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으로 가족계획이라는 걸 해본다.
나무는 15개월이다. 결혼 전 연애의 뜨거움이 운명이 되어 나무로 찾아왔고, 짧디 짧은 신혼 후 나무를 만났다. 남편과 나, 우리 부부는 만남부터 나무를 만나기까지 모든 과정이 운명처럼, 순리대로 순탄히 맞이했다.
남편과 나는 사실 다르게 살아온 각각의 우주이다. 남편의 서른일곱은 가사를 돌보시는 어머님과 성실한 IT 전산실 아버님, 누나 하나의 막내아들, 공대, 군대, 방송국 PD, 그리고 공연 기획을 하는 마케팅 팀으로 채워져 왔다. 나는 디자이너 엄마와 컨설턴트 아빠, 1남 2녀 중 장녀, 호스피탈리티 매니지먼트 전공, 교회, IT과 문화 산업의 마케팅을 오가다 남편과 같은 팀에서 머문 시간으로 채워진 서른 하나의 시간이었다. 쉽게 공통점을 찾긴 어려운 배경이었고, 연애기간도 짧았다. 심지어 남편은 워낙에 자녀생각이 없었고 나는 나처럼 셋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남편의 그 놀라운 확신은 우리 부부 모두 신기해한다) 연애 시작 한 달만의 청혼과 나무의 잉태로 우리는 굳이 겉모습들을 맞춰보고 재보는 시간 대신 서로의 속 사람을 금세 알아갈 수 있었고 세상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존재가 서로에게 되어주었다. 물론 같은 회사를 다니며 서로의 연애사도 들어주는 적당한 친분의 동료이긴 했지만, 연애와 동시에 시작된, 마치 신의 전면적인 개입과도 같은 보호 속에, 우리는 서로를 전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인생의 드라마 같은 시간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서론이 길었지만, 그래서 결국 우리는 연애부터 시작된 블랙홀 같은 운명으로 가족계획이라는 것은 생각도 못해봤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계획을 하려고 했다면 서로 많이 부딪혔을 것이다. 자녀계획에 대한 이견은 둘째 치고, 워낙에 다른 성향들은 임신도 하기 전에 갈등만 낳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복의 근원이고 놀라운 기적인 나무 덕분에 우리는 모든 사전 걱정 없이 부모가 되었다.
나무를 키우면서 둘째에 대해 막연한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서로의 생각이나 시기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다. 주된 논점은 나의 커리어와 나무에 대한 충분한 돌봄이었다. 막연히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듣다가, 나의 복직과 함께 의견이 어느 정도 조율이 되었다. 지금이 적기였다. 우리 부부의 나이도 있었고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며, 함께 지낼 형제자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큰 이유를 차지했다. 복직을 하고 나니 애매한 터울의 출산이 나의 커리어에 영향을 꽤나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특히나 코로나 시기의 맞벌이 육아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외에도 정책 변경으로 분양받은 집으로 이사가 확정되며, 2년 후에는 친정 근처를 떠나야 하는 것도 둘째 임신 시기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사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걱정 저변에, 결국 신의 뜻일 텐데 내가 아등바등 걱정하며 계획하는 주저함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남편과 가족계획이라는 것을 하고 나니 갑자기 대단한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정말로 우리 인생을 우리가 결정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조금 더 확대 해석해보면 또 다른 생명에 영향을 주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 같아 꽤나 묵직했다. 의견을 나누는 과정도 사실 굉장히 조심스러웠고 낯설었다. 우리 모두 일터에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거나 저녁식사로 무엇을 만들 것인지, 주말엔 무엇을 할 것인 지나 적금을 새로 만들지, 혹은 이사를 가는 건 어떨까, 심지어 부부가 함께하는 스튜디오 사업은 어떤가에 대해 신랄하고 가감 없는 속 얘기까지도 해봤지만, 둘째 아이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것은 굉장히 신선했고 수줍으면서도 경건하다가 용감해진 느낌이면서도 자신 없는 주저함이 묻어나기도 하는- 우리 부부 모두 생애 처음 경험하는 마음이었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한번 하면 익숙하고 수월하다고들 한다. 하지만 모든 두 번째가 그런 건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