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의 필요성
금오도 여행을 마치고 여수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나는 늘 그랬듯 시간 대비 효율적인 KTX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클럽장님이 물었다.
“저녁에 약속 있어요? 주훈 씨만 괜찮다면 무궁화호를 타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무궁화호는 KTX보다 시간이 두 배로 걸린다. 하지만 마침 약속도 없고, 돈도 아끼고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알겠다고 하고 무궁화호를 탔다. 지정된 자리 외에 창밖을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열차 칸이 있었다. 거기 책을 가지고 앉았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풍경들이 마치 뽐내기 위해 자기 차례만을 기다린 듯 순서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넓은 몸을 펼쳐 보이는 논, 푸르름을 발산하는 산, 유연함을 자랑하는 강. 자연들의 향연에 가슴이 충만해지고 행복감이 몰려왔다. 무궁화호의 속도는 지나가는 것을 눈에 담기에 적당했다. 마치 움직이는 카페 같았다. 그 5시간은 쓱 지나가 버리는 시간이 아니고 내가 온전히 존재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무궁화호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어차피 집에 일찍 도착해도 여느 때와 똑같은 환경에서 책을 읽었을 건데, 왜 KTX만을 고집했을까? 그것은 관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빨리빨리라는 한국 문화, 돈을 더 지불해서라도 시간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문화가 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효율성과 편리함 때문에 놓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벌고, 그 돈을 지불해서 행복을 느낄 부분들을 건너뛰며 산다. 무엇을 느끼고, 향유한다는 것은 빨리 지나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가끔은 행복을 위해 비효율성이 필요하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다녀온 후 단골집 미용사와 나눈 이야기다.
“손님 제주도 잘 다녀오셨어요?”
“네 잘 다녀왔습니다. 미용사님도 남자친구랑 다녀왔다면서요. 어땠나요?”
“주말에 2박 3일로 갔다 왔어요~ 택시 기사를 고용하는 택시 투어를 했습니다. 제주도 한 바퀴 돌았어요. 중요한 곳은 다 보고 왔습니다”
그 시간 안에 한 바퀴를 돌고 관광까지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네? 2박 3일 안에 제주도 한 바퀴 관광을 했다고요? 그게 가능한가요?”
“기사님이 관광지에 내려주고 기다리시면, 후딱 보고 사진 찍고, 다시 택시를 타서 다음 장소로 넘어가고 했습니다. 바다에 들어갈 시간은 없었어요”
그 답변을 듣고 수긍했다. ‘그래 그러면 한 바퀴를 돌 수 있겠구나.. 그런데 그 아름다운 제주도 바다에 안 들어가다니… 잠깐, 이게 진정한 여행일까?'
가서 사진을 찍고 SNS에 증명하는 여행, 눈에 담을 새도 없이 폰에 담아와야 하는 여행.. 일에 치이는 중 잠깐 누릴 수 있는 여행에서는 강박적으로 일정을 구겨 넣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 여행마저 효율적으로 해야 하는 현실이 정말 슬프다. 휴식을 위해 간 여행에서 지쳐서 돌아온다.
어떤 것을 효율적으로 하면 그만큼 시간이 남아서 여유가 생길까? 아니다, 효율성으로 확보된 시간은 다른 효율성으로 채워진다. 그래서 결국 여유가 없다. 우린 지금 효율성이란 함정에 빠진 것이다. 올리버 버크펀의 저서 <4000주>에서는 그 사실을 정확히 꼬집는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식기세척기, 전자레인지, 그리고 비행기를 사용하면 삶은 더 풍족해지고 느긋한 시간적 여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삶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 사람들은 더 조급해졌다. 오븐 요리를 2시간 동안 느긋하게 기다리던 우리는 지금 전자레인지 앞에서 기다리는 2분도 참지 못하고 약이 올라 수시로 전자레인지 안을 들여다본다. 과거에는 우편으로 사흘이 걸려 받던 소식지를 온라인으로 찾아보며 웹페이지가 열리는 10초도 참지 못해 새로고침 버튼을 누를 준비를 하고 있다.”
전 삼척 MBC 사장인 구영화 작가님은 은퇴 후 지리산에 들어가 <가끔은 고독이 필요하다> <작은 것들의 행복>등의 책을 꾸준히 펴내고 있다. 이분의 인터뷰를 찾아보다가 보게 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오래된 한옥 집을 구매하고 보니 보일러가 깔려 있었단다. 그래서 보일러를 뜯어내기 시작한다. 전 주인이 와서 돈 많이 들여서 새 보일러를 깔아놨는데, 왜 뜯어내냐고 물었단다. 그러니 작가님이 “나는 장작 때고 구들방에 사는 게 로망 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이제 집주인이니 알아서 할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라고 답했다. 지금은 마을 40가구 중 유일하게 장작을 때며 살고 있다. 작가님이 쓴 책에는 행복감이 묻어있다.
나도 내 손으로 인생의 보일러를 뜯어내고, 장작을 태우며 나무의 질감을 느끼고, 가만히 앉아 불의 따스함을 온전히 느껴보는 비효율이 필요하지 않을까? 행복을 코앞에 두고 너무 돌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