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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닉 Oct 30. 2022

현실을 가려버리는 것들

드라마는 조미료와 같다

2년 전 코로나로 인해 회사가 재택근무로 전환됐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 기간이 장기화되며 외로움이 커져만 갔다. 동료들과 직접 대면하여 일하기를 좋아했던 나였기에 더 타격이 컸다. 관계로 얻을 수 있는 감정들이 차단됐다. 어떻게든 그 감정을 메꿔보고자 평소에는 보지 않던 드라마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통해 잠시간 외로움을 가릴 순 있었지만 공허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럴수록 더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지나 코로나 규제가 어느 정도 풀리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니 가슴속 공허함이 사라졌다. 이 경험으로 인해 미디어로 접하는 것들이 조미료(MSG)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MSG는 몸에 해롭다는 의심이 많았던 만큼,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됐고. 결국 가장 많은 검증을 거친 식품이 됐다. 미국 식품의약청(FDA)과 세계보건기구(WHO)도 MSG를 안전한 식품으로 분류하면서 오명에서 벗어나게 된다. 맞다, MSG 자체만 놓고 보면 유해할 게 전혀 없다.


앞으로 하는 조미료 얘기는 내 기준 최고의 요리 전문가와 논의를 거쳤다. 전문가는 바로 우리 어머니다. 주부 9단으로써 한식과 양식 자격증이 있고 어린이집 조리사로도 근무한 적이 있다. 어머니와 통화하며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앞에서 MSG 자체는 유해하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영양소를 대체해 버리는 것에서 생긴다. 예를 들어 정성 들여 멸치, 다시마, 무, 양파, 버섯, 양지머리를 끓여 육수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조미료를 쓰게 된다면, 이 재료들을 간소화하거나 아예 건너뛰게 된다. 그러니까 무해하단 이유로 좋은 영양소가 들어올 자리를 꿰차버리는 게 문제다.


각종 예능, 드라마, 영화 등도 마찬가지다. 대체로 그 자체만 놓고 보면 해롭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배역들의 기쁨, 슬픔, 고통을 함께 느끼며 감정을 대리 경험한다. 연애의 달콤함과 성공의 짜릿함을 느낀다. 그런데 이런 것을 겪은 후에 우리에게 남는 것은 없다. 고백의 달콤함을 느껴도 내 옆에 남아있는 애인은 없고, 성공의 짜릿함을 느껴도 내 위치는 변함이 없다. 미디어에 너무 빠져있으면 그것이 우리의 현실 세계를 대체해 버린다.


진화적으로 기쁨, 슬픔, 고통이 느껴지는 것은 거기에 따라서 적절한 행동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에 있다. 미각으로 치면 마치 우리가 상한 맛이 나는 건 뱉어버리고, 맛있는 것은 계속 추구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기쁨’은 같은 행동을 추구하게 하고, ‘고통’은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구한다. 결국 이렇게 감정은 행동으로 연결되고, 상황이 나아지게 만든다.


통화 중 어머니가 이런 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미료는 짠맛처럼 몸에 안 좋은 것을 가려버려, 그래서 사람들은 짜게 먹는데도 짜게 먹는지 모르지, 그렇게 몸에 축적되어 성인병에 걸리고 마는 거야"


그렇다, 미디어 또한 현실의 문제점들을 가려버린다. 함부로 대하는 상사와의 문제 해결,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드라마, 영화 속으로 들어간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감정을 떠먹여 주니 말이다. 그러는 사이 현실은 더욱 악화된다. 불안과 공허함이 가슴에 축적되어 우울증에 걸리고 만다. 우리는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 수고스럽겠지만 우리 노력으로 감정들을 일구고 겪어나가야 한다. 함부로 대하는 상사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는 통쾌함도 실제로 느껴야 하며,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도 실제로 해야 한다. 그래야 삶이 달라진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를 시청하는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가끔 시청하곤 한다. 억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닌,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도 많다. 적당한 시청은 삶을 더 윤기 있게 해줄 수 있다. 조미료도 적당하게만 사용한다면 영양도 놓치지 않고 입맛을 돋게 해주듯이 말이다.


내가 문제 삼는 것은 미디어로 여가 대부분을 소비해버리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때는 TV 방영 시간이 정해져 있었었다. 인기 있는 드라마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드라마가 있다면 방영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보고 싶었던 영화가 추석에 방영된다는 소식이 있으면 추석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 외의 시간에는 친구랑 놀거나 다른 것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넷플릭스, 티빙, 왓챠 등의 OTT(over the top) 서비스들이 성행하면서 콘텐츠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볼거리는 넘치고, 언제나 재생할 수 있고, 시리즈로 나와 몰아보기 때문에 빠져나오기 힘든 구조가 되어 버렸다. SNS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OTT 기업들이 사람들의 시간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 몫이다. 온 세상에 조미료가 팍팍 쳐지고 있는 것 같다.


삶의 주 무대는 현실 세계가 되어야 한다. 문제들을 해결하고 거기서 감정을 느끼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가슴 깊숙한 공허함을 없앨 수 있다. 사람들을 마주하고 나를 마주해야 한다. 관계 속에서 직접 고민하고 헤쳐 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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