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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Apr 28. 2024

시골엔 페라리를 타는 사람이 없다


 생각해 보면 시골이야말로 페라리 타기 정말 좋지 않나? 도로 뻥 뚫려 있고 차 막히지 않고. 스포츠카 본연의 의미대로 속도 내기 좋은 곳인데. 그렇다고 시골 사람 중 부자가 없는 것 같지도 않던데. 으리으리한 집을 지어 놓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다 하는 사람도 많은데. 왜 시골에선 페라리가 잘 보이지 않을까?


 만일 나에게 차를 선택할 기회가 생긴다고 하면, 아무 차나 고르라고 해도 눈 올 때 걱정 없이 달릴 수 있는 사륜구동 튼튼한 트럭 한 대 정도 살 것 같다. 차라는 것의 중요한 포인트가 다만 나의 안전이므로. 씽씽 달리다 콩 박았는데 종잇장처럼 구겨지는 차라면 좀 위험할 수 있으므로. 그러니까 나 같아도 페라리를 타지 않을 것 같다. 왜?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좋은 스포츠카들은 도시에 죄다 몰려 있는 듯하다. 도무지 속력을 낼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고 제로백 같은 것이 크게 의미가 없는 곳인데 말이다. 그런 곳에서 미친 듯이 질주하는 사람이 더러 있기도 하다. 시골에서 올라와 삘삘대며 운전하는 나 같은 사람 앞을 칼치기하며. 


 나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식 소비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았으나 어쩌면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원래 서울에서도 대충 산다고 생각했는데, 시골 오니 이 보다 더 대충 살아지는 나를 발견하고, 그동안 나 참 나름 열심히 살았구나 싶었으니 말이다. 시골로 오니 깨달았다. 아, 시골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편견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주변엔 온통 아무도 없고 회사에 나갈 때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 희한한 시골은 15층 아파트 엘리베이터마저 조용하다. 도시에선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들을 곧잘 만나 함께 타고 오르내리곤 했는데 그 마저도 단독으로 타는 경우가 많으니, 이쯤에서 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서울 사람들이 더 많이 돌아다니나? 하는 것이다. 하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서울에서는 퇴근 후 집 근처에서 부르는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기도 하고 저녁 약속을 나간 경우도 많다. 시골에서는 대체적으로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와서 나가지 않는 편이다. 동네 사람들의 성향이 비슷한 것 같다. 밤 12시가 되기 전에 불 꺼진 집이 다수며, 저녁 8시면 나가서 먹을 수 있는 밥집도 없다. 밤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도 거의 마주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밤이 낮처럼 환했던 도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도시 살 때는 편의점에 나가도 얼굴에 뭘 바르는 나였다. 왜 그랬는지 지금으로서는 잘 모르겠다. 동네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반드시 풀 메이크업을 했다. 화려한 원피스도 빼입고 나갔다. 물론 지금도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동네에서 만날 친구가 거의 없다. 시골에서의 나의 루틴은 사무실에 나갔다가 체육관에 들렀다 오는 것이 거의 전부인데, 사무실 사람들은 거의 매일 보는 사람이고, 체육관에서도 진한 화장을 하긴 뭣 하니까 운동복에 기본 화장을 하는 단정한 차림을 한다. 액세서리를 안 한지도 오래다. 옷도 몇 벌 없다. 다른 사람을 의식할 필요 없이 날것의 나 그대로 산다. 불필요한 곳에 시간과 돈을 들이는 대신 피부관리를 받거나 몸에 좋은 것에 신경을 쓴다. 사람이 좀 덜 붐비면 이렇게 되는 듯하다. 전염병이 창궐한 이후, 마스크를 쓰고 사람들과의 어우러짐이 전과 같지 않은 요즘, 어쩌면 더 편해지지 않았나?     


 혼자 한 달씩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 있으면 더욱 자유로워진다. 여기서는 사무실과 체육관 사람들을 의식해서 했던 기본 화장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선크림만 바르면 끝이다. 그러니 메이크업을 지우는 시간도 들지 않는다. 오롯이 나를 위해 사는 곳이 시골이고, 오롯이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여행이다. 그러다 가끔 공식적인 자리에 가거나 손님을 만날 땐 치장을 하는데 어쩌다 공들여 정장을 빼입는 내 모습에 설렘을 느끼기도 한다. 유행에 뒤처지는 게 아닌지 염려가 되기도 하지만 원래부터 유행을 재깍재깍 따라 하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상관없다. 특별한 날엔 헤어 메이크업을 맡기면 되지 않는가. 유행에 안달복달하는 것보다 편하다.     


 사회생활의 개념이 바뀌며 남들 눈치 안 보고 사는 요즘,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나 자신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집중하면 되는 요즘이 엄청 편하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며 전보다 더 건강해졌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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