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드디어 신혼집이 생겼다

경매로 집을 사고 남겨진 과제들

경매가 어려운 이유는 거주자를 내보내는 과정이 힘들기 때문이다. 가장 최악은 집주인이 집에 없는 케이스다. ‘사람이 없으면 강제집행하면 되니까 더 편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낙찰받아 집을 사도 바로 강제집행을 할 수 없다.


강제집행이란 국가기관을 통해 강제로 집 문을 따고 들어가 짐을 모두 빼내는 것을 뜻한다. 강제집행을 신청하면 1차로 집 문에 계고장을 붙인다. 계고장은 빨리 집을 비워달라는, 일종의 경고문이다. 1차, 2차 계고장을 붙이고 기다리는 데 시간이 가고 설령 강제집행을 신청한다 해도 빼낸 짐을 함부로 버릴 수 없다. 짐은 일정 장소에 보관해야 하며 끝끝내 거주했던 사람이 짐을 찾아가지 않으면 물건을 경매에 넘긴다. 하지만 가치 있는 물건이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고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짐은 폐기처분되는데, 강제집행, 짐 보관, 폐기처분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낙찰자가 부담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이론상 이 비용은 거주자가 내야 하나 사실상 비용을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다행히 우리의 경우 최악은 아니었다. 거주자가 집에 있고 연락도 잘 되는 편이었다. 하지만 합의점을 찾기 위해 이사비를 생각보다 더 줄 수밖에 없었다.


거주자: 이사비 200만 원 줄 거 아니면 법대로 해요. 우선 100만 원 선입금하면 이번 주부터 집 알아보고 1월 10일까지 나갈게요. 이사 당일에 나머지 금액 입금해주세요.


신랑과 함께 강제집행하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가급적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었다. 결국 거주자의 요구를 받아들여 100만 원을 선입금했다. 입금하면서도 이게 잘하는 일인지, 정말 이사 날짜를 지킬지 의심이 들었지만 결정을 내려야 했다.


혹시 몰라 1월 10일까지 이사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와 거주자의 인감도장을 받아두었다. 거주자는 사람을 그렇게 못 믿냐며 화를 냈지만 설득을 통해 인감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도 200만 원 이사비를 주기로 협의하였으니 인감도장도 양보해 달라는 식으로 설득했다.


거주자와 계약서를 쓸 때는 인감도장을 꼭 받아 두는 게 좋다. 나중에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인감도장과 계약서가 있으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강제집행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월 12일쯤에 거주자에게 문자가 왔다. 약속한 날짜에 떠날 것이니 이사 준비를 잘하라는 내용의 문자였다. 1월 9일에는 이사 전 특이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사 전날에는 수도, 전기, 가스비가 미납된 것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전화해서 계량기 숫자대로 납입이 완료됐는지 확인해 보면 된다


확인 결과, 수도세는 미납된 금액이 있었다. 미납된 금액은 괜찮았으나 문제는 도어락이었다.


거주자: 도어락을 가져가겠습니다.
신랑: 네, 가져가는 건 괜찮은데 후처리를 부탁드립니다.


거주자와 신랑의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도어락을 떼어내면 생기는 구멍을 메꿔달라고 했으나 거주자는 거절했다. 결국 거주자는 도어락과 미납된 수도세로 4만 원을 제하고 입금해 달라고 했다.


집은 생겼지만..


1월 10일 오전 드디어 거주자가 이사를 갔다. 거주자가 떠난 후 신랑이 가서 집을 확인하고 1차적으로 청소를 했다. 거주자를 처음으로 만났던 날에도 집 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꼈지만 짐을 다 들어낸 집은 더욱 적나라했다. 발가벗겨진 것 같은 집의 민낯을 보면서 셀프 인테리어의 꿈은 날아가버렸다. 도어락을 직접 달기 위해 시도했던 신랑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설치 기사님을 불러 몇 시간을 씨름하신 끝에 도어락을 교체할 수 있었다.


경매 전 등기부등본을 확인했을 때 집주인이었던 거주자가 20년간 한 집에서 살아온 기록을 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을 줄은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신랑에게 모든 경매 집이 이렇게 심각한 수준인지 물었다. 신랑은 집마다 다를 것 같다는 대답으로 말을 아꼈다. 올수리를 할지, 몰딩이나 문틀은 자체적으로 수리해서 다시 써야 할지 모든 것이 당혹스러웠다.


상대적으로 장점이 있다면 관리를 전혀 하지 않은 집인데 곰팡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보다 집이 컸다. 면적이 약 56제곱미터(약 16평)인데 방 3개, 화장실 1개로 안방이 큰 편이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부분과 다른 점이 많았다. 적당히 도배와 장판, 더 나가면 화장실과 싱크대 정도로 수리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는 지경이었다. 전문가의 힘을 빌려야 함을 직감했다. 무엇 하나 ‘적당히’로 해결할 수 있는 집은 아니었다. 전부 고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만이 있을 뿐. 지금부터는 인테리어와 집수리에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애 첫 코로나 검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