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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깃 Sep 23. 2024

다시 찾을, 찾아야 하는 일상

더위야 가라. 제발.

7월 말일 자로 퇴사를 했다. 딱 한 달만 퇴직금 까먹으면서 탱자탱자 놀고 이번 달부터는 계획한 일들을 차근차근히 해나가는 생산적인 일상으로 돌아가 보려고 했지만…….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뜨거운 8월은 상상 이상으로 생활 리듬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그래, 내가 게을러진 것 맞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도 녹아내릴 것만 같은 한낮의 무더위와 잠깐의 숙면도 허락할 수 없다는 듯 달려드는 열대야에 핑계를 돌려도 인정해 줘야 한다고 본다. (누가?)


어쨌든, 흐려져 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들고, 그동안 취미로만 즐겼던 커피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2년 전 회사원 신분으로 주말 동안 학원에 다니며 비싼 응시료 내고 바리스타 중급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바로 카페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에스프레소 머신이 집에 있는 것도 아니라 기껏 배웠던 지식을 활용할 기회가 없어 기억 저편에 묻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찌어찌 상황이 이렇게 되어 갑작스레 퇴사를 하게 되었지만, 이왕 시간이 주어진 김에 막연하게 좋아하는 일에 더 관심을 쏟을 기회가 아닐까 싶었다. 마침, 예전에 다닌 학원에서 가르쳐 주던 강사님이 새로 학원을 열었다는 연락을 받아서 상담을 받기로 했고, 브루잉(에스프레소 머신 등 기계의 힘을 이용하지 않고, 다른 도구들을 이용하여 손으로 직접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과 센서리 스킬(커피의 맛과 향을 보고 좋은 커피와 나쁜 커피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 수업을 이어서 듣기로 했다. 수업을 듣고 실습을 하다 보니 스스로도 제법 소질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해당 자격증 시험까지 추가로 보게 되었다. 학원에서 보는 실기 시험과 온라인으로 보는 이론 시험 모두 지난주에 통과했다. 이제 젊다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나이에, 과연 이 분야에서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도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뭔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할 것 같은 일이 일치한다는 느낌을 받아보는 것은 처음이라, 적어도 기회를 찾으려는 노력은 한번 해보고 싶다.


또 하나, 지난달부터 요가도 시작했다. 전부터 동네에서 지나칠 때마다 눈에 들어온 ‘요가상점'이라는 간판. 이름만 보고 요가복 파는 곳인가 했는데 강사님 한 분이 수업하는 자그마한 요가원이었다. ‘쉼을 파는 곳’이라는 의미로 요가상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마침, 거의 반 이상 노쇼(no-show)로 점철된 필라테스 회원권이 만료되어 요가상점에 등록했다. 회원 수가 많은 대규모 필라테스나 요가 스튜디오와는 달리, 강사님이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수업을 하려고 동네에 조그맣게 차린 것 같다고 할까.


가끔 오후 수업에 가면 여유롭게 요가상점을 누비고 있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강사님의 반려견인데, 수업 중에도 케이지 같은 곳에 들어가 있거나 하지 않고 유유히 회원님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자유로운 분위기다.


한 번은 수업 시작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내 매트 위로 올라온 녀석이 등을 보이고 가만히 앉았다. 녀석의 작고 말랑한 등판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자, 어서 쓰다듬어.”


한참을 내 손길을 즐기던 녀석은 또 다른 회원님에게로 떠났다. 마치 맡겨놓은 것이라도 찾으러 가는 듯 당연한 귀여움을 받으러. 사람들이 엎드린 자세를 하면 녀석도 옆에 가만히 엎드리거나 누워서 수업을 직관하기도 하면서, 강사님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에게 힐링을 주고 있었다.


무더위로 (그래, 핑계지만 이번 여름은 인간적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 무너져 내린 일상을 새로운 배움과 동네 요가상점에서의 소박한 쉼으로 다시 세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 흐름을 제대로 유지해 나갈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그러면서 명절 지나고 놀러

갈 준비만 하는 중 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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