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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닉 Oct 30. 2022

어떤 성공을 좇고 있었나

낮은 차원의 성공

퇴사 바로 다음 날, 독서모임 멤버들과 경상남도 산청으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 차에는 4명이 탔다. 그중 2명은 잠이 들어 나와 클럽장님만 깨어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햇빛은 어디에도 방해받지 않은 채로 도로 옆 산으로 내리꽂혔다. 그때 클럽장님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주훈 씨 산을 보면 초록색이 하나가 아니고 굉장히 다양하지 않나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예술가들의 눈에는 더 다채롭게 보일 거예요. 이런 것을 느끼는 사람은 삶을 더 풍요롭게 살 수 있죠. 돈이 많지 않아도요." 


“그럼 많은 돈과 명성을 가진 것이 성공한 삶이 아닐 수도 있겠군요?”


“그렇죠, 슬프게도 돈과 명성을 좇다가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게 더 행복한 삶일까요? 잘 생각해보세요. 단지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자리에 있는 건 낮은 차원의 성공일 수 있습니다.”


얘기가 끝나고 차가 긴 터널로 들어갔다. 동시에 나도 몇 분간 깊은 생각의 터널로 들어갔다. ‘음.. 낮은 차원의 성공이라.. 낮은 차원.. 그래 나도 지금까지 그런 성공을 좇아온 건 아닐까? 모두가 그걸 목표로 사니까, 이 사회에서는 그게 잘 사는 거라고 여겨지니까.’ 그날 온종일 ‘낮은 차원의 성공'이란 단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인문학을 이용해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했던 생각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날 밤 산청 숙소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클럽장님의 과거가 궁금했던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클럽장님은 젊은 시절에 후회스러운 것들이 없나요?” 


답변으로 클럽장님의 일대기를 간략하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슈바이처의 자서전을 읽고 감명받아 인문계로 전과한다. 수능이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 굉장히 위험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한다. 법학과는 부모님의 바람이었다. 클럽장님이 대학에 입학한 80년대는 서울대 법학과에 들어간 이상 검사, 변호사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런데 학사 취득 후 대학원 정치학과로 전향한다. 대학에서 만난 철학 교수님의 영향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 뒤 기자 생활을 18년 하다가 퇴사한다. 계속 있었더라면 더 높은 자리도 노려볼 수 있었겠지만, 클럽장님에겐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책 쓰고, 번역하고, 소개하며 지식 문화를 사회에 전파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지금까지 클럽장님의 과감한 선택들은 항상 반대를 받아왔다. “왜 전과하냐?" “왜 법학과에서 바꾸냐?" “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냐?” 그럴 때마다 클럽장님은 자신의 목소리와 책 속 사상가들에게 의지했다. 꼭 물리적인 스승이 아니라, 책 속에 스승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고, 젊은 시절에는 후회가 없었다. 


이전 독서모임 진행 중 클럽장님이 모두에게 공통 질문을 던졌다. 사회의 압박이 없고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게 어떤 삶이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클럽장님처럼 책을 쓰고 독서모임을 이끄는 지식인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니 클럽장님이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답했다. 


“주훈 씨, 이 길은 돈이 안됩니다. 하하하"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그 부분을 짚어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온 클럽장님의 웃음은 돈으론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풍요로워 보였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서 이런 말을 한다. 

“부자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많이 존재하는 사람이다.” 


물질적인 소유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진정으로 아는 사람, 삶을 향유하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슴속에 일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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