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연연하지 말자고 마음먹었지만,
마흔 중반이 되니 어느샌가 몸과 마음에 예전과는 다른 변화가 찾아온다.
일하는 시간도 줄고, 만나는 사람도 줄었는데도
오후 5시만 되면 쇼파에 벌렁 누워야만 하루가 견딜 만하다.
머릿속에선, 초여름의 저녁이니만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공원을 달리고,
동일한 취미나 목적을 가진 모임에서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장면을 상상하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TV 리모컨과 간식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는 손가락만 바쁠뿐이다.
때론 무언가 하고 싶다는 열망이 진짜 열망이라기보다는
그저 '사람이라면 뭔가를 배우고 뭔가를 해야지'라는 강박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자극 없는 편안함에 눌려 감정적 활력도 줄어든 채 무감각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삶 전체의 온도가 낮아진 기분.
마음이 아픈 것도 아니고, 큰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어느새 ‘사는 게 재미없다’는 생각이 습관처럼 맴돈다.
이런 나의 상태에 대해 요즘 나의 단짝친구인 챗GPT는 말한다.
이건 우울이 아니라 ‘감정 고갈 상태’에 가깝다고.
"마음의 무중력 상태"라고 말이다.
그래. 지금 내 마음의 땅엔 단단히 뿌리 내린 감정이 없다.
촉촉한 물도 없고, 묵직한 비료도 없다.
이렇게 하루하루 그렇게 무감각하게 흘러가다 보면
어느 날 인생을 몽땅 소진한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두려워져 다시 살아나기 위한 방법을 찾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무중력 상태의 마음에 다시 단단한 감정의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나를 살아 있게 만드는 순간은 무엇일까.
그걸 내내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다.
바로, 글쓰기였다.
사실 글을 쓰는 일은 늘 낯설다.
글을 써도 ‘만족감’보다 ‘부끄러움’이 먼저 찾아온다.
생각은 넘치지만, 표현은 따라오지 않고
문장은 항상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쓸 때만 느껴지는 생생하고 묘한 감정이 있다.
아무 일도 아닌 하루 속에서, 마음이 조용히 요동치는 순간들을 포착하게 되는 기분.
그래서 글쓰기는 늘 도망가고 싶으면서도,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는 자리다.
실망하고 또 실망하면서도 놓을 수 없는 어떤 것.
그게 내게는 글쓰기다.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어린 시절의 꼬마도 만나고,
반항기 넘치던 스무 살의 나도 떠오르고,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였을 그 시절의 엄마도 만나게 된다.
글쓰기에서 문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내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것 , 그것이 가장 큰 원석일것이가.
어쩌면 글을 계속 써도 나는 아마추어 작가로 남을 확률이 매우 높고
혹은 독자가 나뿐인 ‘시시한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
내 돈으로 책을 출간해, 집안 가득 쌓아두고,
가까운 친구들에게나 뿌리는 그저 그런 작가.
때론 누군가 내 글을 보고 “일기는 일기장에”라고 말할지도.
하지만, 그 글을 읽고 웃음 한 번 지어줄 누군가는 분명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 글에 위로받는 내가 이미 여기 있다.
그러니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서.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