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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담 Sep 26. 2022

커리어 일시정지 ∥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습니다


6월 마지막 날, 잘 다니던 회사를 정리했다. 5월에 큰 프로젝트를 연달아 해치우면서 업무 피로도가 쌓이고 있긴 했지만 이 업을 하면서 생기는 불가피한 스트레스였기에 '퇴사'를 결정할 만큼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회사를 '잘' 다니고 있어서 그만두게 되었다. 작은 회사였지만 성장하는 회사였고, 주도적으로 일하는 기회가 주어져 참 많이 배웠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합이 좋아서 신이 났다. 하지만 익숙해졌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 잠시 일시정지를 해야겠다고.


첫 번째 회사는 진저리가 나서 그만두었던 터라 속세를 떠나고자 제주도에서 몇 달의 갭이어를 보냈는데, 참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내가 부스러기처럼 소진되었다기보단 더 큰 그릇이 되고 싶었던 시기였는지 예정된 여행이 취소되어도 아쉽지 않았고 오히려 '비우기'보단 '채우고' 싶었다.


그리고 일을 그만두면 당분간 일 생각은 나지도 않겠다 예상했건만, 진행 중이던 행사는 잘 마무리되고 있는지 궁금했고 올라오는 후기를 살펴봤다. 후배들이 미안해하며 카톡으로 질문을 하면 마침 심심했다며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을 해주곤 했다. 몇 달 동안은 일을 안 하고 있다는 것도 자주 잊곤 했다. 다른 브랜드 팝업에 놀러 가면서 '여기는 이렇게 하는구나. 우리도 이렇게 하면 좋았겠다. 이 제작물은 어디서 맞춘거지? ... 아 맞다, 나 그만뒀지'


감사하게도 가장 오래 담당했던 브랜드에서 행사 초대를 해주셔서 다녀오기도 했는데, 담당자가 아닌 손님으로 가보고 크게 깨달았다. 손님으로 와도 재미있고 좋지만 담당자로서 이 공간을 꾸미고 누군가를 초대했을 때 내가 더 재밌었구나.


그때가 더 '나'다웠구나 - 내가 정말 이 일을 사랑했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통장의 잔고는 현실적으로 나를 흔들(?)기도 하지만, 내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루빨리 새로운 회사를 찾아야겠단 마음도 생각보다 들지 않는다. 앞으로도 나아갈 길이 멀기에 - 열심히 공들여 쌓은 커리어라는 탑을 한 발짝 뒤에서 잘 쌓고 있는지, 기울어지진 않았는지 살펴보는 시간이 분명 필요했다. 회사에서는 월별, 주간 리뷰를 그렇게 챙겨서 하는데 3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랑했던 이 일도 마음속에서 충분히 리뷰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야 다음 새로운 환경에서 조금은 더 성숙한 에너지를 발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애정 하는 후배가 생각보다 빠른 이직을 시도하지 않은 나에게 '불안하진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불안하진 않았다.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더 잘할 자신이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쌓은 커리어가 자랑스럽다. 앞으로 나아갈 시간의 발판을 만들어준 그 시절의 내가 너무 고맙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 일한 것을 작게 표현하는 곳이라면 선택하지 않고 싶을 정도.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일지도 모르겠지만, 언제 마무리가 될지 모르는  번째 갭이어의 시간에는 실무와 떨어져 감을 잃는  아닐지, 뒤처지는  아닐지 불안해하기보다는 회사를 다니면 경험하지 못할 경험과, 여유, 인사이트를 충분히 얻어서 다시 멋지게 사랑하면서 일할  있도록 충분히 충전할 예정이다. (개인적인 삶도 잘 챙기고!)


나의 용기있는 20대 마지막 일탈이 참 자랑스럽다.

20대에는 열정을 불태우는 시간을 보냈다면,

30대에는 조금 덜어낼 줄 알는 유연함과 조금은 멀리 볼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고.


당분간 저는 긴축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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