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퓨타 혹은 키부츠

이 시절을 지나는 우리는 꿈꾸거나 달리거나

by Grace Hanne Lee

어느날 밤 잠들기 전 대화 중 이상적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남편의 흘러가는 말 속 바람을 들었다. 흘러가는 말이었지만,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과도한 IT 중독, 교육 열풍 등 사회에서 들이닥치는 긴장과 갈등으로부터 보호받고싶은 마음과 나의 나 됨으로 내가 좋아하는 활동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 등이 융합된 말이었다.


제주가 떠올랐다. 10여년전쯤 웬 작가들이, 기업 임원들이 제주에 호화스런 세컨하우스를 짓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지인찬스로 가서 묵기도 해봤더랬다.


내가 고른 서로 영감을 주는 사회라는 것이 강팍한 일상의 대체제로 떠오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일수도. 하지만 그 마저도 현상을 보면 사치스런 형국이다. 먹고살 걱정 없어야 내가 생을 선택한다는 교만스런 상상이라도 해보는 것이겠지.


이팝꽃 흐드러진 길가에 스마트폰으로 꽃 사진을 찍는 노령의 공무원을 보았다. 그래 저게 낭만인데 했는데 조금 더 걸어가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이팝나무 아래 울타리에 소란스레 걸어둔 현수막 단속 중이었던 것이었다. 괜히 더 처량하다. 노년의 삶 속엔 이팝꽃 대신 현수막이 깃드는 현대사회란 말인가.


글을 쓰는 내 모습 역시 맨홀 없나 걱정하며 지각 아닌가 핸드폰 좌상단의 시계를 눈칫하며 출근길 짬을 낸 글을 쓰는 꼴이다. 이 시간 누군가는 커피와 새소리 그리고 건강의 사치의 끝을 달리는 진한 담배연기를 겸한 글을 쓰고 있겠지. 그 글은 좀 우아하려나?


하지만 그것이 과연 생일까. 타인보다 우월한 정도의 공감 능력이나 대입 능력이 있는 몇몇의 위인 외에는 대부분 생을 치열하게 경험한 자기관찰자의 말만큼 힘있지는 못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생을 담은 글의 힘 보다 수려한 문체와 수사 기술에 따른 힘이 더 강할 때가 있지만. 아무튼 간에 아무리 유려하지 못한 글이래도 실제 살아낸 사람의 글은 그 영이 조금이나마 묻어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고난이나 영감, 혹은 깨우침 등을 서술하며 일말의 부끄러움이라도 있지 않으려면 내가 직접 벌어낸 생과 맞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 깊은 생을 묘사하려는 관찰자일수록 그 정수를 담고 난 후에 오는 묘한 환멸감 따위로 고통스러워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이런 저런 핑계로 내가 치열한 생을 살며 글을 쓰는 이유가 우아하게 글만 쓸 수 없는 형국이어서가 아니라고 자조적인 위로를 해보는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우아한 이상주의적 사회에 대한 나의 바람은 어릴적부터 있어왔었다. 기억이 잘 안나지만 먼 이방 지역에서 자치 사회를 만들어 따로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이들은 유목 생활 등의 이유로 역사적으로 늘 큰 주류의 문화를 이루지 못했던 민족이 아니라 지극히 자발적으로 별도의 사회를 만들어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글을 쓰며 AI에게 물어보니 이스라엘의 키부츠 공동체를 내가 기억하던 것이었다. 어렴풋이 이스라엘이라는 기억이 있었는데 대충은 맞았더랬다. 다산과 그 과정의 마취제로 인해 희미해진 내 뇌도 역할을 하는 순간이 있긴 한가보다. 키부츠에 대해 찾아보니 이런 정보가 있다. 초기 운영방식은 ‘공동 소유’. ‘공동 노동’.’ 평등주의’에 있다. 모든 재산과 생산 수단은 공동체의 소유로 개인 소유는 존재하지 않고, 구성원들은 능력에 따라 노동에 참여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다.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갖고 의사결정은 민주적인 절차를 기준으로 한다. 이 얼마나 이상적인 모델인가. 능력에 따라 참여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 받는 사회. 이것은 거의 천국이 모델인 구조 아닌가. 인본사회는 인간이 갖는 그 한계로 인해 늘 불평등을 기반으로 한다. 천성적인 조건으로 인해 다수의 인간이 모인 사회 계약은 개인에게 ‘노동한 만큼’ 혹은 더 척박한 경우 ‘기여한 만큼’의 가치를 배분 받는다. 더 삭막한 환경에서는 그에 미달하는 가치를 받고 그보다 더 열악한 경우 무법천지의 동물세계가 펼쳐진다. 그런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우리는 이런 이상공동체를 꿈꿔도 되는것일까?


문득 한국에서는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없었을까 궁금했다. AI를 두드려봤다. 이런 답이 왔다.

한국에서도 키부츠처럼 이상적인 공동체 삶을 지향한 시도들이 있었고, 지금도 일부는 활동 중이야. 다만, 문화적 차이나 사회 시스템의 차이 때문에 완전히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유사한 지향점을 가진 사례들이 있어.


� 한국의 유사한 공동체/모델

1. 한살림 / 아이쿱생협 등 생활협동조합

전국 단위로 운영되는 소비자와 생산자가 함께 참여하는 협동조합.

공동구매, 생산자 직거래, 윤리적 소비 등을 추구.

키부츠처럼 공동의 가치를 중심으로 조직되었고, 생산-유통-소비의 선순환을 만들고자 함.

2. 생태공동체 & 귀농 공동체

예: 괴산 정농회, 홍동마을(충남 홍성), 강화 생명평화마을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 공동 노동, 협동 교육 등을 지향.

생태적 삶과 공동체 의식을 중시하며 일부는 거의 키부츠와 비슷한 철학을 가짐.

3. 성미산 마을 (서울 마포구)

서울 도심 속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된 공동체.

마을 주민들이 함께 대안학교, 협동조합, 공유 공간 등을 만들어 자치적으로 운영.

"도시형 키부츠"라고도 불렸을 정도로, 키부츠적 모델을 연상시키는 사례야.

4. 대안학교 기반 공동체 (전국 곳곳)

예: 간디학교, 지혜학교, 민들레학교 등

교육을 중심으로 부모와 교사, 학생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

공동생활, 공동노동, 평등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춘 경우도 있어.


� 차이점

종교/이념 기반보다는 생태, 교육, 협동경제 중심

키부츠처럼 국가지원과 함께 성장한 모델은 아님

공동 소유보다는 자발적 참여 기반의 느슨한 공동체가 많음


키부츠라는 공동체를 처음 접했을 때 만큼 근사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이 한국 사회에 너무 적응해버린 탓에 이들 중 일부는 마이너의 삶으로 여겨지기 때문이고 이들 중 일부는 경제적인 효과를 낳을 수 있는 브랜드 캐릭터를 갖기 위해 키부츠 정신을 표방하는 형태를 갖췄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지 모른다. 좀 더 찾아보니 키부츠 자체도 이미 이스라엘에 250개의 공동체가 존재하며 각각 현대 사회와 타협을 이루어 변화되고 개화된 듯하다. 생각해보면 시대의 흐름에 맞춰 모든 것이 변하기 마련이고 개화가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처음 모양이 이상적이고 매력적이었던 것일수록 덧 칠 후 매력적이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궁금증을 확장해서 심리적으로 가까운 타국의 형국은 어떨지 궁금했다. 일본과 미국의 유사 사례를 물어보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이스라엘의 키부츠와 유사한 의도적 공동체(intentional communities)가 존재하며, 각국의 문화와 역사에 맞게 발전해 왔어. 아래에 일본과 미국의 대표적인 공동체들을 소개할게.


�� 일본의 의도적 공동체

1. 야마기시회(Yamagishi Association)

· 설립 연도: 1950년대

· 특징:

o 일본 전역에 약 50개의 마을과 약 5,000명의 구성원을 가진 공동체 네트워크로 성장.

o 재산 공유, 공동 노동, 리더 없는 평등한 구조를 지향하며, 돈 없이 운영되는 시스템을 채택.


2. 아타라시키무라(新しき村, Atarashiki-mura)

· 설립 연도: 1918년

· 설립자: 무샤노코지 사네아츠(武者小路実篤)

· 특징:

o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하며 예술과 농업을 결합한 공동체로 시작.

o 현재까지도 지속되며, 문화와 예술 활동을 중심으로 운영.


�� 미국의 의도적 공동체

1. 트윈 오크스 커뮤니티(Twin Oaks Community)

· 설립 연도: 1967년

· 위치: 버지니아주 루이사 카운티

· 특징:

o 재산 공유, 평등한 의사 결정,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공동체.

o 수익 창출을 위해 자체 사업 운영.

2. 이스트 윈드 커뮤니티(East Wind Community)

· 설립 연도: 1974년

· 위치: 미주리주 오자크

· 특징:

o 재산과 소득을 공유하며,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채택.

o 주요 수입원으로 견과류 버터 생산 사업 운영.

3. 블랙 베어 랜치(Black Bear Ranch)

· 설립 연도: 1968년

· 위치: 캘리포니아주 시스키유 카운티

· 특징:

o "자유로운 사람들을 위한 자유로운 땅"이라는 모토로 설립된 공동체.

o 공동 소유와 자급자족을 기반으로 운영.

4. 어스헤이븐 에코빌리지(Earthaven Ecovillage)

· 설립 연도: 1994년

· 위치: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쉬빌 근처

· 특징:

o 지속 가능한 생태적 생활방식을 추구하며, 퍼머컬처, 자연 건축, 재생 에너지를 활용.

o 약 75명의 성인과 25명의 어린이가 거주.


이러한 공동체들은 각국의 문화와 사회적 배경에 맞게 발전하여, 키부츠와 유사한 철학과 운영 방식을 보여주고 있어. 각 공동체의 웹사이트나 관련 자료를 통해 더 자세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을 거야.


이쯤 되니 ‘의도적 공동체’라는 말부터 뭔가 거부감이 든다. 최근 5년간 갑자기 증폭한 컨텐츠 장르 때문인지, 시대 사조의 반향 때문인지 이상하게 오컬트나 이단, 사이비 같은 공동체가 떠올랐다.


AI와 대화를 마치고 글을 쓰며 돌아보니 순수했던 남편과 나의 이상향이 현실 사회에 발을 딛으니 어딘가 속물적이고 편집적인 형태의 모양새로 변했다. 물론 우리 남편은 이런 나의 견해와 달리 그 중에도 좋은게 있을 것이며, 꼭 그런 곳에 적을 둘 생각까지 하지 않아도 우리가 속한 세상에서 조금씩 적용하면 될 것들이 있지 않겠느냐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너랑 나랑 둘이 생각이 이러하면 적어도 우리집 안에서는 그럴 수 있겠지 않겠냐고 할테지. 혹은 기분에 따라 그래 역시 우리 이상향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것일테야 하고 실망 담은 답이 올수도 있겠지만.


꿈을 꾸는 자는 달리기를 하기 어렵다. 머리가 점점 공중에 떠서 발이 땅에 닫기 어렵기 때문이다. 강한 힘의 꿈으로 아예 날아가던가 꿈을 빼버려서 발을 땅에 딛어야 한다. 물론 그냥 그 상태로 있어도 된다. 다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시지프스만큼 번뇌하며 그자리에 머물거나 타의적인 요소로 새로운 좌표에 머물기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을 뿐.


오늘날 우리 부부는 어떤 상태일까.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내 사회와 우리 나라를 위해서 어떤 선택을 하며 매일을 살게 될까.

keyword
이전 02화뱀띠의 용두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