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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다 May 19. 2021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욕심, 실은 깊은 두려움


아무래도 이번엔 쉬이 물러나지 않을 모양이다. 목욕, 청소, 요가, 산책, 글쓰기, 책읽기 등등 이 반갑지 않은 손님을 달래기 위해 마련해 두었던 갖가지 비법들을 다 써 봐도 그때뿐이다. 이제 정말 지친다.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이제 저 할 만큼 했잖아요. 이제 그만 저를 놓아주셔도 되잖아요. 설마 저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거예요? 저 이젠 이렇게는 못살겠어요. 조마조마해서 살 수가 없어요. 이렇게 불쑥 나타나 일상을 쑥대밭을 만들어버리시면 제가 뭘 할 수가 있겠어요. 제발, 저를 좀 살려주세요.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제발 속 시원히 말해주세요. 설마 이렇게 시름시름 제 피를 말려 죽이는 게 목적은 아니시잖아요. 저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제 눈 똑바로 봐요. 똑바로!!”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너야말로 이번엔 절대 도망쳐선 안 돼. 나도 이번엔 작정을 하고 왔으니까. 할 만큼 다 했다구 했니? 네가 도대체 뭘 했는데? 그래, 알아. 너는 나를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었지. 그래서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어.


그리고 이런 저런 시도들을 하기 시작했지. 나를 ‘치유’한다는 명목으로. 준비도 되지 않은 나를 발가벗겨서 이리 들추고 저리 들추고 하면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처방들을 들이댔어. 당황한 내게 너는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쓰는 양 이렇게 해주는 것도 딱 10년만이라고 생색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들을 쏟아내곤 했어. 그래도 나는 네가 고마웠어. 그렇게라도 돌아봐주고 살펴주는 네가.”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제부터 틈만 나면 전화다. 내 상태를 살피시려는 눈치다. 걱정하실까봐 애써 쾌활한 척하며 전화를 받는다. 엄마는 포기하실 줄을 모른다. 아침 7시 반에 또 엄마다.


책으로 가득 찬 골방이었다. 사무실에서 입던 옷 그대로 이불도 깔지 않고 누운 눈동자는 멍하니 초점이 없다. 흐려진 시야로 빨강과 검정이 기하학적 무늬를 이루는 엄마의 쉬폰 자켓의 실루엣이 들어온다. 모로 돌아 눕자 마주 보이는 책장 한 칸에 엄마의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접혀있다.


아이들이 할머니에게서 난다고 한 냄새가 이런 건가. 쓸고 닦은 흔적이 가득한 방 안에 오줌 지린내가 은밀히 스며 있다. 마른 침을 넘길 때마다 고막이 얼얼하다. 엄마와 이모가 들어오시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는다. 현관에 벗어놓은 신발을 보셨는지 엄마는 방문을 살짝 열어 보다가 다시 닫고 나가신다. 연이어 문이 열렸다 닫힌다.


“언니, 미옥이가 왜 저런다요?”


“글씨 말이다. 뭐시 맘 먹은 대로 잘 안 되는지 집에만 오면 정신이 다 빠져서 빈 푸대자루처럼 누워만 있으니 내가 복장이 터진 당께. 오늘은 또 뭔 일이 있어 대낮부터 집에 와 있는지. 저것이 저러고 있으니 내 몸이 아무리 아파도 애들 못 보겠단 소리를 어찌 한다냐?”


엄마와 이모의 이야기는 계속되지만 내가 들은 건 여기까지다. 잠도 아니고 깸도 아닌 어딘가로 빨려들 듯 미끄러져 내려간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아무도 없는 사무실. 컴퓨터 화면위에서 껌뻑대는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여인. 얼른 해놓고 집에 가야하는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엔 혹시나 했는데. 복직해서 받은 두 번째 승진명령지에도 내 이름은 없다. 인사과에서 장기휴직자 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소문이 돌 때부터였을까. 아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너무나 명백한 4년의 공백. 하루하루 따라가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승진이라니 언감생심. 마음을 비우자고 그리 다짐을 했건만 막상 닥치고 보니 이 어지러운 마음은 또 뭔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그 때 휴직을 하지 말고 어떻게든 버텨야 했던 걸까? 아니야. 버텨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기억 안나니? 내겐 피할 수 없는 시간이었잖아. 그러니까 제발 힘 좀 빼고 상황을 편하게 받아들여 보면 안 되겠니? 월급 통장에 찍히는 숫자만 생각하자. 다 알면서 그거 하나 보고 다시 들어온 거잖아. 그거라도 보장되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너무나 잘 알잖아. 그까짓 거 자존심이 뭐 대수라고. 못하면 못한다고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왜 자꾸만 있는 척, 할 수 있는 척을 해서 신세를 볶아. 바보같이. 결국 새벽 한시가 가까워서야 겨우 일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깜깜한 복도를 따라 걸을 때마다 센서등이 켜졌다 꺼진다. 몽유병자처럼 주차장에 덩그러니 세워진 차를 찾아 들어간다. 긴장을 놓지 못하는 신경이 파르르 위태롭다. 두 세 시간 눈 붙이고 다시 돌아와야 할 사무실. 깨어있는 아이들 얼굴 본 게 언제인지. 아픈 몸으로 아이 둘 돌보시느라 힘든 엄마랑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가물가물. 나날이 몸과 맘은 너덜너덜 만신창이.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버티고 있는 걸까? 아니 나는 언제까지 이 생활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그러던 어느 날, 툭! 몸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현실 속 공간이 아득해졌다. 속수무책,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힘을 짜내 후들거리는 다리로 상사에게 다가갔다. 과장님, 제가 컨디션이... 누가 봐도 이를 악물고 참고 있던 내가 보낸 첫 구조요청이 심상치 않게 느껴졌던지 괜찮다는 나를 굳이 후배직원의 차에 태웠다.


미안해요. 괜히 기석씨만 번거롭게 하네. 차 안에서의 불편한 침묵 속에 마지막 남은 기운마저 다 써버린 나는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열고 들어가 쓰러졌다.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버티다보면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는 자위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무렵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이렇게 직장과 가정을 오가며 죽던지, 남은 시간이라도 편안하게 지내다 죽던지. 상황이 그 지경이 되고 나서야 사직서를 낼 수 있었다.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한 것은 퇴직을 하고도 한 참 뒤, 내가 아프다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난 다음이었다. 나 자신이 아픈 아이를 돌보듯 돌보아야 할 존재임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게 일상을 완전히 재배치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야기를 인내심 있게 들어주고, 하고 싶다는 게 있으면 성과를 기약할 수 없다고 해도 어떻게든 해주려고 했다.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하는 불안이 수시로 올라왔지만, 행여나 괜한 자극을 해 가까스로 달래 놓은 내가 다시 고꾸라질까봐 내색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가끔 ‘아~ 이게 행복인가보다’ 하는 순간을 맞기도 했다. ‘뭐가 되겠다는 생각, 뭘 이뤄내겠다는 욕심’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내가 아닌 누군가를 찾아 헤매느라 방치되어 있던 지금 여기의 내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간단한 거구나. 그리고 그후로는 내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욕심으로 가득 차 있던 시간 속에서도 느낄 수 없던 충족감을 욕심을 내려놓고야 비로소 맞이할 수 있음을 체험했으니 이젠 정말 다르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조금 살만해지니 욕심도 스물스물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하던 내가 지금의 평화에 이를 수 있게 된 과정을 나만큼 힘든 이들과 함께 나누어 보는 거야. 어쩌면 내가 그렇게 무너졌던 것도 이 소명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신의 장치였는지도 몰라. 나와 같은 고통 속에 있는 그녀들이 그 통증 안에서 신의 선물을 발견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낼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아니 솔직히, 그럴 수만 있다면 그동안 해왔던 실패들이 한방에 만회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차올랐다. 그렇지, 이렇게 무너질 내가 아니지.


“이제야 실토하는구나. 하다하다 안 되니까 아픈 자신까지 이용하려고 드는 거니? 여전히 피고름이 철철 흐르는 환부를 억지로 닦아내고 다 나은 척하라고?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고 했니?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그러지 마. 너는 알잖아. 너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다했다고 했지만, 내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끝까지 모른 척하고 있어. 너 내가 왜 이렇게 계속 아픈지 알기나 하니? 아니, 실은 나보다 더 아픈 게 너라는 걸 알기나 하냐구?”


윙윙 창밖 어디선가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등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 딸아이가 다가온다.


“엄마, 뭐 해?”


“글 써.”


“그런데 왜 울어?”


“원래 글은 울면서 쓰는 거야.”


“그래? 무슨 책 쓰는 거야?”


“책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나중에 나중에 엄마 죽고 나면 서영이가 한번은 꼭 읽어주면 좋겠다.”


“왜 그런 책을 써, 글구 나중에 나중에 나올 그런 책은 나중에 쓰면 안 돼?”


채 대답을 할 새도 없이 돌아서 방문을 닫는다. 우리 엄마 또 시작이네. 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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