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리 개를 이렇게 키웁니다
강아지를 키운 지 여섯 해가 넘어가고 있다. 두 마리로 시작했던 강아지들은 다섯 마리까지 늘었다. 강아지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큰 대형견 네 마리와 중형견 한 마리다. 개들을 키우면서 나도 많은 것을 배웠다. 책이나 영상을 보며 배우는 것도 있었지만 함께 강아지들을 키우는 회사 선배들에게 어깨너머로 들은 지식들과 직접 키우며 쌓은 실경험이 더 유용했다. 원래는 내 강아지가 아니었는데 매일 붙어 있다 보니 차츰 나 스스로 개누나로 성장해 갔다.
강아지들과 부대끼다 보면 강아지마다 성격과 성향이 다르고 그에 맞게 챙겨 주어야 하는 것들이 각각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된다. 가령 노견 뚱이는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그렁그렁 할 때 닭가슴살을 삶은 닭죽을 한 그릇 먹이면 금세 낫는다. 도도는 여름마다 더위를 먹는지 배앓이를 하는데 포카리스웨터 2L짜리를 한 병 먹이고 나면 반나절 만에 낫는다. 뚱이는 겨울에 한 번, 도도는 여름에 한 번 주기적으로 아프다. 그래서 도도는 여름철 시원한 실내로 자주 불러들이고 뚱이는 겨울마다 실내에서 자주 재운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병원에 데려갔는데 우리 개들을 보면 의사 선생님도 긴장하고 개들도 병원을 가는 자체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 것 같았다. 나도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병원 가는 것이 가장 싫은데 개들이라고 오죽하랴. 어느 순간 크게 다치거나 아픈 것이 아니면 내 방법으로 개들을 돌보게 되었다. 우리도 아플 때 엄마가 주는 뜨끈한 거 한 그릇 먹고 푹 자면 낫지 않던가.
가끔 특별한 날 나는 강아지들에게 소시지 한 조각을 소심하게 떼어 준다. 도도의 뒷다리에 금이 가서 시골의 동물병원에서 약처방을 받았는데 가루약에 딸기잼을 살짝 발라 주라는 말을 듣고 난 후부터다.
“개한테 딸기잼을 먹여도 돼요?”
“에그, 안 죽어요.”
아하! 흰머리가 희끗하신 오래된 선생님의 확신을 본 후로 내 생각이 바뀌었다. 그렇지. 나도 칼로리 폭탄 초코무스를 먹고 설탕덩어리라는 오레오를 달고 사는데, 딸기잼 조금 발라 먹는다고 큰일이야 나겠는가. 의사 선생님은 생긴 것에 비해(!) 온순한 도도 머리를 툭툭 만져 주셨다. 도도는 의사 선생님을 한번 빤히 바라보고는 절뚝거리며 병원 문을 나섰다. 딸기잼을 바른 가루약을, 도도는 간식 먹듯 단숨에 먹어치웠다. 짐승의 속도로 회복한 도도는 일주일 만에 다시 쌩쌩하게 뛰어다녔다.
개를 키우다 보면 먹이면 안 되는 것도 많고 챙겨야 할 것도 많다. 요즘 들어 더더욱 강아지에 대한 영양제니 유기농 사료등이 눈에 많이 띈다. 사실 나도 개들에게 방부제가 많이 든 간식을 먹이기 싫어서 직접 수제간식을 만들어 먹이고 있다. 처음에 내가 배울 땐 개들에게 견과류나 초콜릿, 소금기가 든 짠 것을 주면 안 된다고만 들었는데. 사람이 먹는 그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여겨지는 듯하다. 내가 먹던 것을 강아지에게 나누어 주면 미개한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을 받는다.
그런데 말이다. 개들과 종일 붙어있다 보면 내가 먹는 걸 그들에게 종종 들킨다(!). 맛있는 달걀일 수도 있고 고소한 내음을 풍기는 빵일 수도 있고. 냄새가 코를 찌르는 소시지인 경우는 더욱 눈치가 보인다. 특히 우리 집 먹보 도도는 얌전히 기다리거나 소심하게 제스처를 취하지 못하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같이 부리부리해지거나 그 크고 두툼한 손으로 내 등허리를 퍽퍽 치며 자기가 옆에 앉아 있음을 잊지 말라고 알려준다. 작게 한 입 베어서 나눠 주고 나면 앞발을 동동동 동동동 구르며 자기 지금 안달이 났다고 더욱더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안 주고 배길 방법이 없다. 물론 도도는 회사에 남자 선배들이 있을 땐 감히 그러지 못한다. 내가 자기를 혼내도 무섭지 않으니 그런 것이다. 나는 도도에게 약해질 수밖에 없다. 선배들이 대형견의 기강을 잡는다고 워낙 엄하게 대하기 때문에 세상에 도도에게 마음 편한 인간 한 명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 봐 주는 편이다. 도도는 뭘 줘도 참 복스럽게 잘 먹는다. 도도의 먹성 때문에 언젠가부터 내가 개들 밥을 해가기 시작했다. 원래식탐이 그리 많이 없던 비취나 뚱이도 도도의 난리부르스를 보고 배운 것인지 아니면 도도가 옆에서 하도 게걸스럽게 먹으니 따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인지 우리 집 다섯 마리 들은 사료 그릇을 싹싹 핥을 정도로 적극적인 포즈로 밥을 먹는다. 지방 출장으로 회사를 한 달씩 비울 일이 생겨도 주말엔 일부러 회사에 돌아와서 개들 먹을 것을 챙겨 놓는다. 회사를 비울 때 회사는 걱정되지 않지만 강아지들은 걱정스럽다. 개들이 왠지 내가 오나 안 오나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서다. 내 밥도 이렇듯 챙겨 먹지 않으면서 개들 밥을 더 많이 챙기는 것 같다. 푹 고은 먹거리들이 가득 든 냄비를 오픈하면 개들은 코를 찌르는 냄새에 늑대 소리를 내기도 하고 뱅글뱅글 돌기도 하고 점프를 뛰기도 한다. 개들의 기분에 내 기분까지 덩달아 들뜬다. 개들이 내가 들고 오는 도시락통을 앞 발 들고 환영하거나(그렇다. 내가 아닌 도시락을 환영하는 것이다.) 싹싹 비워 내는 것을 보면 회사 식구들까지 다 뿌듯해한다. 왜 그렇지 않으랴. 우리 식구가 배 불리 한 끼를 잘 먹는다는데.
개들을 위해 만드는 식단은 대개 이렇다. 닭안심, 달걀, 브로콜리, 황태, 단호박, 두부 등을 찌거나 삶아서 두 세 종류씩 섞어 주거나 단독으로 사료와 비벼 준다. 무척 더운 날이나 무척 추운 날은 소고기를 푹 삶아준다. 소간이나 허파 등 냉동 내장을 생식으로 주기도 하고 순대처럼 삶아 주기도 한다. 식성 좋은 개들을 다섯 마리씩 키우고 있으니 비싸고 영양 높다는 사료에 돈을 탕진하는 대신 가성비 높은 사료를 골라 영양가 높은 음식들을 고루 섞어 주는 것이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사료라도 갓 구운 신선한 제품을 따라갈 리 없다고 여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양한 토핑을 얹어 밥을 먹으니 개들의 입이 즐거운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손수 만든 건강한 식단을 먹다가 가끔 시저 캔이라도 한 통 까서 비벼 주면 또 그것을 얼마나 환장하며 먹는지 모른다. 우리도 엄마표 집밥만 먹다가 어느 날 라면 떡볶이 스팸을 먹으면 침 꿀꺽 넘어가게 맛있지 않은가.
간식은 주로 닭안심을 말려서 주면 가장 좋아하고 다양한 뼈간식도 자주 만들어 준다. 오리날개, 오리도가니, 양부채뼈, 소목뼈 등이다. 물론 세척하고 물기 빼고 말리는 데 공이 여간 드는 것이 아니다. 나도 소형견 한 두 마리쯤 키웠으면 본전 생각에 절대 손수 못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직접 정성스레 만든 뼈간식 하나를 던져 주면 야무지게 싹싹 갉아먹는다. 강아지 다섯 마리 양치를 시켜주기 어려운데 뼈를 던져주면 치석 관리에도 무척 용이하다. 그 외에도 고구마를 삶아 주거나 락토프리 우유에 건빵을 말아 주기도 한다. 환장한다.
그리고 가끔 소시지 같은 인간의 맛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도 건강한 식단을 지향하자면 야채와 닭가슴살 저염식에 유기농 제품을 먹어야 함이 옳으나, 밀가루도 끊고 커피도 끊고 술도, 담배도 끊으라면 인간들은, 그렇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강아지들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사람보다 냄새를 잘 맡는 개들이 인간들이 무얼 먹는지 모르지 않을 텐데 자기들은 사료만 주고 치사하게 인간들만 맛있게 먹으면 좀 그냥 미안하다. 단, 나는 모든 음식은 치사량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술도, 커피도 적당하게 마실 때는 오히려 건강에 도움을 준다지 않던가. 그래도 내 개들의 건강이 누구보다 염려되기에 치사하지만 우리 개들 덩치에 비해 간에 기별도 안 가게 아주 조금씩 떼어서 여러 번 준다. 자극적인 음식으로 포만감을 느낄 필요는 없으니 대신 여러 번 많이 먹으면 마음의 충만감이 들라고 말이다.
또한 나는 우리 집 개들 중 아무에게도 중성화수술을 시키지 않았다. 특별히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병원은 물론 미용만 하러 가도 기겁을 하는 우리 개들이, 괜히 수술대에 누워 영문 모를 수술을 받으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더군다나 어린 강아지들도 아니고 처음 올 적부터 고만고만한 노견이라 특히 그랬다. 백 마디 핑계보다 내 마음이 선뜻 동하지 않은 건 사실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만일 중성화수술이 수의사들에게 돈이 되지 않고 귀찮기만 한 일이라면 그들이 언론에 내보내는 중성화수술에 대한 뉘앙스가 굉장히 달라졌을 거라는. 몇십 년 후에도 동물들의 중성화수술은 어김없이 유행할까? 과연?
건강하게 오래 데리고 살면 가장 좋겠지만 수명만 길어진 동물들이 아파서 골골대는 건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고통이라 생각이 든다. 뚱이가 많이 늙은 느낌이 든다. 사실 뚱이는 5년 전 우리 집에 왔을 적부터 10살이 넘어서 일 년 안에 죽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강아지다. 그런 강아지가 열다섯 살이 넘도록 건강하게 잘 지내주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 녀석이 떠날 것을 대비해 나는 먹던 식빵 조각을 나눠준다. 뚱이는 빵돌이라 식빵 한 조각에 침 꿀떡 삼키며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가기 전에 먹고 싶은 것, 네가 좋아하는 것 실컷 먹으라고 그냥 준다. 뚱이를 보내고 난 후, ‘아 그때 빵 한 조각 더 줄걸.’하고 후회하지 않기 위한 나의 이기심인지도 모르겠다.
건강을 위한 또 하나의 팁이 있다면 바로 꿀이다! 어제도 몹시 더워서 개들에게 시원한 꿀물을 타 주었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개들의 만병통치약이다. 베트남산 꿀이 설탕을 타지 않은 순도 높고 저렴한 꿀이라고 해서 개들을 위해 아낌없이 타주고 있다. 개들이 여름에, 겨울에 음수량을 충분히 채우고 에너지를 보충하기에 프로폴리스가 그렇게 좋다고 한다. 이제까지의 임상실험(?) 결과에 의하면 아프지 않게 건강하게 날아다니는 것이 어쩌면 꿀의 영향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섯 마리 중 유독 비취는 꿀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 자신이 싫어한다면 먹일 필요는 없다. 대신 뚱이는 꿀물을 준비하고 있으면 미리 와서 꿀병에 코를 박고 놓아주지 않을 정도로 좋아한다.
모쪼록 개들이 건강하게 즐겁게 오래 살면 좋겠다. 그래도 주인들이 주기적으로 들락날락 거리며 사무실로 빼주고 이 사람 저 사람 다 산책을 시켜주니 아마도 우리 개들은 행복하겠지?
지인들은 말년에 우리 집으로 온 개들이 행운이라고 한다. 그들 중에는 은퇴한 사냥견도 있고 마당으로 쑥 들어와 식구가 된 길개도 있다. 어쩌면 그들은 자유롭게 길을 돌아다니거나 다른 집에 있을 때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사람 위주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느 날 누나가 주머니에서 소시지 하나를 몰래 꺼내 주며 발동동 발동동 구르게 만들어 준 날은, 그들에게 확실히 럭키한 날이었을 거라 믿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a-ACJ6pOmw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