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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써글 Oct 10. 2020

회사에 영원한 적은 있어도 영원한 친구는 없다

원수는 회사에서 만난다

‘동료애(同僚愛)’에도 조건이 있다


   직장 생활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가끔 진상 고객을 만날 때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하로(?) 악랄했고, 업무도 어느덧 익숙해져 ‘나 의외로 회사 체질인 듯’ 이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좋았다. 영업은 외부에 적이 많은 직무이기에 그런지 몰라도 동료들 간 쓸데없는 군기도 없는 편이었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서로 상부상조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선배와 후배 사이의 선은 확실한 편이었지만 격식 같은 건 없었고 서로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장난도 칠 정도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리고 행여 누군가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영업사원 선후배들은 함께 모여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그를 위로하고 마음을 달래주기도 했다. 심지어 한 동료의 프러포즈를 돕기 위해 전국 각지의 영업사원 수십 명이 한날한시에 모이는 경우도 있을 만큼 우리의 동료애는 특별했기에, 나는 나의 동료들이 든든했고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우리의 동료애(同僚愛)에도 미묘한 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직장인들에게도 재롱잔치와 같은 것이 있다. 흔히 우수사례 콘테스트(Best Practice Contest)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사내 직원들 중 뛰어난 업무 성과를 달성한 사람을 포상하고 그 사례를 회사 전체 임직원들에게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회사에서 열리는 큰 행사 중 하나로 아랫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를 윗사람들에게 뽐내는 자리라는 의미에서 어린이집 재롱잔치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이 재롱잔치에서 상을 받는다는 것은 윗사람들(주로 임원들)에게 인정받음을 뜻하기에, 많은 직원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의지를 불태우며 행사에 참여한다.


   그동안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동료 관계의 작은 균열을 발견한 건, 영업사원 우수사례 콘테스트 결과가 발표된 후, 한 후배의 쓰라린 경험을 옆에서 지켜보면서부터였다. 콘테스트를 열심히 준비했던 선배들이 수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고, 어떤 경우는 후배가 선배를 제치고 더 높은 상을 받기도 했다. 더욱이 그 콘테스트의 최고 상을 받은 것이 베테랑 영업사원이 아니라 입사한 지 몇 년 채 되지 않은 한 풋내기 신입사원이었기에, 결과 발표 후 한동안 어색하고 미묘한 공기가 회사를 감돌았다. 그리고 그를 대하는 동료들의 분위기가 하루아침에 싹 바뀌었다.


‘신입사원 케이스가 상을 받는다는 게 말이 되냐?’


   자신들의 오랜 회사 생활의 노력이 한 신입사원에 의해 부인된 듯, 많은 동료들은 냉랭한 태도로 그를 대하기 시작했다.


‘그래,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걔는 상 받은 영업사원이니까, 블랙리스트 매장들은 걔가 다 하면 되겠네’


   돌변한 동료들의 태도에 그는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고, 사람들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수상을 하고도 눈치를 봐야 했던 분위기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아마 얼마 전까지 자기가 맘 편히 고민을 털어놓고 의지했던 동료들과의 불편해진 관계였을 것이다. 그 후 시간이 흐른 뒤 그는 특유의 털털한 성격 덕에 대부분의 동료들과 다시 예전과 같은 관계를 회복했지만, 몇몇 사람들과는 끝끝내 서먹한 사이로 남은 듯했다.


   그 사건을 옆에서 지켜본 나는 ‘회사 동료는 친구가 될 수 없다’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어떤 사람으로 인해 누군가의 자존심에 조금이라도 스크래치가 나거나, 누군가 자신이 누려야 할 기회가 그 사람 때문에 박탈당했다고 느낀다면 회사의 동료는 언제든 그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동료애라는 것에는 조건이란 게 붙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Photo by Papaioannou Kosta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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