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가 뇌에 미치는 영향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방에서 책을 읽다가 마당으로 나와 그네에 앉았다. 앞에 펼쳐진 넓은 잔디밭과 푸른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길 심산이었다. 스마트폰은 방에 두고 나왔다. SNS와 멀어지기 위한 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나 금방 난관에 봉착했다. 방금 읽은 책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자 생각으로 훅~ 이사 생각으로 훅~ 생각이 마치 SNS처럼 자극적인 내용들로 빠르게 넘어갔다. 도저히 하나의 생각을 진득이 잡고 있을 수 없었다. 이미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SNS처럼 되어버린 것 같았다.
이 생각이 강하게 든 까닭은, 방에서 읽은 책이 존 스튜어트 밀(이하 ‘밀')의 자서전이었기 때문이다. 밀은 어릴 때부터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고 토론하는 능력이 남달랐다. 어린 시절의 밀과 성인의 내가 비교되는 마음에 이 경험이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나름 SNS에 저항할 힘이 생기고 고독과도 친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벗어나기는 무리였다. SNS 시스템은 물리적으로 스마트폰 안에만 갇혀있지 않았다. 폰에서 나와 내 피부와 두개골을 뚫고 머릿속까지 헤집어 놓았다. 생각에 깊게 빠지지 못해 지루함을 느끼고 다시 스마트폰을 손에 쥔다면, 그들이 의도한 바일 것이다.
니콜라스 카의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따르면, 사람은 성장을 멈춰도 뇌는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평생의 가소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내가 쓰는 도구와 환경에 따라 뇌의 회로는 계속 재배열 된다. 1990년대 후반 영국 연구자들은 다양한 경력을 지닌 런던 택시 기사들의 뇌를 스캔했다. 그 결과 기사들은 공간적 표현을 저장하고 조작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부분인 뇌 뒤쪽의 해마가 일반 사람에 비해 훨씬 넓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근무 연수가 높을수록 더 넓었다. 런던의 복잡한 도로를 기억하기 위해 그랬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머리를 어떻게 쓰냐에 따라서 뇌는 물리적으로 바뀐다. 그렇기에 우리가 SNS를 할 때도 뇌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럴수록 우리는 하나의 정보에 집중하지 못하며, 표면적으로 스쳐가는 정보를 처리하기 적합하도록 길들여지고 있다.
예전에는 유튜브에 15분 길이의 영상도 짧게 느껴졌지만, 지금 유튜브 숏츠에는 15초 영상이 수두룩하다. 거기에 익숙해진 우린, 이제 15분의 영상조차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긴 글을 읽는 인내심도 없어지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이유다. 최대한 짧고 쉬운 글들을 찾는다. 바쁘다는 이유 아래서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좋게 포장되곤 하지만, 중요한 맥락은 놓치고 결과들만 얻고 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얘기에 오래 집중하기 어려워한다. 조금만 얘기가 길어져도 지루해하고 중간중간 폰을 확인하고픈 욕구가 올라온다. 대화 또한 단발적으로 스쳐가는 가벼운 얘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생각에 빠져 나를 마주하기 어려운 건 당연해 보인다.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도 지긋이 생각해 볼 힘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말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어딘가에 휙휙 끌려다닌다.
이 경험 이후 시간이 지난 지금은 한 주제의 생각에도 곧잘 빠져 오래 생각하곤 한다. 담배를 멀리하고 니코틴이 빠질 시간이 필요하듯이, 이것도 비슷하다. 의도적으로 생각을 깊게 하려고 노력하고, 집중력이 필요한 어려운 책들을 읽었다. 다행히 집중할 수 있는 뇌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뇌의 가변성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잘만 이용한다면 장점이 된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뜻이다.
집중과 인내의 뇌를 장착하고 세상을 마주하게 되면 느낄 수 있는 게 너무 많다. 지금껏 나는 깊이와 맥락이 없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내가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