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학자 정희진은 무려 10권에 이르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등하굣길 지하철 안에서만 읽었다고 한다. 학교를 오가는 지하철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는 읽지 않으려 무척이나 애썼다고. 그리고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더 중요한’ 사회과학 책을 읽기 위해서였다”*고. 『태백산맥』을 읽는 데 빠져 정차역을 지나치는 일이 예사였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그럴 정도로 말이다.
책 하면 조용한 방 안에서 의자를 당겨 허리를 곧추세운 뒤 읽어야 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적당한 소음이 있고, 백색소음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약간의 흔들림이 있는 지하철과 기차와 버스는 생각보다 근사한 독서용 장소가 되어준다. 대중교통은 책 읽기에 최고의 장소는 아니지만 꽤나 훌륭한 장소임에 틀림없다. 가끔은 너무 시끄러워 책을 읽을 수 없을 때도 발생하지만, 그런 상황은 귀엽게 봐줄 수 있는 예외라고 해두자. 물론 버스는 지하철과 기차보다 자주 서고 불규칙한 움직임이 많아 불편하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출퇴근길의 대중교통은 어떻게 하느냐고? 뭐, 그것도 너그러이 예외적인 경우라고 해주자. 이러다 보니 예외가 너무 많아 예외라는 말이 겸언쩍어진 모양새이지만, 어차피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괴로운 상황이라면 스마트폰도 손에 쥐기 힘들다.
『종이책 읽기를 권함』의 저자 김무곤은 심지어 책을 읽기 위해 일부러 대중교통을 이용했다고 고백한다. “한때는 책을 읽으려고 기차를 탔다. 신촌 기차역에서 일산으로 가는 기차는 왕복 1시간 20분이 걸렸다. 캔 커피 하나, 책 두 권 들고 매주 기차역으로 간 적이 있었다. 역 근처 서점에서 신간 한 권, 잡지 한 권 사는 기분은 늘 상쾌하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해도 내리기 싫어진다.”⁑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괴상한 취향처럼 보이는데, 역 주변 서점에서 책을 구경할 때의 기분, 방해되지 않는 정도의 소음이 오고 가는 기차의 분위기를 상상해보면 제법 즐거운 경험일 것 같긴 하다.
열차와 독서의 운명적 ‘케미’?
열차와 독서의 긴밀한 관계의 시작은 약 1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행 중에 기차 안에서 독서를 한다는 생각은 기차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철도의 발명은 여행의 방법, 나아가 이동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이동 시간을 급격하게 단축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팔과 다리와 눈을 이동에 수반되던 긴장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험지를 피하고 편평한 길을 찾아 걸을 필요가, 길을 따라 놓인 주변 상황을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한편으로 이는 여행의 경험이 단순화되었음을 말해준다. 땅 위에서 발을 내딛고 그 걸음에 속도에 따라 천천히 눈에 들어오는 공간 감각과 같은 직접적인 경험은 철도에 앉음으로써 생략되고 그 자리는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영역, 즉 철도의 빠른 속도와 함께 스쳐지나가는 창 밖 풍경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이동 시간이 짧아졌음은 물론이고, 힘들여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되므로 편해졌지만 이러한 변화는 단조로움과 지루함을 동반했다. 할 일이 없어진 팔과 눈을 둘 곳이 필요해졌다. 이동 중에 몰두할 무언가가 아쉬워진 것이다. 이는 여행 중 독서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 있는 것도 아니고, 객차 안에서 처음 마주치는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니 시간을 보내며 몰두할 수 있는 대상은 책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요즘 우리가 비행기를 탔을 때 신문, 영화, 책 등 시간을 보낼 소일거리를 찾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렇게, “19세기 중반 무렵에는 여행 중의 독서가 문화적으로 확고한 자리를 잡는다.”* 독서는 열차 여행의 상징이 되었다.
발 빠른 사업가는 이러한 변화에 맞춰 열차로 이동하면서 읽기에 알맞은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출판인 루이 아셰트(Louis Hachette)는 주요 철도 회사에 기차역에서의 책 판매를 제안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아셰트는 역 내 서점을 개설한 지 몇 년 만에 60개의 지점으로 확대했다. 또한 그는 철도 문고를 제작했는데 도덕적으로 불경하다고 여겨질 만한 내용이나 정치적 분열 및 분노를 야기할 만한 내용이 담긴 책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여기서 아셰트가 철도 회사에 역 내 서점 설립을 제안하며 제시한 근거가 꽤나 흥미롭다. 그는 열차 내에서 아무 할 일이 없는 승객들이 심심함과 답답함을 느낄 테고 그러한 짜증으로 인한 분노를 철도 회사를 향해 쏟아낼 염려가 있으니, 이러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재미있고 갖고 다니기 편한 책으로 승객들의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며 철도 회사를 설득했다고 한다.⁑ 정치적 메시지가 없는 재미 위주의 책이 철도용 문고로 제작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아무렴, ‘벽돌책’만 아니라면
책과 열차, 나아가 책 읽기와 여행의 친밀성이 무색하게 요즘에는 열차에서 책 읽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이런 말을 늘어놓는 사람들 대부분은 책이 정보를 전하는 여타 매체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들의 모든 주장은 한 가지 방향으로 향한다. 결국에는 책을 읽자는 지루하고 뻔한 설교. 앞뒤 꽉 막힌 설교를 듣다 보면 충분히 인정하는 책의 몇 가지 좋은 점마저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어쩌면 이 글 역시 구질구질한 설교를 재미없고 길게 풀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이 주는 효용과 책이 지닌 고유한 가치에 대해서 구구절절 이야기할 생각은 없다. 과거에는 열차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문제라는 식의 접근은 성립하지 않는다. 열차에서 책을 읽게 된 것이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듯이, 지금은 열차에서 책 대신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이 많아진 것 역시 거스를 수 없는 변화다. 역사가 우리에게 말해준다. 이동 중에 집중할 무언가를 찾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심심함을 해소하기 위함이라고. 또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이 책을 읽는 것보다 한심한 일이라고 볼 수 없다. 스마트폰으로는 친구와의 대화, 인터넷 검색, 중요한 일처리 등 가만히 앉아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무궁무진한 종류의 일을 할 수 있다. 책을 읽을 수 있음을 물론이고.
이런 마당에 지하철이나 버스, 기차를 타고 오가는 통근 시간에 책을 읽자고 말하는 건 시대착오적인 사람으로 찍히기 딱 좋은 일이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한번 운을 띄워보려 한다. ‘통근에 어울리는 책이라니, 별걸 다 고민하는구먼’ 하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겠지만, 기나긴 통근길에 책을 읽는 데 활용하고자 마음을 먹었지만 마땅히 읽을 만한 책을 찾지 못해 독서를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므로. 그리고 책이 따라잡을 수 없는 스마트폰만의 재미가 존재하듯이 스마트폰이 따라할 수 없는 책만의 재미가 있긴 하니 말이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경우를 제외한 통근 시간 중에 어울릴 만한 부류의 책을 몇 가지 살펴보면,
① 대하소설: 대하소설의 분량은 적게는 5권 많게는 수십 권에 이른다. 어마어마한 양에 혀를 내두르게 되지만 한 권 한 권은 보통 300쪽 내외이므로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 어렵지 없다. 그리고 첫 장을 넘기기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시작하면 이야기의 리듬에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게 된다. 한 권을 다 읽은 뒤 새로 읽을 다른 책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
② 시집: 무엇보다 얇고 가벼워 좋다. 김수영 전집이나 백석 전집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야 승객들로 가득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러시아워에서도 고상하게 한 손으로 들고 읽을 수 있다. 근처 서점에 들러 시집 코너에 눈에 꽂히는 제목의 시집이 있는지 가벼운 마음으로 훑어보자.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은 성공이다. 그리고 시집을 읽을 때 필요한 태도가 있는데, ‘아님 말고’ 정신이다. 잘 읽히면 좋고, 아님 말고. 이해되면 좋고, 아님 말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자책할 필요도,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다음 시로 넘어가면 된다. 또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다른 시를 읽으면 된다. 적어도 40편의 시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③ 문고본: 문고본은 기본적으로 가격이 낮아 지갑에 부담이 덜하고, 얇고 가벼워 들고 다니기에 편리하다. 또한 다 읽는 데 2시간이면 너끈해, 완독의 뿌듯함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통근에 최적화된 책의 형태인 셈이다. 과거에 비해 그 양과 종류가 줄어들었다고 하나 책세상 출판사의 ‘책세상문고’와 살림 출판사의 ‘살림지식총서’가 꾸준히 발간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음산책의 ‘마음산문고’, 민음사의 ‘쏜살문고’ 등 세련된 디자인과 탄탄한 내용을 동시에 잡은 문고본이 나오고 있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반가운 소식이다.
출퇴근길의 책으로는 가볍고 재미있는 게 제일이다. 물론 국내외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걸 읽으면 된다. 지하철과 기차, 버스에서 읽기 좋은 책을 길게 언급했지만 본인의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게 답이 아닐까. 사실 한 손으로 잡기조차 힘든 천 쪽 내외의 무지막지한 ‘벽돌책’이 아니라면 어떤 책이든 한 권 정도는 들고 다니는 데 큰 부담은 없으니 말이다. 결국에는 읽고 싶은 걸 읽자고 말하면 될걸 뭘 그리 오래 떠들었느냐고 따진다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그럼에도 읽고 싶은 걸 읽는 게 답 아닌 답이 아닐까.
신발장에 책을 두자?!
이런 걸 굳이 연구하고 길게 이야기하는 책이 있다니, 하는 느낌을 주는 책이 있다. 나에게는 『책장의 정석』이 그러한 책인데,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많은 대목에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장이란 과연 심오하고 치밀한 분석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새삼 실감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나루케 마코토는 집 안에 ‘신선한 책장’을 마련해두기를 권하는데, “<신선한 책장>이란 앞으로 읽을 책,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두는 공간이다.”⁂ 이름은 책장이지만 굳이 선반이나 책장을 따로 마련할 필요는 없다. 언제든지 꺼내 펴볼 수 있도록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책을 올려두면 바로 신선한 책장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선한 책장을 “새로운 지식을 맞아들이는 현관”*이라고 표현한다. 이를 응용해서, 이참에 현관 근처 신발장에 지금 읽고 있는 책, 앞으로 읽을 책을 올려두면 어떨까. 회사나 학교로 길을 나서며 책을 집어 들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제자리에 올려놓는 것이다. 한 권을 다 읽으면 다시 새로운 책을 올려놓는다. 신발장에 신발만 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신발장만큼 눈에 잘 띄고 공간도 없으니 신선한 책장으로는 최고의 자리인 셈이다. 대단한 노력과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도 아니니 한번 시도해볼 만할 것 같다. 집 밖으로 나서는 길에 적어도 한 번쯤은 책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못 볼 걸 본 듯 애써 외면하지 말고 일단 가방에 책을 넣어보자.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통근길의 독서가 시작될 테니 말이다.
* 정희진, 「모든 곡식은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지요」, 『한겨레』, 2013. 10. 4.
⁑ 김무곤, 『종이책 읽기를 권함』, 더숲, 2011., 128쪽.
⁂ 볼프강 쉬벨부쉬, 『철도여행의 역사: 철도는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박진희 역, 궁리, 1999., 87쪽.
* 볼프강 쉬벨부쉬, 『철도여행의 역사: 철도는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박진희 역, 궁리, 1999., 86쪽.
⁑ 이언 게이틀리, 『출퇴근의 역사: 매일 5억 명의 직장인이 일하러 가면서 겪는 일들』, 박중서 역, 책세상, 2016., 99~100쪽 참고.
⁂ 나루케 마코토, 『책장의 정석: 어느 지식인의 책장 정리론』, 최미혜 역, 비전코리아, 2015., 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