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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Dec 08. 2021

커피는 좋은데 카페인은 불편합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나의 연료이자 양분

나는 유독 마시는 행위를 좋아한다. 음식보단 음료가 좋다. 특히 뜨겁고 따뜻하고 미지근한 음료보다 이가 시리고 머리가 띵할 정도로 차가운 음료를 좋아한다. 무더움이 깊게 스며든 여름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를 사랑한다. 그것은 크나큰 쾌감이다.

평소에는 주로 차를 즐겨 마신다. 물론 이것은 차가운 차. 아침에 뜨거운 물로 차를 진하게 우려내고 이내 식으면 냉장고에 보관한다. 나의 아침은 차를 우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요즘은 보리차와 옥수수차, 결명자차 이 세 가지를 즐겨 마신다. 녹차는 가끔 누군가가 내어주지 않는 이상 먹지 않는다. 이상하게 녹차는 손이 가지도, 정이 가지도 않는다. 녹차와의 거리감은 줄어들지 않는다. 가끔 달달한 게 끌릴 때면 요구르트나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 딱 그 정도의 달달함이 좋다. 사실 달달하다기 보단 새콤하지만.



맥주와 차 그리고 이것을 논하지 않으면 서운하지, 커피를 빼놓을 수 없다. 어릴 적 집에서 몰래 하나씩 빼내어먹던 믹스 커피를 시작으로 나는 커피와 함께 하게 되었다. 그 시절 나에게 커피는 믹스 커피와 자판기 커피가 전부였지. 시작은 달달한 커피였지만 지금은 손도 대지 않는다. 믹스 커피를 마시지 않은지 10년도 더 넘었다. 믹스 커피 또한 녹차처럼 누군가 내어준다면 그의 성의에 감사하며 마시지만 웬만해선 마시지 않는다. 너무 달다. 달달한 그 맛은 나에게 너무 자극적이다. 그 단맛은 인상을 팍 쓰게 한다.


나는 달달한 커피 대신 쓴 커피를 마신다. 1년 365일 나의 커피는 얼죽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매서운 겨울에도 얼음 한 가득 넣은 아메리카노는 포기할 수 없다. 아메리카노 이외에 선택지는 없다. 라떼도 싫고, 아인슈페너는 더 싫다. 깔끔한 아메리카노 말고는 내 입맛에 맞는 게 없다. 때때로 에스프레소도 마시지만 뜨겁다. 나는 시원한 음료가 좋다.



하지만 커피가 편한 것은 아니다. 나는 커피가 불편하다. 커피와 나 사이에는 꼭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첫 번째는 반드시 하루에 한 잔만 마실 것, 두 번째는 오후 3시 이전에 마실 것. 이 두 가지 규칙은 대부분 지켜진다. 때때로 어기는 날이 있기도 한데 그것은 잠을 자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 밤새 열정적으로 일을 한다던지 미친 듯이 논다던지, 이 둘 중 하나의 이유로 잠을 자지 않는 날이다. 


커피에는 많은 카페인이 들어있다. 그 사실이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전혀 상관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는 전자에 해당한다. 카페인이 매우 신경 쓰인다. 누군가는 커피를 마셔도 쿨쿨 잠만 잘잔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커피는 나의 잠을 방해하고 나를 피폐하게 만든다. 나는 카페인이 불편하다.

내가 카페인에 취약한 사람이라 커피가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꽤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가끔 카페인의 공격을 받곤 하는데 그때마다 머리가 핑 돌거나, 손이 바르르 떨리거나, 온몸에 힘이 쫙 빠지는 일들을 경험한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있는 일은 아니다. 괜찮겠지 라고 경계를 늦출 때마다 나를 급습해온다. 무자비한 카페인의 공격을 받을 때면 겨우 정신줄을 붙잡아 단 것을 입에 처넣곤 한다. 예쁘고 조신하게 냠냠 먹어서 될 일이 아니다. 정신 차리기 위해 끝없이 처넣어야만 겨우 눈이 맑아지고 혈색이 좋아진다.  



최근까지 평온했다. 평화로운 날들이었다. 이제 내 몸에도 커피의 내성이 생겼나? 자랑스럽다, 드디어 해냈구나! 싶었던 찰나 예기치 못한 카페인의 공격을 받았다. 그는 어김없이 방심이란 틈을 비집고 찾아왔다. 덕분에 지난주 이틀이나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오랜만에 겪는 이 느낌이 잊고 있던 지난날을 떠올리게 해 오싹했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커피가 마시고 싶어 졌지만 그때마다 주춤했다. 불쑥 카페인이 얼굴을 들이밀까 봐 안 마셨다.  


하지만 참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 심지어 난 인내가 얕다. 커피 생각이 아득했다. 식사 후 텁텁함을 날리고 싶거나 텔레비전을 보다가 입이 심심해서, 무거운 눈꺼풀을 번쩍 들어 올리고 싶어서 그리고 집중력이 떨어져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커피는 머릿속을 맴돌았다. 자꾸만 커피에 눈이 갔다. 결국 손도 갔다. 이렇게 습관이 무섭다. 그 중독성 강한 맛을 아는 것도 무섭다. 결국 고민 끝에 어렵게 한잔 내렸다. 어렵게 마시게 된 커피라 그런지 유독 맛이 좋더라. 다행히도 오늘은 카페인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사실 아직 모른다. 아직 1차 공격은 없었으나 조용히 2차 공격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차 공격이 시작되면 나의 밤은 끝이 나지 않겠지, 오늘 하루 마감이 매우 늦어질지도 모르겠다.



불쑥 찾아온 카페인의 존재감은 커피와 내 사이를 갈라놓았다. 우린 멀어졌다. 매일 같이 마시던 커피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다니, 익숙하고 당연하던 것에서 느껴지는 이 거리감에 어쩔 줄 모르겠다. 커피 말고도 마실 수 있는 음료는 많다. 세상에 무수히 많은 마실 것들이 있다. 근데 뭐가 이렇게 서운하고 아쉬운지 모르겠네. 내가 이렇게도 커피를 좋아했던가. 커피는 나에게 이런 존재였던가?


술과 커피 중 무엇을 끊을 수 있냐는 질문에 늘 커피라고 말했었는데 생각이 달라졌다. 커피도 못 끊겠다. 술과 커피 둘 중 하나를 끊어야 한다면 그냥 나를 죽이시오. 술과 커피 모두 포기할 수 없다. 술과 커피가 없는 인생은 재미없다. 고로 나는 시들시들해지겠지. 술과 커피는 나를 일으키는 연료이자 나를 자라게 하는 양분이다. 건강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사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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