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긍정문을 외운다고 자존감이 올라갈까?
자존감 수업을 실천해도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았던 이유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상처 받고 밤새 이불 킥으로 그날 일을 반추하며 잠 못 이루거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먼저 흘러나와 주변을 당혹스럽게 하던 때, 속으로만 상대에게 악담을 퍼붓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싶었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내 마음에 상처가 되는 상대의 말과 행동은 마음에 콕 박혀 빠지지 않는 거대한 가시 같았고, 설사 빠진다 해도 그 자리에는 흔적이 남아 다 아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자기 긍정문이나 자기 확언문을 반복적으로 암기해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이었습니다. 돈 들이지 않고 내 의지만으로 달라질 수 있는 확실한 방법으로 보였습니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렇다고 ‘결심’ 해야 한다고 자존감 수업에서 배웠거든요.
어느 날 민원인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해 눈물이 찔끔 흐르던 날, 옆자리 동료에게 눈물을 들킬까 봐 다급하게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긴박하게 되뇌었습니다. “나는 나를 좋아한다. I like myself” “I like myself” “I like myself”
흐르는 눈물을 막아보려는 주문처럼 I like myself를 강박적으로 되뇌었지만, 속상한 마음은 생각만큼 쉽게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반복되는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지만 효과가 미미하더라고요.
나를 사랑하기 위한 방법으로 무조건적으로 자기를 인정하고 존중하기를 결심하라는 조언과 “나는 나를 좋아한다”라는 자기 긍정이 도움이 된다고 해서 시도했던 것이지만, 과연 “나는 나를 좋아한다. I like myself”라는 말을 반복해서 한다고 내가 나를 좋아할 수 있을까요?
당시 저는 그 말들을 내 마음속에 휘몰아쳐 들어오는 어떤 부정적인 생각들과 감정들을 회피하는 용도로, 그것들이 밀려들어오는 틈새를 막아내기 위한 방패로 활용했을 뿐입니다. 실망스러운 나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면, 많은 생각들과 감정들이 저를 더욱 처참하게 만들 뿐일 테니깐요. 우울해지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나쁜 감정들과 생각들, 그래서 어떻게든 피하고만 싶었습니다.
이렇듯 잘못된 목적으로 사용되는 자기 긍정문은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어요.
지난날 저는 천 번이고 만 번이고 ‘I like myself’를 반복했지만 허공을 맴도는 목소리에 그쳤습니다. 무조건적인 자기 긍정문의 반복은 단순히 기분 나쁜 당시의 감정을 정화시키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상황의 원인을 찾기 위해 내면을 탐색하는 과정을 생략해 버리게 만들었거든요.
무조건적인 자기 긍정이
효과가 없는 이유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던 저는 계속 노력했습니다. 딱히 다른 방법을 알지 못했거든요.
딱 10년 전 저는 또 다른 책에서 발견한 자존감 강화 7가지 문장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문장은 “나는 나를 사랑하고 좋아한다.”라는 문장이었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을 위해 지속하는 힘이 강한 저는 무려 1년간 자존감 강화 7가지 문장을 외웠습니다. 그것도 아침 의식으로요.
아침에 눈뜨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7가지 문장을 말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는 식이었습니다.
아직도 몇 가지 문장이 기억나긴 하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말은 바로 첫 번째 문장이었던 “나는 나를 사랑하고 좋아한다.”였습니다.
아침마다 1년간 외우는 의식을 통해서 저는 제 자존감이 조금씩 높아지고, 제가 제 자신을 조금씩 좋아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랬을 거예요.
저는 그런 반복된 행동으로 스스로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어요. 저는 관계 속에서 계속해서 마음이 많이 불편한 상태였으니까요.
무조건적인 자기 긍정문으로 나를 세뇌시켜 자존감을 높여보겠다던 저의 야망은, 친구의 질문으로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집에 놀러 온 친구가 제가 예쁜 엽서에 적어놓은 자존감 강화 7가지를 보더니 대뜸 묻더라고요. “너는 너를 사랑하고 좋아하니?” 정말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못했거든요.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요. 마음이 먹먹하고 쓸쓸하고 허망했어요. 1년간 반복해서 외우었던 문장이 그저 허공에서 맴도는 별 효과 없는 문장으로 끝나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리던 그때 그 순간의 저의 좌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나를 구해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던 힘겹게 잡고 있던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이란 걸 알아차렸다고 해야 할까요? 무척 당황스러웠고 또 무척이나 슬펐습니다.
저는 그 날로 그 문장들을 외우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혹시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 바위틈새에서 보게 되는 갯벌레를 아시나요? 저는 갯벌레를 보는 순간 딱 바퀴벌레가 연상되어 너무너무 소름 끼치게 싫더라고요. 머리로는 날 해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지만 징그럽고 싫은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마음속으로 되뇌어도 감정적으로 편안하게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자존감도 그랬습니다. 자기 긍정문을 아무리 외워도 머리로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입으로는 그 문장이 막히지 않고 줄줄 나오더라도, 마음으로는 자기 긍정문처럼 나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던 거지요. 갯벌레처럼 제가 싫은 날들이 많았고, 결점은 또 왜 그렇게 두드러지게 보이던지요.
무작정 확언문만 외울 때
일어나는 반응
마찬가지로 ‘나 박윤미는 사랑스럽고 친절하지’라는 확언문을 읊조렸을 때 제 안에는 여러 가지 반박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니 너는 사랑스럽지 않고 친절하지 않아. 사랑스럽고 친절하다면 남편이 너한테 좀 친절하게 말해달라고 하지 않았겠지. 너는 남편한테 짜증도 내지 않았을 거야. 넌 사랑스럽지도 않고 친절하지도 않아.’라고 꽤 구체적인 단서들을 들이밀며 반박하는 목소리와 만나게 되더라고요.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긍정적인 문장을 외운다 한들 뇌에 제대로 입력이 되지 않습니다. 인풋 하려는 노력이 장기기억장치에 가닿지 못하고 겉에서 맴돌다 튕겨 내버립니다. ‘너는 사랑스럽고 친절한 사람이야’라는 말을 되뇌었을 때 손끝에 힘이 빠지고 가슴도 거짓말을 하고 있을 때처럼 떨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난 사랑스럽고 친절한 사람이 아닌데, 사랑스럽고 친절한 사람이야 라고 반복하니깐, 거부감과 함께 죄책감이 올라오더라고요. 그까짓 것, 거짓말도 하고 살 수 있잖아요? 근데 그게 또 안되더라고요.
이처럼 자존감은 자기 긍정문이나 자기확언문을 줄줄 외운다고 높아지지 않습니다. 실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는 변화의 시도가 없었던 것이 문제지요. 사실 저의 자존감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을 하나둘씩 처리해가는 기술이 늘면서 자존감도 끌어올려졌습니다.
갯벌레가 아무리 나를 해치지 않는다고 되뇌어도 그들을 보기가 여전히 역겨운 것처럼, 되뇌는 것만으로 잘 되지는 않습니다. 어린 시절,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우쭈쭈가 필요하지만 충분조건이 아닌 이유기도 합니다.
내가 갯벌레를 괜찮게 보려면, 부딪쳐봐야 합니다. 질겁하고 멀리서 쳐다보는 것만으로 끔찍하다고 여기며 주변을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 다가가서 정말 나를 해치지 않는다는 걸 경험해야 합니다. 내가 가면 그들은 쏜쌀 같이 바위틈으로 숨어버립니다.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는 무서운 존재이지요. 몇 번의 경험으로 그것을 알면 징그럽기는 하지만 다가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개의치 않게 되는 지점이 생깁니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불안해하며 경계하거나 불편하다고 외면하거나 피하기만 하다 보면 더 나아질 일이 없습니다.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닌 것 마냥 덮고 있을 뿐이지요. 그러다 문제가 부각되면 여전히 괴롭고 힘들어서 도망가기 바쁩니다.
왜냐고요? 갈등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기술을 익히는 연습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또 그래서 여태껏 해왔던 쉬운 방법대로 하게 되니깐요.
불편한 감정이 느껴진다면 쾌락적인 활동으로 그것을 무마하거나 잊으려 하지 말고, 반드시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원인을 찾고 그에 맞는 적절한 대안을 찾아 연습을 할 수 있고 경험을 쌓을 수 있거든요.
자기 긍정문의 효과를 얻는 방법
그렇다고 자기 긍정문이 아예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자기 긍정은 나에 대한 이해가 수반될 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에 대한 통찰이 수반된 상태에서 시도해야 효력을 발휘합니다. 무턱대고 I like myself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말에 상처를 잘 받고 속상해하는 나를 이해한 상태에서, 그 상황에 적절한 말을 찾아 되뇌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I like myself’를 되뇌는 것보다는 ‘괜찮아, 충분히 잘했어.’라는 말이 상처 받은 저를 위로하고 지지하는 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무조건적인 자기 긍정으로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여전히 부족해 보이는 자신을 좋아하고 싶다면, 내가 나를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