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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닉 Oct 30. 2022

은행의 노예

자유롭지 않을 자유

퇴사를 앞둔 며칠 전, 나보다 먼저 이직하는 동료와 회사 앞에서 마주쳤다. 그녀가 반갑게 인사했다. 

“주닉! (회사에서는 닉네임을 사용했다)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책 읽으며 생각할 시간을 가진다면서요. 정말 부러워요~”


진심으로 부러워하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권유했다.


“그럼 로아도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바로 이직하지 말고 쉬다가 다음 회사에 들어가는 거죠." 


“저는 멈출 수가 없어요.. 이미 은행의 노예인걸요."


쉬는 게 부럽다고 하면서, 자신은 빚이 있으니 일을 멈출 수 없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들어왔다. 그들은 퇴근하고도 재테크와 몸값을 올리기 위한 공부를 하느라 쉴 틈이 없어 보였다.


내가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집에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일하며 모아놓은 돈과 퇴직금으로 지내고 있다. 나도 빚이 있다. 단, 생각할 여유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의 금액이다.


자유주의의 교본으로 알려진 존 스튜어트 밀(이하 ‘밀')의 저서 <자유론>은 19세기에 쓰였다. 이 책에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밀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더라도 제한해야 할 하나의 자유를 말한다. 그것은 바로 ‘자유롭지 않을 자유free not to be free’다. 그 예로 자신을 노예로 파는 경우를 말한다. 타인의 자유를 막아서는 안 되지만, 자신의 자유 또한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세기 노예의 비유라니 극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밀도 극단적인 예라고 인정하며, 포괄적으로는 자유를 버리는 의미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밀이 없는 지금, 우리는 ‘자유롭지 않을 자유'를 너무 쉽게 행한다. 자발적으로 은행의 손에 자신을 넘겨주곤 노예가 된다. 혹자는 빚을 성장의 원동력으로도 제시한다. 계속 달릴 수밖에 없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달리는가? 왜 인생을 빚에 허덕이며 보내야 하는가? 사람들은 자기 손으로 앉을 자리에 꼬챙이를 설치하고, 앉아서 쉬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겨우 빚을 청산할 때가 되면 새로운 빚을 지고, 더 좋은 집과 좋은 차를 산다. 결국 은행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빚이라는 깊은 바다에 빠져서 숨도 쉬지 못하고 수면을 향해 힘껏 헤엄친다. 수면에 다다라 드디어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을 때 자신을 다시 깊은 바닷속으로 밀어 넣는다. 다시 안간힘을 다해 수면을 향해 헤엄친다. 이 과정은 끝없이 반복된다. 옆에서 보면 마치 숨을 쉬고 싶지 않은 사람 같다. 아니 숨쉬기를 두려워하는 사람 같다.


우리가 필요한 만큼의 소비만 한다면, 노예가 되는 일은 면할 것이다. 가벼운 몸으로 쉬고 싶을 때 쉬고, 생각의 시간이 필요할 때는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설령 빚을 지더라도 자신의 발목을 잡지 않을 정도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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