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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솔 May 10. 2024

당연한 것들

사실 당연하지 않은 것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있다.


버스에서 내려 3분만 걸으면 회사에 도착한다. 직선거리 200m도 되지 않는 짧은 구간인 만큼 봄여름가을겨울 늘 비슷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3분 동안 나의 눈에 담기는 건 대개 반대편으로 걸어오는 직장인 무리다. 운이 좋으면 호텔에서 집채만 한 캐리어를 끌고 나와 아침부터 달뜬 표정으로 관광을 시작하는 부지런한 여행자들을 보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는 진귀한 광경을 목격했다. 글쎄 가로수길에 물을 주고 있는 장면을 목도한 것이다.  

아니, 가로수에도 물 주기가 필요한 것이었단 말인가? 늘 인공 조경 속에 살았지만, 누가 가로수에게 물을 주는지는 궁금해한 적 없다. 아니, 가로수에게 수분 공급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숲속 나무처럼 빗물을 먹고 자라날 거라고 어렴풋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곳은 도시. 가물고 미세먼지 가득한 도시였다.

누군가는 가로수를 챙겨주고 있었구나. 배우들이 맨얼굴로 돌아다니는 무대 백스테이지라도 본 기분이었다. 늘 계절에 맞게 푸르렀던 가로수 이파리에는 환경미화원의 노력이 담겨 있었다.


늘 푸른 가로수가 그러하고, 청소하지 않아도 깨끗한 화장실 변기, 언제나 제시간을 가리키는 벽시계, 항시 채워져 있는 화장실 티슈, 아침마다 자전거가 가득한 *따릉이 정류소, 매일 깔끔히 비워지는 사무실 휴지통 따위가 그러하다. 눈에 익은 당연함은 대부분 누군가의 노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시 공용 자전거


할머니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시는 바람에 비운 지 오래된 할머니 댁의 벽시계는 엉뚱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때 되면 시계 약을 갈던 할아버지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자취를 시작하고 변기가 이렇게 빨리 더러워지는 물건인 줄 처음 알았다. 깨끗한 변기 뒤에는 어머니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출근할 때 들른 따릉이 정류소에 자전거가 잔뜩 세워져 있던 까닭도, 실은 밤늦게 시설공단 트럭이 자전거를 실어 나른 덕분이었다.


어쩌면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당연함 뒤에 숨겨진 당연하지 않음을 알게 될수록 세상은 넓어진다.






{이솔 올림}

서울에서 돈 벌어 혼자 사는 20대의 주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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