 하얀 거짓말조차 먹히지 않게 되어 버린 거다.


건강해지면 투병수기를 써서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꿈에 의지해 살던 사람이 본인의 병이 완치는커녕 호전도 기약할 수 없는 상태임을 통보받았다면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이란 어떤 모습일까? 그에게 가장 현명한 ‘포기’는 어떤 모습일까? 아니 만약 사랑하는 이가 그런 입장에 처했다면 나는 그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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