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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Apr 05. 2024

식목일에 태어난 당신을 기리며.

당신은 나무를 닮았다.

아버지는 말기암에 걸렸다. 건강을 맹신하고 술과 담배를 끔찍이도 좋아하던 그였기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말년을 가만히 누워서 지내던 아버지에게 '심심하지 않냐'고 물었다. 지금 생각하면 패륜적이기 그지없는 질문이다. 뭐, 후회되는 게 이거 하나뿐이랴.


나의 질문에 아버지는 아이처럼 답했다.

‘솔이야, 아빠는 빗소리 듣는 게 제일 재미있어.’


식목일에 태어난 아버지는 나무와 참 닮았다. 비를 좋아하는 모습이 그러하고, 말없이 묵묵히 자신의 길을 뻗어나가는 모습이 그렇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정착하지 못하는 연약한 당신의 모습은 나뭇잎 같다. 그렇게 파릇파릇하다가 어느 순간 아프게 떨어지는 모습도 당신과 닮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빠 생각을 한다. 어떨 땐 등대 모양의 횟집을 짓자던 바보 같은 아빠가 생각나서 웃음이 났고, 어떨 땐 아빠를 데리고 고작 생선구이 백반을 먹으러 갔던 날이 후회됐다. 또 어떨 땐 아픈 아빠를 두고 회식에 간 내가 미웠고, 더 따뜻하게 손잡지 않은 내가 미웠다. 그리고 아주 자주 아빠가 미웠다.


비가 오면, 빗소리 좋아하던 아빠 생각이 난다.

떡을 보면, 입맛 없다며 떡을 찾던 아빠 생각이 난다.

SUV를 보면, 차는 역시 사륜구동이어야 한다던 아빠 생각이 난다.

항암 효과 있다는 광고를 보면, 뜨끔뜨끔 아빠 생각이 난다.

좋은 음식을 먹으면, 이런 거 같이 못 먹어본 아빠 생각이 난다.

아빠와 통화하는 친구를 보면, 부러워서 아빠 생각이 난다.


아빠와 아주 멀리 떨어진 작은 단초를 굳이 굳이 굳이 아빠와 연결한다. 당신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와 나는 성격이 비슷하다. 그래서 자주 다퉜다. 둘 다 잘 삐치는 성격에다가 소심해서, 다툰 뒤에 누구도 먼저 풀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에도 매듭을 풀지 못한 채 헤어져 버렸다.


병든 당신에게 더 넓은 마음으로 먼저 다가가지 못한 일을 내내 후회했다. 젊고 건강한 내가 이기적으로 굴었다는 생각을 털칠 수 없었다. 그래서 가끔 어린 시절 아버지와 찍은 사진을 들춰봤다. 부모가 곧 내 세상의 전부라 싸울 일 따위 없었던 그때가 그리웠다.


그러다 아주 문득, 아버지의 예전 핸드폰 번호가 생각났다. 핸드폰 앞자리가 통신사마다 011 019 016으로 개성 있던 시절. 아버지의 번호는 016-361-0212번이었다.

어릴 땐 미아가 됐을 때 경찰서 아저씨에게 말할 목적으로 달달 외우는 바람에 통짜로 받아들여지던 숫자가 다르게 느껴졌다. 무심했던 아버지는 큰 딸내미의 생일을 핸드폰 뒷번호로 설정해 두었다.


휴대폰 대리점에서

“뒷번호 뭐로 해드릴까요?"라고 묻는 직원에게

“0212요. “라고 대답하는 아버지가 그려져 한참을 울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아버지는 나무가 되어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 말랑했던 피부는 온데간데없고 딱딱하게 변해있었다. 그 촉감은 꼭 나무 같았다. 단단하고 곧은 나무.


식목일에 태어난 아버지가 다시 나무로 돌아갔다고 생각하기로 다짐했다. 내 옆에서 사라진 게 아니라,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 거라고. 다시 묵묵히 자신의 길을 뻗어나가는 거라고.







아빠는 국뽕 유튜브를 즐겨봤다.
아빠는 내 취업선물로 회사에 오메기떡을 보내주고 싶어 했지만 온라인 결제를 못했다.
아빠는 내게 첫 차로 미니쿠퍼 블랙을 사주고 싶어 당근에 키워드를 등록해 놨다. 나는 장롱면허다.
아빠는 당근에서 예쁜 나이키 신발을 샀다. 젊은 시절 황학동 풍물시장을 좋아했다던 그는 당근 마니아였다.
아빠는 북한산을 보고 '세계적으로도 이런 명산은 없어'라며 자랑스러워하셨다 해외도 많이 안 나가봤으면서.
아빠는 내가 강남에서 회사 다니는 걸 무척 자랑스러워하셨다. 영어로 된 회사 이름은 끝끝내 기억하지 못했다.
아빠는 내가 회사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란 걸 알아준 유일한 사람이다.
아빠는 고급 요구르트보다 남양 사과 요구르트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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