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통사람보다 성취욕구가 매우 높은 편이다. 주기적으로 대회를 참여하거나 목표를 달성해야 살아있음을 느낀다. 다들 그렇게 사려니 했는데 대부분의 지인들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끔 내가 또라이가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역시 관계보다 성취를 추구하는 사람은 대개 좀 또라이적인 기질이 있는 것 같아 기왕 그러하다면 이 평범하지 않은 기질을 오히려 잘 살려보자고 마음먹었다.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결코 편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혼자 밥 먹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지금처럼 혼밥이 유행하지 않고 혼자 밥 먹는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꽤 서글펐을 것 같다. 20대 때는 여자친구들과 모여 종종 수다를 떠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물론 즐거웠다. 하지만 이것을 계속하자 소위 현타라는 것이 오게 되었다. 카페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면 시간은 한도 끝도 없이 들고 대개는 크게 남는 것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는 친구들과 함께 전시장을 찾거나 마라톤을 참가하거나 하다못해 놀이공원이라도 가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만나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할 시간이 모자라 한 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 안달을 해야 다음 약속이 더 기다려지는 편이다.
그럼에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쓸데없는 시간'이 있는데 그건 바로 애인 집에 놀러 가 밤새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재미난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남자친구를 만나도 꼭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을 만나서인지 연애하는 시간 후엔 철저히 개인 시간을 가졌기에 연애가 가능한 듯하다. 그래서 한동안 즐겁게 붙어서 데이트를 실컷 한 후에는 훌쩍 다른 도시로 글 쓴답시고 잠적해 버리곤 한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 다시 먹지 못할 만큼 잔뜩 야식을 쌓아놓고 졸려서 꾸벅꾸벅거릴 때까지 영상을 돌려보며 수다 떠는 일이 얼마나 꿀맛인지 모른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퇴근 후, 육퇴 후에 야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지, 왜 한국에 늦은 시간의 배달이 그렇게 성행하는지 알 것 같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야식 타임을 가지기 전에는 언제나 설렌다. 건강식만 찾다가 작정하고 인스턴트 음식을 실컷 먹는 것과 같은 치팅데이.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일과 글쓰기의 압박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자유를 주는 하루. 그리고 또다시 아쉽게 헤어지면 헛헛한 마음도 잠시, 또다시 앞을 향해 치고 달리는 것이다. 덕분에 짧은 연애를 한 경험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종종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하는데, 장거리 연애 하면서 자주 안 만나면 서로 싸울 일도 없어서 오래 연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행복이라는 지표가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어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다른 이에게는 차순위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세상이 비로소 굴러가는 것 아니겠는가.
사는 것에 대하여, 잘 사는 것에 대하여, 나아가 행복하게 사는 것에 대하여 다른 이들이 쓴 글을 보고 내 삶과 나의 행복에 대해 반문해 보게 되었다. 행복이란 사소한 것이라고, 매일이 행복해야 행복한 것이라고들 했다. 가령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식사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반 사회적인 나 같은 사람 역시 그런 걸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차분하게 노트북 앞에 앉아 일을 하자 비로소 성에 차는 기분이다. 바쁜 일상 속에 평범한 데이트 한 번을 하는 행복이 우리에겐 특별한 이벤트이다. 그 특별한 날을 위해 또 달려야지. 어떤 일이 특별하고 소중한가는, 빈도에서 오는 희소성의 가치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