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후뢰시맨 35주년 팬미팅 후기
그...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후뢰시맨이 맞다. 대영팬더에서 나왔던 80년 대생들이 어릴 적 열광하던 일본 전대물. 사실 나는 후뢰시맨보다는 우주특공대 바이오맨을 훨씬 더 좋아하긴 했으나, 후뢰시맨이 한국출시 35주년 기념으로 팬미팅을 한다니 어찌 안 가볼 수가 있겠나. 내 평생 바이오맨은 에피소드 당 족히 100번 이상은 본 것 같다. 후뢰시맨도 10번 이상은 봤을 것이다. 그러니 후뢰시맨도 팬이 아니라 할 수는 없다. 어릴 적 비디오를 한 번 빌리면 기본 3번 이상은 보았고, 폐점하는 비디오 가게들이 시장에서 헐값에 비디오를 내놓으면 전집을 사서 내내 틀어 놓았다. 어떤 편에 어떤 에피소드가 있는지 다 정리해서 외우는 그야말로 덕후였다. 심지어 내가 소설가 데뷔를 하며 쓴 첫 단편소설에는 바이오맨 레드 원의 이름을 빌린 ‘설용’이라는 사람을 등장시켰다.
내가 중국무술 우슈를 전공하게 된 데에는 어릴 적 보았던 두 편의 작품이 큰 영향을 미쳤는데 그것이 바로 7살 때 본 바이오맨, 그리고 12살 때 본 포청천이다. 힘을 길러야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을 통해 배웠다. 무엇보다 그들의 세계는 나를 흥분하게 했다. 후뢰시맨, 바이오맨 시리즈는 티브이에 방영조차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렇게 꼬마들 가슴에 불을 지필 수 있었을까. 어릴 적 나는 수없이 그들과 실제로 만나는 꿈을 꾸었다. 아. 하나 더 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중학생 때 최초로 썼던 소설도 바이오맨의 설용이 나오는 팬픽이었다.
세월이 흘러 나의 어릴 적 우상이었던 영웅들의 근황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가수를 좋아하면 콘서트장에 가서 볼 수 있고 운동선수를 좋아하면 그의 경기를 보러 갈 수도 있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조금 달랐다. 어릴 적엔 그들이 정말 전사라고 생각했고 커서는 유명 연예인이 아니니 한 번 만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인터넷의 수혜로 나는 바이오맨 레드 원의 사카모토 료스케의 홈페이지를 알게 되었고 포청천의 전조였던 하가경이 운영하는 블로그도 발견하게 되었다. 일본어를 공부하고, 중국어를 오지게 열심히 하는 동기부여가 된 것도 물론이다. 어릴 적 좋아했던 나의 영웅들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미묘한 감정이 들게 했다. 나 역시 함께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고 그들은 내가 어릴 적 동경해 마지않았던 실제 영웅이 아님을 자각하니 생소했다. 그럼에도 말이다. 작년에 본 드라마의 줄거리도 몽땅 잊어버리는 요즘, 언젠가 한 번쯤 정말 좋아했던 작품이 있었고 그 작품에 관한 것이라면 세월이 무려 30년이나 훌쩍 지났음에도 아직도 그 시절에 받았던 감동을 기억하는 것에 대한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소년 소녀의 가슴에 들어왔던 작품은 이렇게 평생에 걸쳐 영향을 주는 것인가 보다. 이건 나만 알던 비밀이었는데 아직도 주기적으로 바이오맨을 정주행 하고, 포청천의 전조였던 하가경이 나온 작품 중 가장 좋아했던 ‘표협’이라는 대만 드라마를 돌려 본다.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은 자신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바이오맨과 표협을 세 번씩 본 사람과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24년 4월 20일 토요일 오후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에 후뢰시맨이 진짜로 한국에 왔다. 나는 지난겨울부터 표를 사고 이 날만을 기다려왔다. 야광봉도 제작을 했다. ‘후뢰시망 아이시떼이루’라고 일본어로 적어서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충북 음성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동서울에서 또 지하철을 타고. 장장 3시간을 걸려서 팬미팅 현장에 도착했다. 전날 꿈도 꿨다. 후뢰시맨 팬미팅에서 기다리던 나는, 비행기 연착으로 2부가 끝나가도록 나타나지 않는 후뢰시맨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도 설쳐가며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으로 들어가니 매표소의 줄이 정말 길었다. 2시 시작인 공연에 1시 30분부터 매표하러 줄을 섰는데 2시에 겨우겨우 들어갔다. 공연 시작 시작에 맞추어 몰려드는 인파에 공연은 15분가량 지연 되었고 대영팬더의 오프닝인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마마와 같은...’으로 시작하는 불법 비디오물 시청 금지에 대한 멘트가 나오자 관객들은 모두 반가움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머지않아 실제 그들이 등장했는데 두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인터넷을 통해 근황이나 얼굴을 알고 있어서 더욱 익숙했던 얼굴들. 나이가 들었어도 그들은 여전히 후뢰시맨이었다. 인터뷰를 하고 사회자가 통역을 하는데 많은 관객들이 통역 없이도 알아듣고 미리 웃는 것이었다. 그러자 통역자는 더 이상 상세한 통역을 하지 않았다. 나는 겨우 ‘민나상’ ‘토테모’ ‘오이시이’ 정도밖에 들리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크게 상관없었다. 나는 좋은 말씀을 들으러 간 것이 아니었고 후뢰시맨이 살아 숨 쉬며 내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이 그저 신기했기 때문이다. 공연은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배우들은 관객석을 지나다니며 손을 잡아 주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혼자 제작해 간 핑크빛 야광봉을 흔드는 나에게로 다가온 그린후뢰시가 손을 잡아 주었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던 팬미팅이었다. 콘서트 한 번 가 보지 않았던 나의 생애 최초의 덕질이었다. 티켓값 10만 원이 아깝지 않았다.
일곱 살의 세상 물정 몰랐던 과거의 나에게 돌아간다면 나는 이제 이 한 마디를 해 주고 싶다. 너는 나중에 멋진 어른이 되어 후뢰시맨을 만나게 될 거라고. 그린후뢰시와 악수를 하게 될 거라고. 그 외에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할까. 이 사실만 알았더라면 일곱 살의 나는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펴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 벅차게 살게 될 텐데. 아이들은 원래 이런 꿈과 환상을 먹고 나박나박 자라는 존재가 아니던가.
느닷없이 글 쓰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며 다짐한 것이 있다. 글을 잘 쓰려고 노력하지 말고 글 속에 꿈과 환상을 담자고. 그런 상상 속의 신비로운 분위기가 한 사람의 생애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으므로. 30년 전 좋아했던 전대물을 보러 삼삼오오 모여 줄을 서서 입장한 내 또래의 낯설지만 친근한 친구(!)들을 보고 오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언젠가 나도 후뢰시맨처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혹시 우주특공대 바이오맨 팬미팅은 언제쯤...?
https://www.youtube.com/watch?v=qcqYRH0hgJ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