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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May 19. 2021

엄마를 기다리는 시간

아하! 그랬었구나!

엄마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내가 딸아이만했을 무렵,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즈음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 대신 들큰한 냄새가 나를 맞았다. 십팔 평 군인아파트의 복도같은 거실을 통과해 안방문을 열면 쓰러져 자고 있는 엄마 곁에 이불산이 우뚝 서있었다. 수건도 아니라 아예 이불로 덮어두었던 건 어떻게든 나에게 토사물을 들키고 싶지 않은 취한 엄마의 단도리였을지도 모르겠다. 몰랐으면 하는 거라면 모른 척 해주는 게 예의지.



문을 쾅 닫고 방을 나와 주방에 걸려있는 달력에다 엑스표시를 했다. 이번 달만 벌써 며칠 째야. 가스렌지에 불을 켜고 돼지기름이 굳어있는 김치찌개를 데운다. 국그릇에 밥을 푸고 그 위에 김치찌개를 얹여 식탁에 놓는다. 숟가락으로 꾹꾹 눌어 찬밥덩어리를 김치찌개에 풀어내고 식탁위에 놓여있던 꽈리고추를 하나 집어 밥에 올린다. 한입 베어 문다. 방안에서 맡은 토사물 냄새와 비슷한 맛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한 그릇을 다 비운다.



왜 우리엄마는 우리 엄마여가지고. 나보다도 더 글씨를 못 쓰는 엄마. 주민등록초본 두 장을 꽉 채울 정도로 이사를 다니면서도 전입신고 한번 손수 하지 못하는 여자. 못 배워 처먹은 여자. 십 원 한 장도 못 벌어오는 여자. 그게 우리 엄마다. 십팔 평 좁은 아파트에 친정, 시가 군식구들 다 치러내고도 고맙다는 공치사 한번 못 듣는 여자. 나랑은 다른 세계에 속한 여자.



그런 엄마가 아빠 욕을 하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다. 아빠가 부족한 엄마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하는데, 아빠가 무너지면 우리는 다 같이 망하는 건데. 도저히 엄마 편을 들 수가 없다. 니미***같은 년. 그 정도 욕으로 참아주는 것도 황송해 해야지. 얼마나 속이 터지면 때렸겠어. 몸에 멍 좀 들면 그게 뭐 대순가. 어차피 방구석에서 술 처먹느라 밖에도 못 나갈 텐데.



술을 안 마신 엄마는 참 포근했다. 쪼가리, 쪼가리 박쪼가리. 내 작은 발바닥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흥에 겨워 읖조리던 엄마의 목소리는 몸 깊은 곳에 저장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발바닥이 엄마 손 위에 올라갈 무렵이니 기억이 날 리가 없는데도 엄마의 다정한 눈빛, 엄마가 입은 하늘색 폴라, 단정한 단발 파마머리가 이뻐 어쩔 줄 모르겠다는 목소리와 함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재생된다.



엄마가 깨어날 때까지 건넌방에 쪼그리고 앉아 갈색 표지의 계몽사 세계문학전집을 꺼내 읽는다. 뭘 읽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숨죽이고 진짜 우리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드디어 목욕탕에서 빨래방망이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이불을 빠는 모양이다. 이제 창문도 열어놓았으니 다른 식구들이 돌아올 즈음엔 냄새도 다 빠질 것이다. 오늘 저녁은 오징어 볶음인가보다. 엄마의 오징어 볶음은 맛이 기가 막힌다. 갓 지은 밥에 올려 쓱쓱 비벼먹으면 밥 두 공기는 순식간이다.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잿빛이던 세상에 조금씩 색이 돌아온다.



이렇게 좋은 엄마 안에 술취한 괴물 엄마가 들어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들켜선 안 된다. 엄마가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무식한 여자라는 것도, 자꾸 아빠를 화나게 해서 몸에 멍이 가실 날이 없다는 것도, 엄마가 맞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는 것은 내가 엄마를 감시하는 간수 역할을 너무 잘해서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엄마의 삶과 마주할 기회를 처음 가졌던 것은 10년 전이었다. 엄마라면 진저리를 치던 내가 그럴 마음을 냈던 것은 살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을 낳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증과 무력감이 나를 덮쳐왔다. 도무지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죽고만 싶었다. 하지만 나 하나만 믿고 평화롭게 잠든 아이들을 두고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고단한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자꾸만 책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가 그렇게 아픈데? 그 통증은 어떤 느낌인데? 정말 사는 게 그리 아프기만 한 거니? 기쁜 순간은 진짜로 없었던 거야? 넌 어떤 아이였는데? 엄마는 어떤 분이었니? 넌 어떻게 세상에 왔니? 등등 읽기는 자꾸만 쓰기를 초대했다. 그렇게 고통을 잊기 위해 읽고 쓰다 보니 어느새 엄마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남들 초등학교 다닐 나이부터 시키는 대로 해놓지 않으면 큰일이나 나는 줄 알고 들일 집안일 한 죄밖에 없는데. 이제 농사 안 해도 된다는 말에 이불 두 채 달랑 이고 온 단칸 신혼집에서 호랑이 같은 신랑이 나를 부르는 이름은 ‘무식한 년’. 남들에겐 간쓸개 다 빼줄 듯 친절한 저 남자는 왜 나에게만 저리 매정한 걸까. 아이 하나 낳고 나면 나아질까, 아들 낳고 나면 저 구박 끝나려나.



내 속으로 낳은 딸에게도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 내 서러움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고, 유일한 위안은 싱크대 아래 숨겨두고 먹는 소주뿐. 하다하다 이제는 술까지 쳐먹냐며 대놓고 주먹질이지만 맞고는 살아도 술 없이는 못 살겠는 걸 어떻게 해.



아무 것도 모른 채 시집와서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아이 둘을 낳아 키워야 했던 어린 엄마의 막막함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랬구나. 내게 책과 노트가 해주었던 역할을 엄마에겐 술이 해주었던 거구나. 그때 엄마가 그리도 애타게 내 이름을 불렀던 건 가슴을 다 내어주면서 키운 큰 딸인 나에게만큼은 이해받고 싶다는 간절함이었던 거구나.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주문처럼 외던 엄마의 혼잣말은 그래선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사무치는 외로움과 서러움을 달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미움이었구나. 그런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엄마를 밀어내려고만 했던 거구나.



아이인 나는 어쩔 수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의 엄마만큼 자란 지금은 다를 수 있잖아. 그래도 아직 엄마가 계시잖아. 얼마나 다행이니. 더 이상 망설이지도 미루지도 말자. 이후로 엄마랑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끝까지 나를 기다려 주셨다. 그렇게 모녀는 더 늦지 않게 ‘사랑한다’는 말을 마음으로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막막하기만 하던 엄마역할이 한결 수월해지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부터였다. 그렇게 엄마를 완전히 소화했다고 믿었다.



4년 휴직 후 복직해서 또 한 번 호되게 무너졌을 때도 그 뿌리가 설마 엄마와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을 벗어난 이후에도 잊을 만하면 징후가 나타났지만 그럴 때마다 산책, 요가, 청소, 목욕 등 압도해오는 감정들을 환기할 수 있는 처방들을 일상 속에 하나 둘 추가해 나갔다. 다행히 처방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이제는 살았구나 싶었다.



아니 그렇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이제 그만 아픈 마음에 발목 잡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이만 하면 되었지,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도 잘만 살고 있는데 여기서 더 하는 건 엄살이지 했다. 더 이상 징징거리며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툭 털고 다시 일어서 힘차게 걸어 나가고 싶었다. 10년간의 자기치유의 과정과 결과를 묶어내고 싶었다.



‘그때는 정말 아팠지만 이런 이런 과정을 거쳐 이렇게 좋아졌어요! 지금 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어요. 경험하지 않고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이 세상으로 당신을 초대하고 싶어요. 어서 와요. 제 손을 잡아요!’





엄마들의 구루로 알려진 오소희 작가의 ‘나를 찾는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던 것도 본격적인 집필에 앞서 타겟독자에게 효과적인 글쓰기 스킬을 배울 수 있을까 하는 기대때문이었다. 그런데 첫 수업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여기만은 제발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은 것처럼 정확히 바로 그 자리를 무심히 툭툭 짚어댔다.



“막 쓴 거, 에둘러 간 거 다 보여. 핵심을 대면해야 돼. 억압이 있으면 핵심에 이를 수가 없어. 너희들이 갖고 있는 감각적, 서사적 억압을 풀어내 핵심을 대면하게 하는 게 나의 역할이야. 핵심을 대면해야 자기를 만날 수 있어. 자기를 만나지 못하고 독자를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울렁울렁, 그동안 애써 외면하던 가슴 속 응어리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10년간 정성들여 보살핀 덕분에 더 이상 처리하지 못한 응어리 따위는 없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나로서는 필사적인 저항이었다.



‘설명 말고 묘사. 전하려는 장면을 찢고 들어가 그곳의 감각을 전달해 보라고 했지? 그래,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번 수업에선 묘사만 확실히 익히기로 하자.’



‘거기에서 나는 뭘 봤지? 어떤 냄새가 났을까? 그곳을 연상시키는 맛은? 피부의 감각은 어땠어? 기억나는 소리가 있어?’ 그렇게 내 몸 안에 저장되어 있던 감각을 깨워내는 7주를 마칠 즈음에 나는 도무지 부정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괜찮아졌어요!’라는 주장이야말로 내가 여전히 아픈 상태임을 나타내는 가장 분명한 징후였다는 것을.



여전히 내 안에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부족하고 수치스러운 존재로 여기고 이를 들킬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열 두살 어린 아이가 살아 있었다. 나는 엄마랑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고 부정하면 하면 할수록 엄마의 것이라고만 믿고 있던 수치심은 내 존재로 깊이 스며들어갔나 보다. 엄마처럼 부족해서 버려질까봐, 사랑받지 못할까봐 그리 안절부절하면서 살았나 보다.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좋은 그 지점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늘 그리도 확인받고 싶었나 보다. 끊임없이 내가 괜찮은 존재임을 증명하는 프로젝트들로 나를 확인해야 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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