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운하와 행성X
앞글 명왕성 2편에서 예고했듯이, 극동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조선과도 연이 닿았던 젊은 시절에 이어, 명왕성 발견에 기여한 천문학자로서의 퍼시벌 로웰에 대해서 적어본다.
1894년 로웰은 극동 아시아 생활을 청산하면서 화성에 대해서 관측하기로 마음 먹고, 로스앤젤레스 동쪽 애리조나 주의 2200m 고산지대에 로웰 천문대를 세운다. 부유한 명문 집안 출신에, 하버드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학창 시절 천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던 로웰이므로, 직접 천문대를 건립하는 일이 이상하지는 않다. 그런데, 특별히 화성을 관측하기로 마음 먹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화성에 지적 생명체가 만든 운하가 있다는 뉴스가 천문학계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큰 관심거리였기 때문이다.
오늘날이라면 얼토당토 않을 이야기지만 왜 당시에 화성인의 운하가 관심거리였는지 알기 위해서는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 오늘날 사람들이 SF 소설/만화/영화를 통해서 툭하면 외계인을 상상하듯이, 당시 사람들도 외계인에 대해 상상을 많이 했다. 유럽 문화가 본격적으로 외계인을 상상하게 된 것은 1600년대 뉴턴(Isaac Newton, 1643~1727) 등에 의해 지구가 다른 행성들처럼 태양을 공전하는 행성 중 하나라는 사실이 확증되면서부터이다. "행성 중 하나인 지구에 인간이 산다면 다른 행성에도 인간 같은 생명체가?" 자연스럽게 이런 상상을 했던 것이다. 그런 사회 풍조 아래서, 대표적인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인 볼떼르(Voltaire, 1694~1778)는 1752년 발표한 소설 '미크로메가스'(Micromégas)에서 시리우스 별의 거대 외계인과 토성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당시 사회를 풍자하기도 했다.
• 화성은 지구에 비해 태양에서 1.5배 멀리 떨어져 있고, 1년의 길이가 687일 정도 되며, 직경이 지구의 반 정도(질량은 지구의 10%)라는 점에서 지구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옅은 대기가 있으며, 자전 주기가 24.6시간 정도로 지구와 비슷하고, 자전축이 25도 정도 기울어서 지구와 비슷한 4계절의 변화가 있다. 당시 천문학자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실제로 화성 극지방의 빙하인 극관이 화성의 1년 주기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현상을 당시에도 관측하고 있었다.
• 당시에는 대규모 운하 건설이 뉴스거리였었다. 1869년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었고, 이에 고무되어 여러 해 준비한 끝에 1881년에는 파나마 운하가 착공되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사단의 시작은 -_-; 1877년 이탈리아 천문학자 지오반니 스키아빠렐리(Giovanni Schiaparelli, 1835~1910)가 화성에 대륙이나 바다 비슷한 지형과 함께 바다를 잇는 해협 같은 지형도 있다고 망원경 관측 결과를 발표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말로 해협은 'canali'였고, canali는 인공적인 해협 즉 운하를 뜻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해협의 의미가 강하다고 한다. 이를 영어로 번역하면 'channel' 정도가 적당했을 텐데... 대운하 시대 탓인지, 당시에도 언론이란 선정성을 좋아했던 탓인지, 스키아빠렐리의 원래 주장부터 문제였던 탓인지, 아니면 이 모두가 탓인지 -_-; canali를 'canal' 즉 자연 해협이 아닌 인공 운하로 번역한 영어 뉴스 기사가 뿌려졌다. 이러니 영어권에서는 화성에서 지적 생명체가 건설한 운하가 발견되었다는 의미로 읽혀버렸다. 어느 날 아침, 상상하던 외계인이 실제로 존재하는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졌던 거다.
이런 오보 아닌 오보에 대해 마치 자동재생 동영상처럼 -_-; 화성 운하에 대한 각종 가짜 뉴스와 비과학적 학설들을 쏟아지는 과정이 뒤따랐다. 연쇄적으로 여러 천문학자들도 이에 낚여 -_-; 화성의 운하를 직접 관측하겠다고 나서기에 이렀다. 젊은 시절 천문학에 뜻이 있었고, 원한다면 천문대를 건립할 수 있었던 수퍼리치(super rich) 로웰도 그렇게 낚인 -_-; 사람 중 하나였다.
1894년 자신이 건립한 로웰 천문대에서 화성을 관측하기 시작한 로웰은, 1895년부터 'Mars'(화성, 1895), 'Mars and Its Canals'(화성과 운하, 1906), 'Mars As the Abode of Life'(생명체가 있는 화성, 1908)이라는 화성 관측 결과를 담은 책 3권을 잇따라 출간하였다. 이 책들에서 로웰은, 화성에는 거대한 관개용 운하를 건설하여 극지의 물을 운송해 메말라가는 대지를 살리는 고도의 지적 생명체가 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그 근거로 자신이 화성 운하를 관측한 결과를 그림으로 제시했다. 로웰은 화성 뿐 아니라 금성에도 빛살 모양의 지형이 있다고 주장했고, 수성의 표면에도 줄무늬 지형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로웰 등의 화성 운하 주장은 당대부터 여러 천문학자들에 의해 반박되었다. 정말로 운하가 있다면 다른 천문학자들도 관측했을 텐데(있어 보이는 말로 재현성 검증이라고), 일부 운하를 봤다는 천문학자도 있었지만 운하를 관측하지 못한 천문학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많은 천문학자들이 지속적으로 관측한 결과, 화성의 운하는 일종의 착시 현상으로 밝혀졌다. 당시 정밀하지 않은 천체망원경에 지구 대기의 일렁임이 겹치고, 이런 상태로 화성의 밝고 어두운 지형을 관측하다 보면 인간 시각의 오류까지 겹쳐서, 순간적으로 검은 점 같은 지형(바다로 오인)이 보이거나 선(운하나 해협으로 오인)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착시 현상은 일시적으로 발생했다 사라지기 때문에, 주의 깊게 관측한다면 실제 지형이나 운하와 충분히 구분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금성처럼 두꺼운 대기에 둘러싸여 지형 지물을 관찰할 수 없는 천체에서도 로웰 등은 지형을 관측했다고 주장했으니, 착시와 관측 오류가 분명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1907년에는 알프레드 월리스(Alfred Wallace, 1823~1913)가 화성은 생명체가 살기에 적당하지 않음을 지적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월리스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과 같은 시기에 독립적으로 자연선택 진화론을 연구하다가, 안타깝게 최초 발표자의 지위를 놓친 것으로 유명한 과학자이다. 월리스는 "화성 대기를 스펙트럼 분석했으나 물 성분을 찾을 수 없었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화성이 지구보다 춥고 건조한 기후에 대기압도 낮아서 화성 표면에는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없다며, 로웰 등 화성 운하론자들을 논박했다.
오늘날, 각종 첨단 관측장비와 화성 표면에서 직접 탐사하는 로봇탐사선 등을 통해서 월리스의 주장이 옳았음이 밝혀졌다. 인류는 그나마 -_-;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화성에서 어떤 생명체의 흔적을 찾기를 기대하면서 태양계 행성 중 가장 관심을 가지고 많은 첨단 장비를 투여해서 탐사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고도로 발달한 지적 생명체는 고사하고 다른 어떤 생명체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혹시 극히 원시적인 생명체를 발견할 수도 있어서 탐사를 계속하고 있긴 하다만... 지금은 미래 식민지 -_-; 가능성에 관심이 더 많은 듯?!?
명왕성 2편을 통해서 젊은 시절의 로웰이 지적 능력과 탐구심이 많으며, 치우치지 않은 온당한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해서 학자로서 자질이 충분한 젊은이였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자질 좋은 젊은이가 어쩌다 사이비 천문학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을까?
주목할 부분은 로웰이 수학을 전공하고 천문학에 관심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전문적인 학자로서 경력을 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학교 공부를 마치고 업무에 투입되어서 실험을 하거나 관측을 할 때, 굉장히 많은 초보 전문가들이 신기하고 획기적인 현상을 발견하곤 한다. 순간 "내가 책에서나 보던 초보의 세계적인 발견을 한 것일까" 꿈에 부풀기도 하지만, 사실은 오류를 저지른 걸 몰랐거나, 경험 부족으로 예상 못했던 요인이 끼어든 것을 놓치고 오해했거나, 알려진 사실인데 몰랐거나 하는 경우가 99.999.......%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ㅠ.ㅠ (물론 진짜 초보의 세계적인 발견인 경우도 있는데, 기대와 달리 이런 경우는 극소수)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자신의 실험이나 관측 결과에서 오류를 자기 검증하고 교정하는 훈련이 되고, 이런 훈련을 거치면서 신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전문학자나 기술인으로서 거듭나는 것이다. 자기 검증하고 교정하는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정말 멀끔하게 자질 좋고 똑똑한 젊은이가 어느 날 사이비 이론에 빠져서 헤어나질 못하기도 한다. 실제로 주변에서 봄 =,.=; 심지어 업적을 쌓은 전문적인 학자조차도 훈련받은 자기 검증/교정에 일순간 소홀하다가 그간 쌓은 업적을 모두 말아먹는 -_-; 망신스러운 과오를 저지르기도 한다.
지적이고 온당한 태도를 지녔던 로웰이 사이비 천문학자의 길에 빠진 것도 자기 검증/교정하는 훈련 과정 없이 곧바로 전문적인 천문학자의 길을 갔고, 이 상태에서 많은 비용을 들여서 자신의 이름으로 건립한 천문대에서 뭔가를 이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집착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명왕성 1편에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로웰은 해왕성 너머에서 천왕성과 해왕성의 궤도 운동을 교란하는 미지의 행성을 행성X(Planet X)라고 이름 붙였고, 1906년부터는 행성X를 탐색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행성X는 화성 운하 주장으로 실추된 로웰의 명예를 높여줄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수학을 전공했던 로웰은 행성X 위치에 대한 추산치를 직접 계산하고, 추산된 위치 근처를 망원경으로 뒤지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행성X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나, 수년 동안 계속된 이런 탐색 작업은 이미 50세가 넘은 로웰에게는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작업을 계속하며 60이 넘은 나이까지 행성X를 찾던 로웰은 건강이 나빠졌고, 결국 1916년 사망하고 말았다. 로웰이 행성X 탐색 과정 중에 촬영한 천체사진들을 훗날 검토해보니, 1915년 로웰이 명왕성을 촬영까지 했으나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한다.
화성의 운하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로웰의 생전에 널리 알려졌다. 행성X도 당시의 행성 데이터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지 실재하지 않는다고 후대에 밝혀졌다(명왕성 5편). 결국 천문학자로서 로웰은 신기루 같은 대상들만 쫓다가 생을 마감한 셈이다.
그러나, 로웰이 주장했던, 죽어가는 화성에 운하를 건설해 대지를 살리는 뛰어난 지적 생명체가 있다는 이야기는 대중들에게 천문학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에 훌륭했다. 로웰의 화성인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중문화에 커다란 반향을 낳았고 여러 SF 소설/만화/영화에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로웰이 이름 붙인 행성X도 왠지 흥미를 끌지 않나? 여기에 훗날 명왕성이 발견되고 로웰의 기여가 인정되면서, 천문학자로서 로웰이 터무니 없는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라고 인정되었다. 내리막길 말년 인생의 끝에 반전의 묘미가 더해졌으니, 정말이지 인생의 아이러니?!?
이로서 로웰은 1900년대 초반 가장 대중적으로 관심 받은 천문학자로 추앙받았고, 로웰을 기념하기 위해 달과 화성의 크레이터(Crater)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 고전 SF소설 '타임머신'(1895) 등으로 널리 알려진 SF작가 H. G. 웰스(Herbert George Wells, 1866~1946)는 1897년에 '우주 전쟁'(The War of the Worlds)이라는 유명한 SF소설을 발표했다. 화성의 지적 생명체가 지구를 침략한다는 이 고전 SF 명작은 로웰 등의 화성 운하 주장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 받은 대중문화 작품으로 꼽힌다.
그런데, 책의 제목은 화성과 지구 두 세계의 전쟁이라는 의미지만, 책의 내용은 고도로 발달한 화성의 지적 생명체가 일방적으로 지구 인류를 무자비하게 유린한다는 것이다. 이런 설정에 대해서, 서구 제국주의가 일방적으로 미개발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고 무자비하게 침탈하는 당시 세태를 고발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웰스 자신이 밝히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웰스가 알던 것보다 훨씬 많은 서유럽의 잔혹한 식민지 침탈 역사가 알려져 있다. 소설 '우주 전쟁'에서는 지구 세균 때문에 침략자 화성인이 몰살 당하지만, 식민지 침탈 역사에서는 반대 상황이 벌어져서, 침략자 유럽인들이 보유한 세균에 대한 면역력이 없던 원주민들이 거의 몰살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소설의 설정도 이런 역사적 사실에 기반했는데, 소설의 인식보다 식민지 침략의 현실은 훨씬 참혹했다.
• 소설 '우주 전쟁'과 관련된 곁다리 이야기를 몇가지 적어보자.
- 1938년 미국 CBS 라디오에서 '우주전쟁'을 각색하여 방송했는데, 라디오 방송을 들은 미국 사람들이 실제 화성인이 침공한 줄 알고 대피하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오늘날 생각하면 우스광스럽기도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의 악몽이 가시기 전이고 제2차 세계대전을 눈앞에 둔 시기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해되기도 한다.
- 이 라디오 드라마를 연출한 사람이 바로 23세 약관의 오손 웰즈(Orson Welles, 1915~1985)였다. 요즘 한국 세태라면 어린 라디오 방송 PD의 치기는 놀란 사람들에게 돌 맞다가 피지도 못하고 사그라들었으려나? 그러나, 오손 웰즈는 이 드라마로 유명세를 얻어 영화감독으로 헐리우드에 입성했고, 어린 나이에 제작했음에도 영화 기법의 새 지평을 여는 등으로 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명작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을 만들었다. 몇년 전까지 어지간한 명작영화 순위에서 당연한 듯 1위를 차지했던 '시민 케인', 정작 당대에는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 I, 1863 ~ 1951)를 풍자했다는 혐의 때문에 방해공작을 당하는 등으로 흥행에 실패해서, 웰즈 자신을 파산으로 몰고 갔다. 속칭 "저주 받은 걸작"의 최고봉?!?
- 소설 '우주 전쟁'은 1953년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되었다. 원작 소설의 비판 의식이 결여된 당대 상업 영화의 정형화된 틀에 얽매인 영화였지만,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1946~) 등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스필버그는 자신의 히트작 'E.T.'(The Extra-Terrestrial, 1982)에 1953년판 '우주 전쟁'의 오마쥐 장면을 넣기도 하다가, 2005년에 결국 현대적으로 각색된 영화 '우주 전쟁'(War Of The Worlds, 2005)을 제작했다. 스필버그는 오래전부터 오손 웰즈의 라디오 대본을 경매에서 구입하는 등 이 영화 제작의 꿈을 키웠지만, 비슷한 외계인 침략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 1996) 때문에 미뤄야 했다고...
원작 소설이 발표되었던 로웰의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화성에 지구를 침략할만한 지적 생명체가 없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2005년판 '우주전쟁'에서는 침략한 외계인이 화성이 아닌 알 수 없는 별에서 온 것으로 설정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