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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닉 Oct 30. 2022

SNS는 공짜가 아니다

생각하는 힘을 잃고 있다

혼자 식당에 앉아 국밥을 먹으며 SNS를 보고 있었다. 무표정으로 다음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의미 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고독의 중요성을 느끼던 때였기에, 아차! 하고 폰을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었다. ‘아..! 내 생각을 할 수 없잖아! 밥 먹을 때마저 폰에 빠져있다니 이런..! 이제 다시 생각을 좀 해볼까’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내 눈은 TV에 가 있었다. 순간 나에 대한 실망감이 들면서도 억울함이 몰려왔다. 이게 과연 나만의 잘못일까? 내 집중력이 부족한 탓일까? 주위엔 온통 시선을 끄는 것들이었다. 진동으로 자신을 봐달라고 졸라대는 스마트폰, 수저통에 붙어 있는 광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각종 전광판들... 마치 암컷 공작새가 된 것 같았다. 수컷이 사방에서 화려한 꼬리를 펼쳐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내 시선을 끌어 돈을 벌려고 안달 난 것들뿐이었다.


퇴사 후 보름이 지났을 때다.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지 오웰의 <1984>,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을 차례대로 읽었다. 디스토피아 소설이란 섬뜩한 미래 세계를 그려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장르다.


3개의 소설 내용 모두 결과적으론 사람이 생각하는 힘을 말살한다. <1984>는 공포와 폭력으로, <우리들>은 뇌 수술을 통해, <멋진 신세계>는 값싼 쾌락을 이용해서 말이다. 저자들 모두 각기 방식은 다르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힘을 잃은 미래가 가장 섬뜩하다는 의견은 같이하는 것 같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책은 1932년에 출간된 <멋진 신세계>다. 책에서 그리는 미래상을 더 얘기하자면 무분별한 섹스,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촉감영화, 두통이 없는 합법적 마약 소마soma를 시민에게 제공한다. 이런 오락 요소로 가득한 사회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삶과 사회 체제에 의심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생각할 틈이 생기면 소마를 복용한다. 책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노인들도 일을 하고, 성행위를 하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에 잠길 짬을 낼 틈도 없고, 쾌락 이외의 시간이나 여유를 짜낼 수가 없으며, 어쩌다가 불운한 우발적 상황으로 오락으로 꽉 짜인 그들의 생활에 그런 시간의 공백이 생겨난다고 해도, 그럴 때는 항상 진미의 소마가 마련되어 있어서 (...) 복용하면 그만이지.”


지금 한국은 <멋진 신세계>와 가장 비슷하다. SNS, TV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는 소마와 같다. 생각에 빠지려 하면 값싼 쾌락들이 내 머리끄덩이를 잡고 들어 올린다. 스마트폰은 심란한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런 유혹을 보낸다.


“주훈아~ 뭐하러 어려운 생각에 빠져~ 안 그래도 힘들게 일하고 왔잖아. 일루와 내가 재미있는 거 보여줄게, 너는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 돼! 어때 쉽지?"


유혹을 떨쳐내기는 어렵다. 지하철에서, 잠들기 전 침대에서 심지어는 걷는 중에도(위험천만하다) 눈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그 잠시의 시간도 나에게 허락해 주지 않는다. 그럴수록 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게 되며, 스마트폰에 더욱 의지하게 된다. 악순환에 빠져 중독의 길로 들어선다. SNS 회사 측에서는 아주 좋은 먹잇감을 사육한 것이다.


미디어는 우리의 주의력(시선 + 시간)을 광고주들에게 팔아 돈을 벌기 때문에, ‘주의력 산업’이라고 한다. 우리는 광고주들 앞의 상품이다. SNS는 절대 공짜가 아니다. 우리가 돈으로 지불하지 않는다 뿐이지, 주의력으로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시선이 머무는 곳이 곧 돈이기 때문이다. 마치 공짜로 우리에게 선심 쓰듯 속이며 접근한 것이다. 영리 회사는 절대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주의력은 유한하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아주 귀중한 자원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뜬눈으로 빼앗기고 있다. 오랫동안 쌓인 통계와 기술, 심리학으로 무장한 주의력 산업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거대하게 몸집을 불린 산업은 게걸스럽게 우리의 시간을 먹어 치우고 있다.


주의력 산업은 지금도 계속 발전 중이다. 틱톡을 시작으로 유튜브의 숏츠, 인스타그램에 릴스를 통틀어 ‘숏폼 short form’이라 불리는 기술은 정말 무섭도록 흡입력 있다. 얼마 전에 만난 60대의 이모도, 여행에서 만난 아이들도, 남녀노소 넋을 놓고 빠져있다. 영상의 시간은 점점 짧아져, 우리의 주의력을 잘게 쪼갠다. 짧은 단위로 새로운 자극을 줘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다. 대부분이 내 인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고, 심지어 봤던 게 나오더라도 손은 멈출 수가 없다. 


SNS에 모든 콘텐츠가 쓸모없다는 것은 아니다. 좋은 것들도 있다. 그런 것만 이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만 자극적인 콘텐츠가 판을 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좋은 영상을 보러 들어갔다가 다른 콘텐츠에 끌린다. 혹은 좋은 영상을 보고 나서도 휴대폰을 덮고 거기에 대해 곱씹어 보지 않는다. “오 유익한데!” 하고 바로 다음 콘텐츠로 넘겨 덮어버린다. 우리가 자극적인 콘텐츠에 끌리는 이유는 사람의 본능인 분노, 두려움, 배고픔, 성욕 같은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 아래에 호소하기 때문에 거부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디스토피아 소설 작가들이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던 ‘생각하는 힘’ 즉,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있다. 아니 빼앗기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차라리 <멋진 신세계> 사회의 시민들이 더 행복한 것 같다. 거기는 성과사회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야근하지 않는다. 퇴근 후 일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성공하기 위해 발악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성과사회에 지쳐있고, 겨우 가진 휴식 시간에는 SNS에 정신을 맡겨 버린다. 폰을 보느라 잠까지 설쳐 피곤한 상태로 일터에 돌아간다. 마치 두 개의 맷돌 사이에서 갈려 나가는 것 같다. 여기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위해 남겨둘 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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