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에 박히지 않은 삶의 수업
대학때까지가 참 편했다.
물론 대학때는 고딩시절이 호시절이었노라 추억하길 일삼았더랬지만. 고딩 땐 중딩이, 중딩땐 초딩이 좋았다. 여러 면에 있어서 한 살이라도 젊은(?)시절을 그리워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은 자율성과 책임에 대한 부분이었다. 아주 기초적인 지식과 기술들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몰아쓰는 일기와 독후기록장, 지구본을 만들거나 나비나 잠자리 정도만 잡으면 되었던 방학. 그러다 점점 길어지는 공부 시간 못지않게 나의 선택이 들어간다. 인간은 유한하며 선택은 점차 무겁다는 것을 공교육 시스템에서 계속 배워나갔다. 제 2 외국어를 선택하다가, 수능 과목도 선택했어야만 했고, 대학에 와서는 사회인이 되기 위해 함양해야 할 수업들을 스스로 선택하는 걸 넘어서 그 4-5년의 시간의 일상 스케쥴 역시 내가 스스로 짜야 했다. 제한된 시간과 돈, 에너지 등을 내 스스로의 논리로 구성해야 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이 직간접적으로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사회는 더하다. 이젠 내가 선택한다고 회사가 나를 채용해주지도 않을 수 있는 변수가 생기고, 입사 전 나의 분석은 입사 후 사내 형편과 상이할 수 있으며, 졸업이라는 개념이 없어 exit시점도 스스로 결단해야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나가야만 하는 경우의 수도 생기니 더욱 무거워진다. 이 무게감을 극복해보고자 누구는 보수적인 선택들을 하고 누구는 하루 하루 타오르는 불나방이 되기도 하며, 혹자는 다른 무언가를 보상삼아 그 갈등과 긴장을 버티기도 한다. 이게 내가 여태껏 배워온 사회의 구조이다. 유한한 인간이 사회에 홀로 나와 스스로를 책임질 결정들을 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 이러한 세상의 구조는 인간을 더욱 형이하학적 존재로 몰락시키는 듯 했다. 학점과 연봉, 혹자는 자식 농사나 부동산 등 여러 요소에 근거한 지표를 삶의 목표와 목적으로 삼아댄다. 말안경 쓰듯 달리는 일상에서 잠시 눈을 들어올려 하늘을 보며 소위말하는 현타를 느끼며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야하나 읊조리다가도 이내 다시 그 숫자를 향해 달려간다.
나의 인생은 조금 다르게 구성된다. 그 시작은 첫 직장에서 만난 자유로운 영혼의 선배의 말이었다.
“그게 바로 라이프 레슨이야.”
서양에서 자주 쓰이는 삶의 교훈이라는 관용구를 자주도 내뱉던 선배였다. 이혼녀에 사랑하는 자식은 해외에 두고 친정네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하던 그녀는 한참 파란만장하였지만 또 동시에 다채로웠다. 예쁘고 화려한 그녀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외형적인 강점이 더 돋보였지만 나는 그녀의 내면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삶의 큰 파도는 어둠을 일기 보단 그녀에게 배럴이 되어준 것 같아 보였다. 큰 파도 사이를 가르며 서핑을 즐기듯 생을 사는 것 같아 보이는 그녀의 보드는
낭만과 낙관적 태도 그리고 라이프 레슨이었다(물론 주관적인 관찰이지만). 그녀가 반복적으로 되뇌이던 단어는 이 후 내 철학 형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신이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연의 섭리와, 끊어질 듯 교만하고 악한 세상이 아직도 멸망하지 않는 이유라던가, 형언할 수 없는 인간의 용서, 태어나면서 자기 생존을 위해서만 울어대는 인간의 이기심이 궁극의 사랑을 배워가는 것 등을 설명할 수 있을까? 지식의 방대함이 곧 지혜가 아니듯, 감정의 누적 혹은 도덕의 집합이 사랑일 수 없다. 창조주의 섭리에 맞춰 그를 닮아 창조된 피조물이 그 원형을 본받아 흉내내는 것이라고 믿으며, 그 구현 과정 속엔 독생자의 대속의 사건이 기반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기본 원리와 구조를 믿으며 이 위에 철학이 자리잡았다. 나의 철학은 인간은 정형화되지 않은 삶의 ’수업‘을 수강중이며, 어릴 때 일수록 그 수강 기간은 짧고 수학의 결과도 비교적 쉽게 얻어진다. 이 삶의 수업은 부동산 공부, 컴활 자격증, 보육교사 자격증과 같은 지식의 공부가 아니다. 삶을 배우는 것이다. 내 기억에 첫 삶의 수업은 초등학교 3학년쯤 시내로 나가던 버스 안이었다. 외모도 나쁘지 않았고 똑똑한 편이었으며 대체로 친절했던 나는 어느정도의 실수에도 눈을 마주치고 웃으며 먼저 사과하면 상대방도 화를 쉽게 누그려트린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앉아있던 어떤 여자의 의자 뒤 손잡이를 한 손으로 잡고 가다가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다른 한 손도 그 손잡이를 잡아 중심을 잃지 않으려 했다. 그 과정에 그 여자 머리카락을 실수로 잡았다. 살짝. 서둘러 눈을 마주보며 정말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다. 차갑고 날이선 눈초리로 쏘아보더니 욕지꺼리를 작게 뱉어냈다. 그날은 내게 충격적인 날이었다. 버스 안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 같았고 네 세상은 틀렸어. 세상은 웃는다거나 사과가 빠르다고 다 받아주는 곳이 아니야 등의 인생 첫 수업을 배운 날이었다. 이 수업을 시작으로 삶의 단편적인 교훈들을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 홈런볼 하나씩 사줘서 사귄 친구보다 서로 신랄하게 싸우다가 어느날 깊은 화해와 눈물로 맺어진 친구 관계가 더 돈독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다가 이내 점점 수업 기간도 길어지고 복합적이여지고, 교훈도 깊은 것들을 배워갔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말을 자주 인용하던 엄마의 생은 다소 냉랭하고 사무적이었는데, 그것은 사실 남편의 잦은 사업실패 속에 아이 셋을 벌어먹이는 외벌이를 감당하며 친정부모 모시고 양가 집안 대소사를 뒤치닥거리하면서도 아이 셋 어디 크게 모난 곳 없이 키워내며 어쩔수 없는 감정의 거세가 이루어졌던 생이었음을 깨달았던 수업도 있었다. 그 수업은 사실 2,3,4… 심화 과정들이 있다. 내 생이 흐르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하나, 둘, 셋 낳으며 하나씩 레벨업 할 때마다 친정엄마의 삶은 마치 오래된 철학책 같아서 읽을때마다 새롭고 깊었다.
친정엄마의 생은 내가 꽤 오랫동안 수강중인 수업인 듯 한데, 나역시 아이셋 워킹맘의 길을 걷게 되며 전공 심화의 길을 걷게되어서 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엄마의 인생은 주로 치열한 삶 속에 어떻게 버텨왔는가를 배울 수 있는 수업으로 생각해 왔었는데, 이쯤 되니 그녀 역시 삶의 예배, 인생 전반을 아우르는 신앙의 영역에 있어서의 훈련 과정을 살아가는 한 명의 시지프스이지 않을까 싶다. 아니 시지프스보단 형편이 나은 편이다. 그녀는 신의 총애를 받았으니. 끝 없이 돌을 굴려 이룰 수 없는 끝을 향한 영원한 형벌을 받은 그보다야 천국을 믿어 그 끝을 희망할 수 있는 그녀는 결국 지금도 천국을 살고 있는 것일테니 단연 그보단 나으리라. 아무튼 칠십을 향해가는 이 연로한 여인은 이쯤 되니 그 인생이 수많은 삶의 수업을 통해 어떠한 생이 되었는가, 어떤 전공자가 되었는가가 슬슬 완성도 높은 그림 하나가 마무리 작업에 들고 있어 보인다. 나 역시 이 명화에 감동해 그러한 화풍 닮아가며 비슷한 주제를 담은 생을 그리고 싶다 소원도 해본다.
신이 나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도 신을 사랑하여 주어진 생에서도 천국을 누리다 본향으로 간다. 이게 내 전공이었으면 한다. 그 길을 향해 가며 이제 다가오는 수업들에 슬슬 나의 철학들도 반영되어 나의 색채를 띄게 된다. 그리고 다가올 수업들에 대해서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나의 생이 어떠하게 흘러갈까.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그 흐르는 과정은 어떠하고, 그 생의 끝에서는 나의 외조모와 같이 마알갛게 노쇄한 마지막 눈을 감으며 희미하게 웃음짓고 사랑해 마지 않는 자식 손주들의 인사와 함께 천국을 향할 수 있을까.
이런 삶의 수업은- 좀더 명명해보자면 철학이자 교훈, 지혜는- 그 조각들이라도 인공지능이 흉내낼 수 있을까? 언젠간 흉내낼 수 있겠지만 영물인 인간의 염원을 인공지능이 진심으로 추구할 수 있을까? 그 정수가 끊임없이 계승되는 한 인간은 인공지능보다 우선한다. 하지만 더 언어를 잘 하고 수학 문제를 잘 풀며 지식적인 문제에 답을 빠르고 정확히 하는 기술을 우선으로 가르치는 이 교육 시스템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사색할만한 질문 하나 깊게 토론하는 일주일을 내어주지 않는 생업의 현장은, 그럴 여유가 없이 이미 노화가 시작되어서야 결혼을 하고 아기를 갖게된 한국 사회의 현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노력해서 일궈가야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