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런써글 Oct 04. 2020

처음 맛본 사회생활의 맛 - 위스키 봉봉

원수는 회사에서 만난다

달콤함 뒤에 밀려오는 쓰디쓴 독주의 맛


   나는 첫 직무는 영업이었다. 회사의 상품을 마트에 입점하고, 상품이 고객들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될 수 있도록 마트 담당자에게 제안하고 협상하는 것이 내가 맡은 주요 미션이었다.


   마트에는 우리 제품뿐만 아니라 수많은 경쟁사 제품들이 같은 공간에 진열되기 때문에, 마트 담당자가 우리 회사 제품을 골든 존(Golden Zone: 고객이 매대 앞에 섰을 때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해 주느냐 마느냐에 따라 나의 매출 목표 달성 여부가 좌우되었다. 영업사원에게 매출은 곧 인격이기 때문에 그 매출을 좌우할 수 있는 마트 담당자는 그야말로 ‘절대 갑’이었다.

   

   ‘영업도 결국엔 사람이 하는 일인데, 내가 진심으로 대하면 마음이 통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나는 매장을 내 집 드나들듯 다녔고, 경쟁사 영업사원은 방문하지 않는 주말까지 매장을 방문하여 일손을 도우며 담당자들의 눈도장을 찍었다. 마트 담당자들이 물건을 진열하면서 손이며 팔에 가벼운 찰과상을 많이 입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지갑에 항상 대일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담당자들의 상처에 붙여 주였고, 나의 진심이 통했던 것인지 점점 그들도 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입사 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내가 담당하는 매장들 중 거의 대부분의 매장에서 경쟁사 제품들을 제치고 우리 회사 제품이 골든 존에 진열되었다. 더불어 영업사원으로서의 나의 인격 또한 한 단계 높아졌다.


   회사 선배들로부터도 ‘신입사원치고는 꽤 하네’라는 평을 들었고, ‘어디 한번 이것도 할 수 있는지 보자’라는 일종의 테스트로, 선배들은 블랙리스트 매장 몇 개를 나에게 담당하게 했다. 그중에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곳이 하나 있는데 바로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한 SSM(Super Super Market) 매장이었다.


   처음 매장을 방문하여 마트 담당자를 만났을 때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은 마치 벌레 쳐다보는 듯했다. 나의 인사말을 가볍게 씹고 돌아서는 그의 등을 보고 있으니, 내 맘속엔 왠지 모를 영업사원으로서의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그 후 의 집요한 방문 끝에 매장 담당자는 퉁명스러운 말투였지만 나에게 입을 열기 시작했고, 요구 사항을 하나둘씩 이야기했다. 매장 담당자가 영업사원에게 요구 사항을 말한다는 것은 영업에서 보통 좋은 시그널 중 하나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하려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기 때문에 담당자의 요구를 내가 해결해 주면 나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담당자에게 요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마치 개미지옥처럼, 내가 그의 요청을 들어주면 들어줄수록 그는 더 많은 것을 원했고, 나에게는 아무런 보답을 하지 않았다. 정도가 심해져 어느덧 그는 불법적인 것, 금전적인 것까지 나에게 요구하기 시작했고 나는 선을 넘지 않기 위해 정중히 거절했다. 


   그 뒤 매장을 방문했을 때 나는 우리 회사 제품들이 모두 매대에서 빠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창고에 가자 매대에 있어야 할 제품들이 긁히고 깨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깨진 틈으로 흘러나온 내용물은 창고 바닥을 흥건히 적시며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향기로운 향을 풍겼다.


“너희 회사 제품 때문에 창고가 더러워졌으니까, 영업사원인 네가 청소해야겠네”


   등 뒤에서 들려오는 그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나는 참았다. 영업사원은 간이며 쓸개며 다 내어 주어야 한다고 알려주었던 선배들 때문이 아니라 아들이 어려운 시기에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고 자랑스러워하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쇼핑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매장의 뒤편, 한 외진 창고에서 혼자 쪼그려 앉아 바닥을 닦으며 처음으로 사회생활의 쓴맛을 느꼈다. 그것은 안톤 버그의 술 초콜릿(Liquor-filled chocolates) ‘위스키 봉봉’처럼, 달콤함 뒤에 밀려오는 쓰디쓴 독주의 맛 같은 것이었다.



Photo by Monique Carrati on Unsplash



이전 07화 회사에는 악당이 너무 많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