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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elite May 02. 2017

행성이 뭘까 1

고대인의 관점에서 본 행성과 항성, 별자리

(* 원글은 2015.7.4일 브런치 첫번째 글로 적었는데, 최근 편집하다가 실수로 삭제해버림 ㅠ.ㅠ 브런치에 문의했더니 삭제 복구는 안 된다고 해서, 구글 검색엔진에 저장되었던 것을 토대로 새 글을 작성하는 방식으로 겨우 복구했네요. 내용은 복구했으나 옛 글의 리플 등등 기록은 날아감 -_-; 그래도 복구가 된 게 어디냐 하고 있네요 ㅠ.ㅠ *)



명왕성 로봇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New Horizons)가 9년 여의 긴 여정 끝에 이번 달 14일인 2015.7.14일에 명왕성을 통과하면서, 그동안 망원경으로만 어렴풋이 관측했던 미지의 천체인 명왕성을 인류가 직접 관측하게 된다. 이를 기념해서 명왕성에 대한 소개글을 적어보려고 했거든. 근데 이게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니더라구. 명왕성을 둘러싸고 소소하지만 잡다한 이야기 거리가 많아서...

    그리고 예전에 블로그 해 본 경험으로... 방문객 중에 글로 적은 내용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잘 모르는 일반 사람들이다. 때문에 블로그 같은 사이트를 진지하게 운영해봤다면, 아는 사람에게는 단어 하나면 끝날 설명을 일반 사람 대상으로는 몇 문단에 걸쳐 설명해야 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했을 거다. 그나마 연관 글이라도 적어놨다면 이를 기반으로 설명을 줄일 수 있을 텐데, 지금은 브런치도 초행길이라 기반으로 삼을 연관 글도 없어서 어려움이 더더욱 커진다. 이러다 보니 "14일에 맞춰 명왕성에 대해서 설명하려면 적을 글이 산인데 어떡함?"하고 고심 ㅠ.ㅠ ....... 한참 하다가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도 있고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고 해서 하나씩 적어보기로 했다.

오늘은 첫 번째로 태양계와 명왕성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지만, 명확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드문 "과연 행성이 뭔가?"하는 문제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현대의 관점


현대에는 천문학이 태양계의 구조를 잘 이해할 만큼 발달했고, 그 결과로 일반 사람들도 태양계의 기본 구조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다. 때문에 "행성이 뭐야?"라고 물으면 대부분 맨 위의 제목줄 배경 사진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태양을 공전하는 별이 행성이고, 태양은 자체 발광인데 행성은 태양 빛을 반사해서 빛나고, 항성은 태양처럼 크고 스스로 빛나는 별인데 엄청 멀리 떨어져있어서 작게 보이고... 어쩌구저쩌구..." 정도를 설명할 수 있다. 혹시 자신이 설명 못하더라도 옆에서 설명해주면 "그래, 그거야. 나두 그 정도는 안다구!" 말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니 "행성이 뭐냐구? 껌이네?" 생각도 든다.


태양계의 기본 구조


"그런데 말입니다" ....... 요새 TV 탐사 프로그램에서 저런 말을 많이 사용해서, 저런 말이 나오면 반사적으로 뭔가 걸리는 기분이 드는 사람이 많을 거다만 -_-;;;

    인류가 행성을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별이라고 명확하게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600년대로 길게 잡아야 약 400년 정도다. 위의 제목줄 배경 사진처럼 명왕성과 카이퍼 대(Kuiper Belt) 천체 등 태양계 외곽까지 잘 이해하게 된 것은 1900년대 후반으로 약 30년 정도다. 하지만 기원전 2000년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000~5000년 전 수메르/바빌로니아 문명으로 대표되는 고대 서아시아 문화권에서 벌써 항성과 행성을 구분해서 관측했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로 인류가 행성을 인지한 역사는 오래되었다. 그러면, 고대 사람들은 태양계의 구조를 몰랐으면서도 어떻게 행성을 구분했을까?

    이 글에서는 고대인의 관점에서 행성을 구분하는 방법을 살펴보면서, 행성과 항성 그리고 별자리의 역사적 유래를 알아보려고 한다.


고대인의 관점


일반 사람보다 천문학에 조금 더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대 사람들이 행성을 한자말 그대로 行星, 나다니듯이 움직이는 별로 이해했다는 것을 안다. 영어로 행성이 planet인데, 역시 고대 그리스어로 하늘에서 떠도는 별이라는 의미의 말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행성을 우리말로 떠돌이별이라고도 한다. 여기까지는 기초 천문 상식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움직이고 떠도는 별이라니? 하늘에서 뭘 어떻게 움직이고 떠돈다는 거야? ... ?!???

    사실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에 태양과 달과 별들은 매일 뜨고 지며 시시각각으로 움직인다. 아래 사진(출처 : APOD   Star Trails above Table Mountain)은 별들이 지구 자전 때문에 움직이는 궤적을 장시간 노출 사진에 담은 것이다. 천체 사진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다면 비슷한 사진을 많이 봤겠지. 이렇게 지구 하늘에서 모든 별은 항상 움직인다. 고대인들이 비록 지구가 자전하는 줄은 몰랐지만, 모든 별들이 시시각각 움직인다는 사실은 알았다. 천문 지식이 없더라도 누구나 밤하늘만 유심히 살펴 본다면 알 수 있으니까... 그럼 고대인에게는 모든 별이 행성이었다는 말인가?

지구 자전 때문에 생기는 별의 궤적

밤하늘을 유심히 관찰한 사람이라면, 별들이 뜨고 지며 움직이는 중에도 모양이 유지된다고 말할 거다. "무슨 모양?"하며 캐물어서 난감하게 만들면 짓궂을까?!? ^^;    

    예를 들어, 오리온 자리라는 밝은 별 몇 개로 구성된 겨울 밤하늘에서 유명한 별자리를 안다면, 별들이 시시각각 움직이면서도 오리온 자리의 모양은 유지된다는 사실도 쉽게 안다. 모양이 유지된다는 것은 별들끼리 위치와 방향이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이걸 있어 보이면서도 쉬운 말로 별들의 상대 위치가 변하지 않는다고 표현한다.

    다른 예를 들어, 농구공 위에 매직펜으로 ☆을 몇 개 그려놓고 농구공을 뱅그르르 돌려보자. 농구공 위의 ☆들도 공을 따라서 돈다. 하지만, 돌면서도 농구공 위에서 ☆들끼리 상대 위치는 변하지 않고 ☆이 배치된 모양을 유지하면서 돈다. 바로 이 점을 이용해서 고대인들은 항성과 행성을 구분했다.


항성과 천구


아무리 수 없는 밤을 별들이 뜨고 져도 밤하늘에서 보이는 대부분의 별들의 상대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 서로의 상대 위치가 변하지 않고 고정된 별들을 항성(恒星, fixed star)이라고 한다.    

    일부 고대 문화권에서는 하늘이란 커다란 공이고, 항성은 그 공의 껍데기에 붙어있으며, 그 공이 돌기 때문에 항성들이 시시각각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위의 농구공 예처럼... 당연하겠지만 지구의 자전를 몰랐던 고대인들은 지구가 아니라 하늘의 공이 하루에 한번씩 자전한다고 생각했다. 기원 전 시대의 고대 세계에서 수학과 기하학이 특히 발달했던 고대 그리스 문화권에서는 항성들이 붙어있는 공이라는 발상을 발전시켜 천구(天球)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 천문학은 이런 천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물론 현대 천문학은 천구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지구 하늘에서 보이는 별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기에는 아주 편리하기 때문에, 현대 천문학에서도 천구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한다. 항성이 영어로 fixed star이고 이것을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천구라는 개념을 이용하면 항성은 가상의 천구에 고정된 별이라는 뜻이 된다.

현대 천문학에서 그린 가상의 천구와 내부에서 지구가 자전하는 모습 (현대와 달리, 고대인들은 지구가 아닌 천구가 자전하는 것으로 생각했음에 유의)


별자리


별자리(Constellation)를 가장 쉽게 설명하면 항성 몇 개를 묶은 모음에 이름을 붙인 것이다. 위에서 오리온 별자리를 이야기했듯이, 항성을 안다면 별자리라는 개념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왜 별자리를 정했을까?"라는 문제를 생각해본 사람은 많지 않겠지.

    별자리를 정한 근본 이유를 사람의 연상 작용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에게는 맘대로 모양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서도 자신에게 친숙한 어떤 형상을 떠올리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밤하늘을 수 놓은 별들이 배치된 갖가지 모양을 보면서도 자연스럽게 어떤 형상을 연상한다. 그런데, 구름을 보고 연상하는 형상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듯이 별들을 보고 연상하는 형상도 사람마다 다르다. 이걸 있어 보이는 말로 "연상 작용은 개인적"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별자리는 개인적이지 않고 사회적 합의에 의해 정해지고, 특히 밤하늘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거나 이해를 많이 하는 전문가 집단이 별자리와 그 규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주도한다. 여기 전문가 집단이란 천문학자 집단(고대에는 천문학자가 대체로 점성술사)이다. 전문가들이 왜 별자리 규칙을 정하는 일에 나섰을까?

    별자리가 정해지는 과정은 언어가 정해지는 과정과 비슷한 면이 있다. 한국어에서 "밥을 먹다"라는 말은 오랜 세월 동안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정해졌는데,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한국어 학자와 같은 전문가들이 주도해서 한국어 문법이나 말뜻에 표준 같은 것을 정해서 사용하도록 만든다. 왜 이렇게 할까?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의사 소통을 쉽게 할 목적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별자리도 오랜 기간 사회적 합의에 의해 형성된 것을 천문학자들이 주도해서 표준으로 정해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왜? 무슨 목적으로?    

    당신이 겨울철에 밤하늘을 보다가 운 좋게 별똥별이 흘러가는 것을 봤다고 가상해 보자. 옆 친구한테라면 "별똥별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지나가는 것을 봤다"라고 설명하면 충분할 거다. 하지만, 천문학자한테 저렇게 말했다면 뭔가 막연하다고 스스로 뻘쭘하겠지 -_-; 당신이 겨울철 별자리에 익숙해서 "별똥별이 오리온자리 삼태성 끝에서 시작해서 황소자리 플레이아데스 성단 앞에서 끝났다"고 천문학자에게 설명할 수 있다면 스스로도 대견스러울 것이고 ^^; 이 설명을 들은 천문학자도 별똥별이 흐른 위치를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런 가상의 예처럼, 천문학자들이 밤하늘에서 일어나는 천문 현상을 설명할 때 어떤 기준이 있으면 편리하다. 그래서, 1차적으로 아주 밝은 항성을 관측 기준으로 삼았다. 그런데,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밝은 항성이 그닥 많지 않기 때문에, 밤하늘 구석구석 발생하는 천문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2차적으로 익숙한 형태를 이루는 항성 몇개를 묶은 별자리를 천문 현상 관측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니까, 고대부터 천문학자 집단이 개인적 연상 작용과 사회적 합의를 넘어 별자리 표준을 만들었던 이유는 천문 현상을 관측할 때 기준으로 별자리를 사용할 목적 때문이었다.

    이렇게 사회적 합의를 표준화해서 만들어진 별자리 체계는 다른 사회적 합의가 그렇듯이 사회 문화를 형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했다. 인간 사회와 문화가 역사적으로 변화하면 별자리도 같이 변화하는데, 이 때 별자리를 차츰 밤하늘 구석구석 채우는 경향이 나타났다. 밤하늘에 별자리가 가득 차는 것이 관측 기준으로서도 편리하고, 문화 요소로서도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의 의사 소통이라는 목적이 같더라도, 사회마다 사용되는 언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다르다. 마찬가지로, 천문 현상 관측의 기준이라는 같은 목적이라도 별자리 체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역시 사회마다 달랐다. 그래서 여러 고대 문화권에서는 나름의 별자리 체계를 만들어 사용했다.

    현대 천문학계에서 표준으로 사용하는 별자리는 88개로,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해서 중세까지 유럽과 서아시아에서 널리 쓰인 48개의 별자리에, 근대 서유럽에서 천문학과 항해술이 발달하면서 정한 40개의 별자리를 추가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48개 별자리는 주로 북반구 하늘의 별자리이고, 서양 천문학에서 고대부터 관측했던 북반구의 밤하늘을 빼곡히 채운 것이었다. 그러다가 근대에 서양 천문학이 남반구 하늘까지 관측할 수 있게 되자, 추가로 40개의 별자리를 만들어 남반구의 밤하늘을 채웠고, 이로서 밤하늘 전체에 88개의 별자리가 채워졌다.    

    현대 표준 88개 별자리의 기원이 된 고대 그리스 별자리의 유래는 대체로, 그리스 지역에 전래하던 별자리와 천문학이 일찍부터 발달했던 고대 바빌로니아의 별자리를 결합시키고, 거기에 나름의 문화적 의미를 부여해서 만든 것이다. 고대 그리스 지역에서 어떤 목적으로 별자리를 정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문헌 자료가 없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당대 밤하늘에서 달과 태양의 움직임을 관측하기 좋은 위치부터 별자리를 정하기 시작해서 점점 다른 별자리를 덧붙이는 식으로 발전한 경향이 뚜렷하다고 한다.


행성


드디어 본론 ^^; ... 항성과 별자리의 유래를 이해했다면 이제 "행성은 어떻게?"라는 문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대인들이 항성과 별자리를 기준으로 천문현상을 관측해 보니 밤하늘의 대부분의 별은 항성이었다. 그런데, 몇 개의 밝은 별이 별자리와 항성들 사이를 왔다 갔다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별자리 사이를 움직이는 밝은 별을 행성이라고 한 것이다. 맨눈으로 볼 때 이렇게 움직이는 밝은 별이 5개 있었는데, 이것이 고대부터 널리 알려졌던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의 5개 행성이다.    

    오늘날이야 항성은 태양처럼 거대한 별인데 어마어마하게 멀리 떨어져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 별처럼 보이는 것이고, 행성은 비교적 가깝고 태양계 안에서 지구처럼 태양을 공전하기 때문에 별자리 사이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잘 이해한다. 그러나, 행성의 공전을 몰랐던 고대인들에게 늘상 모양이 일정한 별자리 사이에서 밝게 빛나면서 떠돌아다니는 행성이란 매우 신비로운 천체였다. 때문에, 천문학 = 점성술이었던 고대인들은 행성에 관심이 많았고, 별자리 상에 행성의 움직이는 모양이 인간 세상의 길흉화복과 관련 있다고 믿기 일쑤였다.

    고대 사람들에게는 혜성이나 별똥별도 역시 별자리 사이를 움직이는 밝고 신비로운 천체였고, 역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별똥별을 보면서 운세를 따지는 일이 흔했고, 혜성이 오면 사회적 변란이 발생한다고 믿기도 했던 것... (그 밖에 고대인들이 특이한 기상현상을 천문현상으로 혼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나 이 글에서는 적지 않음) 이들 혜성이나 별동별은 고대인들이 보기에도 행성과 차이가 있었고 따로 구분했다. 근본적인 차이점은 행성은 움직임이 규칙적이어서, 관측 정밀도가 낮은 고대 천문학으로도 행성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태양계에서는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매우 규칙적으로 공전하기 때문에, 행성의 공전 운동을 몰라도 지구 하늘에서 행성들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대부분의 고대 사회에서는 혜성과 별똥별에 규칙적인 움직임이 없다고 보았다.


고대 사람들이 별자리 사이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밝은 별 즉 행성으로 분류할 수 있는 천체가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 5행성이었는데, 5행성과 외형 상 차이가 많지만 밝고 별자리 사이를 규칙적으로 움직인다는 의미에서 행성으로 볼 수도 있는 천체가 2개 더 있었다. 태양과 달이 그것으로, 달의 경우는 지구 주위를 규칙적으로 공전하기 때문에, 태양의 경우는 지구가 태양을 1년 주기로 공전하기 때문에 지구 하늘에서 보기에는 상대적으로 태양이 별자리 사이를 1년 주기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일찍부터 천문학이 발달했던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5 행성과 태양, 달을 모두 행성으로 분류했다. 그래서, 바빌로니아 천문학에서는 행성이 7개였다. 이 관습이 고대 그리스 천문학으로 전해지고 현대까지 이어져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서양에서 오늘날에도 'Lucky 7'이라며 7을 행운의 숫자로 여긴다거나, 1주일(week)이 5일도 아니고 10일이나 12일도 아니고 하필 7일인 것도 바빌로니아의 7 행성 관습에서 유래했다.    

    한편, 중국 문화권에서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을 행성과 연결지었다. 우리가 잘 알듯이 陰은 달, 陽은 태양, 五行은 水-金-火-木-土의 5 행성... 중국문화권에서는 날짜를 셀 때 일부 12진법을 적용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수를 셈하는 대부분의 경우 10진법에 따르는 관습을 일관되게 유지했는데, 행성과 음양오행을 연결한 것은 중국문화권의 10진법 관습에 잘 부합했다.



정리


고대인들이 현대 천문학처럼 지구의 자전과 공전, 태양계의 구조를 알지 못했음에도 항성과 행성을 구분할 수 있었던 이유는 [1] 지구의 자전 때문에 모든 별들이 시시각각 움직임에도 대부분의 별들의 상대 위치가 변하지 않고 마치 천구에 붙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천구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는 별들을 항성으로 정하고 [2] 항성을 몇 개씩 묶어 별자리를 정해서 천문 관측의 기준으로 삼았으며 [3] 항성과 별자리를 기준으로 천문현상을 관측하면서, 별자리 사이를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5개의 밝은 별(태양과 달까지 포함하면 7개), 즉 행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고대의 행성과 항성의 구분법을 설명한 것은 단순히 고대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만은 아니다. 고대의 밤하늘에 나타났던 행성의 움직임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밤하늘에도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어느 날 길을 가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익숙하지 않으면서도 유난히 밝은 별이 빛나는 것을 보고 "뭘까?"하고 의문이 드는 경우가 있다. 익숙하지 않은 느낌은 행성이 옮겨와서 흔히 보던 별자리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으로, 옮겨온 밝은 별이 흰색이면 대체로 목성, 붉은색이면 화성, 초저녁이나 새벽에 유난히 밝은 노란색이면 금성이다.

    SF영화나 만화에 별별 환상적인 우주여행에 대한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현실은 여태껏 인간 중 그 누구도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 태양계를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행성의 공전을 직접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인간은 사실 매우 미약한 존재이다. 최소한 현재까지는... 미약한 인간이지만, 익숙한 별자리에 나타나는 낯선 밝은 별을 보면서 행성의 공전이라는 거대한 움직임을 확인할 수는 있다. 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고대인의 관점에서 본 행성에 대해 알아봤으니, 다음 글 행성이 뭘까 2편에서는 모호하고 막연했던 고전적인 행성의 정의를 현대 천문학이 어떻게 명확히 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덧붙이기


• 전문적으로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직업이 있었던 지구 상의 모든 고대 문화권에서는, 밤하늘에서 벌어지는 천문 현상이 땅 위 인간 세상의 운세와 관계있다고 믿었다. 고대에는 어지간하면 모두 인간 운세와 관계 있다고 믿었으니, 천문현상이 운세와 관련있다고 믿는 것도 당연하겠다만... 때문에 천문학자가 있던 모든 고대 문화권에서 천문학자는 곧 점성술사였다.

    중국 문화권에서 천문(天文)도 "밤하늘 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뜻을 읽어 인간사의 운세를 이해한다"는 의미를 가졌다. 황제나 임금부터 '하늘의 뜻'을 중시하면서 하늘을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자 신(神)적 존재로까지 여겼던 중국 문화권에서, 천문이란 하늘의 뜻을 이해해 지상의 운세를 알기 위한 학문이었다.


• 고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수학과 기하학이 발전했던 곳은 북아프리카의 이집트 문화권이었다. 고대 이집트라면 사람들은 흔히 거대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상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렇게 거대하고 기하학적으로 깔끔한 외형에 복잡한 내부 구조를 가진 축조물을 구조를 잘 갖춰서 건설하고, 건설 과정에서 오가는 엄청난 인력과 물자를 조달-관리-감독하기 위해서는 수학과 기하학이 발달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놓치곤 한다. 물론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고학년과 비교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수준이었지만, 당대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는 대단히 높은 수준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기하학과 측량술이 발달하게 된 것은 주기적인 나일강의 범람과 관계 있다고 알려져 있다. 나일강이 범람하고 난 후는 범람원에 새롭게 비옥한 토양으로 뒤덮히는데, 이렇게 새롭게 드러난 땅은 농토로 유용했다. 문제는 나일강이 범람할 때마다 기존 농토의 경계가 사라져버린다는 것이었고, 범람이 지나간 후 농토의 경계를 다시 정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기하학과 측량술이 발달했다. 피라미드가 여타 고대 문명의 거대 축조물과 다르게 기하학적으로 깔끔한 외형을 갖도록 진화한 것도 고대 이집트에서 기하학과 측량술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고대 세계에서 천문학이 일찍 발달한 곳은 바빌로니아로 대표되는 서아시아 문화권이다. 서아시아 문화권과 이집트 문화권이 서로 인접해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고대 그리스 문화권은 초기에는 이집트로부터 수학을 바빌로니아로부터 천문학을 배워오는 입장이었으나, 이를 결합해 당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수학과 천문학을 발전시켰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과 천문학은 그 후로도 쳔년 이상 중세시대까지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중세 유럽에도 고대 그리스의 수학과 천문학이 전해졌으나, 중세 유럽을 지배하던 종교 기독교가 그리스-로마 전통의 상당수를 이교도 신앙이라고 배척하면서 큰 발전 없이 답보 상태였다.

    반면에,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를 아우르고 한 때는 유럽과 태평양 지역까지 진출했던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그리스 천문학과 문화를 이어받고 세계 여러 문화와 교류하면서 이들을 서로 융합시켰다. 거기에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학문을 존중했다. 그래서, 중세시대에는 이슬람의 수학과 천문학이 당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했다. 우리가 아라비아 숫자를 일상에서 사용한다거나, 알데바란처럼 별의 이름 중에 아랍어 이름이 많은 것도, 발달했던 중세 이슬람의 수학과 천문학의 영향이다.

    중세 이슬람의 수학과 천문학은 르네상스 시대를 전후해서 유럽에 전해졌고, 이를 바탕으로 근대에는 서유럽에서 수학과 천문학이 발전해서 현대에 이른다.


(혹시 이 글이 특별히 이슬람교를 지지하는 글로 읽힐까 해서 덧붙임. 요새는 이게 민감한 문제라서...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중세를 넘어 근대에 이르기까지 배타성으로 세계 곳곳에서 심각한 비극을 만들었던 종교는 사실 기독교이다. 현대에 와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할지, 입장이 뒤바뀌어 이슬람의 배타성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규모 면에서는 여전히 기독교가 중세-근대에 일으켰던 종교 참극이 압도적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적은 글이고, 특정 종교를 지지하려는 의도는 아님.)


• 현대 우리가 알고 있는 행성 중 천왕성해왕성은 맨눈으로 천문 관측을 했던 고대인들이 관측하기 어려웠고, 1600년대 초반 망원경이 발명되고 천체망원경이 발달한 후에도 한참을 지나서야 망원경 관측을 통해 행성으로 인지되었다. 천왕성이 행성으로 인류에게 인지된 것은 1781년, 해왕성은 1846년이다.


• 고대 천문학과 달리 현대 천문학에서는 혜성 중 상당수가(전부는 아님) 규칙적으로 태양을 공전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혜성이 태양을 규칙적으로 공전하는 천체임을 최초로 밝힌 사람이 바로 핼리 혜성으로 유명한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 1656~1742)이다. 이 전까지 인류는 태양계가 태양을 공전하는 행성과 행성을 공전하는 위성으로만 구성된 줄 알았지만, 핼리 혜성이 태양을 공전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태양계에 또 다른 구성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글머리에 예고해던 명왕성 관련 글들에서 차츰 적겠지만, 현대 천문학은 혜성을 연구하면서 태양계 외곽 세계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 별똥별에도 약하긴 해도 다소 규칙성이 있고, 여기에는 혜성이 관련되어 있다. 혜성의 꼬리는 혜성에서 떨어져 나온 물질들로 구성되어 있고, 혜성과 그 꼬리가 지나간 자리에는 혜성 물질이 남는데, 지구가 공전하다가 해성 잔존물이 많은 곳을 지나면 별똥별의 숫자가 급증한다. 이렇게 별똥별이 급증하하는 현상을 유성우라고 하고, 지구가 공전하면서 해성의 잔존물이 위치한 공간에 다다르면 유성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1년 중 비슷한 시기에 유성우가 발생하는 규칙성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유명한 사자자리 유성우의 경우 매년 11월 중순 경에 발생한다.


• 현대 천문학은 항성이 은하계의 구성요소 중 하나이고, 태양처럼 핵융합을 통해 자체 발광하며, 우리 은하계에는 수천억 개의 항성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듯이, 항성들도 우리 은하계의 중심부를 공전한다. 태양 역시 은하 중심부에서 약 3만 광년 정도 떨어져서 대략 2억 5천만 년 정도에 한번씩 은하 중심부를 공전한다.    

    항성들이 은하 중심부를 공전하고 항성마다 공전하는 궤도나 속도가 다르므로, 사실은 항성들도 매우 느리게나마 지구 하늘의 별자리 사이를 움직인다. 항성도 사실은 고정되지 않은 별, 다시 말해 항성이 사실은 fixed star가 아닌 것이다. 이런 항성의 움직임을 고유운동(proper motion)이라 하고 1718년 최초로 확인되었다. 고유운동을 최초로 확인한 사람도 바로 에드먼드 핼리다.

    고유운동 때문에 별자리 모양은 영원히 유지되지 않고 세월이 흐르면 변한다. 다행스럽게 고유운동은 크기가 매우 작아서 정밀한 관측이 아니라면 사람의 한평생 정도 기간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인류가 별자리를 정하고 관찰한 몇천 년의 기간이라도 망원경 정밀 관측이 아닌 맨눈 관측이라면 별자리 모양이 "약간? 뭔가 좀?" 정도로만 느낄 거다.

    그렇지만... 현재 학설에 따르면 우리 인류의 조상인 현생 인류는 약 7만 년 전 동아프리카를 떠나 아라비아 반도로 이주했고 이 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하는데, 약 7만년 전 아라비아 반도에 닿은 우리 인류의 조상이 보았던 밤하늘의 별자리는 오늘날과 상당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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