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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듣는 질문 1. 안 싸우나요

밀도 높은 대화를 통해 성장하는 아이 셋 맞벌이 집 이야기.

by Grace Hanne Lee

결혼은 참으로 삶의 큰 변환점이 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미 운명처럼 주어진 원가족의 구성원과 달리, 결혼은 한 개인이 부모로부터 완벽히 분리되어 의도를 가지고 타인과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되고 자녀 역시도 일부의 계획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전적인 신의 섭리하에 이루어지는 결과들이겠지만, 그 과정 안에 인간의 의지와 의도가 동행한다는 점에서 새롭고 위대한 일 중 하나이다.


결혼 전에는 결혼을 굉장히 로맨틱하게 바라보았다. 최근에 본 드라마에서도 늦은 밤 집에 데려다주는 남자와 헤어지기가 싫어 손끝만 부여잡고 아쉬운 마음을 가득 담던 여자는 '이래서 결혼하나 봐요'라는 고전적인 대사를 읊는다. 나 역시도 결혼은 연애의 최정점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결혼 후 일상들, 우리가 소위 부르는 '신혼'의 일상들은 당사자들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오래 유지될 수 있으며 우리는 특별하기에 별다른 큰 노력 없이 천국 가기 전까지 로맨틱할 줄 알았다. 감수성 가득한 나와 다정한 남편은 그렇게 생각했다.


결혼 후 가장 먼저 만나게 된 것은 남편의 예민함이다. 결혼 전, 회사 근처에 놀러 온 친정엄마는 당시 직장 동료이던 남편을 슬쩍 본 적이 있었다. 나의 퇴사 후 우리의 연애가 시작되며 엄마에게 그 사람이 그 사람이노라고 얘기했더니 '법 없이도 살 사람 같더라'라는 말을 했다. 한번 스치듯 본 사람을 알면 얼마나 잘 아려나 생각도 들었지만, 엄마가 했던 그다음 말은 어른들의 관록의 촉이 얼마나 대단한가 새삼 놀랍게 한다. '근데, 예민해 보이긴 하더라. 너랑 똑같아.' 당시 나는 남편에게서 예민함이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연애 중 남편은 다정했고, 늦은 새벽까지 차 안에서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나를 데려다주곤 했으며, 북경기도에 사는 남편은 연애기간 내내 남경기도 사는 나를 데리러 왔다가 데려다주었다. 가끔 두통이 있었고 멀미가 심해 택시를 타지 못하기도 했으며 간혹 가다 배가 아파 지하철에서 내려 화장실을 가기도 했다고 하지만 그런 것들은 스쳐가는 정보들이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24/7을 함께 살다 보니 과연 남편은 예민했다. 나를 향한 다정함의 기본은 타인에 대한 예의 혹은 배려를 위한 그 나름의 긴장이었고, 잘 보이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예민하고 민감한 반응이었던 것이었다. 이제 부부가 되어 그와 같은 공간을 쓰고 원하지 않아도 불가피하게 서로의 비밀의 방, 치부의 방을 침범하게 되는 애 셋 맞벌이의 일상 속 남편의 근본은 예민함 덩어리였다.


기질인걸 어쩌겠는가. 아이 셋 맞벌이라는 여섯 글자는 꽤 무겁고 촘촘한 일상을 수반하는데, 아이들까지 어리다면 거기에 고래 한 마리 정도는 더 얹는 무게감이다. 이 무게를 버티기 위해 우리 부부는 가장 원초적인 정신력으로 버티며 살아간다. 낭만만은 포기말자, 철학만은 양보말자 가슴에 새기며 미래를 걱정하는 걸 일삼는 나란 아내와 함께 사는 탓에 남편은 그냥 대충 애아빠되어 대충 살지 못한다. 나 역시 남에게 폐 끼치지 말고 살자, 자연을 사랑하고 어지간한 것은 제 손으로 해결하며 살자는 남편을 만난 탓으로 대충 개기며 살지 못한다.


여기까지 온 우리 부부를 다시 돌아보니 문득 그렇게 이해하기 힘들고 답답하던 남편이 나의 거울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생이 포화의 정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우리는 빠른 속도로 서로의 바닥을 보게도 되었고 (아직 못 본 바닥들도 있겠지만) 또 지치기도 빠르게 지쳐왔다. 나의 낭만이라던가 남편의 정의감 등으로 꾸역거리며 부부를 유지하고 옳은 부모가 되고자 노력을 하고 있지만 내 몸 하나 돌보기 벅찬 시절 살며 전혀 다른 타인을 사랑하며 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럴 때면 가장 먼저 상대 탓을 하기가 쉬웠다. 그렇게 오랜 시간, 뭇 어른들이 얘기해 오던, ’ 내가 그를 데리고 살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던 것 같다. 하지만 문득이 돌아보니 나의 가장 작은 치부까지도 참 비슷하게 닮은 이였으며, 그에게서 보이는 나의 한계들이 그렇게도 용납이 안 돼서 그를 그리도 몰아갔던 것 같다. 이러한 프레임이 생기고 보니 남편이 이해되거나 측은하거나 아니면 조금 사랑스럽게도 보였다.


종종 우리 부부 사는 이야기를 잘 아는 오랜 친구들과 부부 사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다. 다들 서로 다투는 것들을 보면 비슷하다. 서로의 집안일 노동 지분이라던가, 양가에 대한 문제, 사소하지만 참 오래도 고쳐지지 않는 습관들. 하지만 그들에 비해 우리 부부는 맞벌이에 애 셋이라는 옵션도 추가되었는데 어떻게 부부사이가 (항상은 아니어도) 낭만적일 수 있는 것일까가 화두가 되곤 했다. 이쯤 되니 스스로도 어쩌다 이런 프레임이 생기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고민해 보니 결국 대화였던 것 같다.


우리는 시간을 쥐어짜서 대화한다. 아이들에 대한, 육아에 대한, 서로에 대한, 미래에 대한 대화를 쥐어짜서 한다. (말다툼도 대화에 포함된다) 그래서 대화의 질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도 있지만, 또 그래서 대화가 다듬어지기도 한다. 짧은 시간, 밀도 높은 대화를 해야 한다. 연애 시절 쓸데없는 미사여구도 점점 줄어들고, 신혼 시절 양말과 치약 가지고 지금 안 고치면 평생을 이문제로 시달릴 것 같다는 착각에 근거한 쓸데없는 알력 다툼도 줄어든다. 인류의 발전은 유한성에 기인한다던 말도 맞는 것 같다. 우리 부부 대화의 발전과 성숙은 이 한계치로 인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긍정적인 면만 두고 보자면 이렇다는 것이다. 종종 우리 서로가 더 이상 양보 할 곳 없이 한계치에 다다른 날이면 서로 양보 없는 다툼도 일어난다. 그런 날이면 이러다 우리가 갈라지면 어쩌나 불안할 정도로 심연 깊은 골짜기를 향해 다툼이 달린다. 신혼 초 다툼에 비해 주제도 무겁고 그간 참았던 것들이 함께 무게추가 되어 다툼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또 반면에 신혼 초만큼 이 다툼이 두렵지도 않다. 시간이 흘러가며 쌓은 공만큼 혹은 정만큼 이 관계가 어딘가 쌓여가고 단단해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이제 말다툼이 두렵지 않다. (대신 좀 피곤하긴 해서 서로 조심하는 것 같긴 하다)


맞벌이라는 옵션은 또 다른 대화의 길을 열어준다. 우리는 종사하는 분야도 다르고 직군도 다르지만 기본적인 틀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를 해 나간다. 사실 사람 사는 것들 보면 다 비슷하다. 사회는 여러 이해관계의 조합으로 충돌에도, 화합에도 대게 비슷한 원리가 적용된다. 우리 부부는 서로의 기질도 밀도 높게 알고 있기에 서로의 회사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맞장구 쳐준다. 비슷한 사례들도 있고 때론 큰 구조 안에서 비슷한 개념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뜻밖의 돌파구를 찾기도 한다. 생을 바쁘고 촘촘히 살다 보니 또 그런 장점들도 있다.


결국 어떤 상황이든 대하는 태도에 따른 것 아니겠는가 싶다. 맞벌이에 아이 셋은 부부 사이가 각박해져 메말라가는 원인이 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밀도 높은 성장 영양제가 되기도 한다. 질문에 답을 해보며 또 이러한 우리의 가정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어주길 바라보는 마음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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