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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퐝지 Oct 11. 2020

인생의 사춘기에 읽은 <여덟 단어>

인생에 대한 8가지 키워드

인생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데, 답답한 마음에 훌쩍 혼자 여행을 떠났다. 첫날 여행을 함께 해준 길동무는 <여덟 단어>였다. 서른이 되어서인지, 많이 달라진 삶의 모습 때문인지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 시기이기에 더욱이나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박웅현 작가는 인생에 관해 아래의 여덟 단어를 꼽았다.

본질, 자존, 고전, 견, 현재, 권위, 소통, 인생


그중 사춘기로 앓고 있는 내게 영감을 준 몇 가지 단어를 꼽아보았다.


본질

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
전화기의 본질은 궁금하고,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은 마음입니다. 전화기가 발전해 개인 휴대전화가 생기고, 그 휴대전화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통화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전화기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변화하는 것 속에 변하지 않는 것, 'Everything changes'에서 'Nothing changes'를 보는 것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중요하기에 흔하게 들리고, 그렇기에 쉽게 잊히는 단어가 '본질'인 것 같다. 이 단락을 읽고 코로나 19로 인한 상황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됐다. 


코로나에도 이런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다만 형은 혁신적으로 변화했다. 특히나 체감되는 것이 재택근무, 비대면 모임, 온라인 채용이다. 여러 가지 변화 중에 일부는 코로나가 종식됨에 따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겠지만, 일부는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향유하고 싶어 한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고 눈을 마주치고 싶어 한다. 지금은 일시적으로 온라인에서 만나거나, 마스크를 쓰고 거리를 두고 있지만 코로나가 종식되면 다시금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싶어 할 거라고 믿는다.


자존

자존은 스스로를 중히 여기는 것이다. 내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진정 나를 자존하고 있는가 돌아봤다. 이따금씩 들었던 생각이었는데 나는 자존하지 못하다.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무상이 아니다. 성장하거나 성취했을 때에만, 즉 무언가를 잘했을 때에만 나를 사랑한다. 

자존감이 높지만 그 기저에는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에 나를 존중한다는 '조건'이 걸려있다. 알고 있던 점이었고, 버겁진 않아서 문제점이라고 인지하진 못했다.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기준점을 내 안에 두지 않고 밖의 기준점에 나를 맞추려고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무언가 결과물을 바라지 않고 그저 존재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로서 사회 속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저 사랑하도록 노력해야겠다.



동일한 장면을 바라보더라도 보는 사람이 가진 감각과 경험에 따라 그 장면은 시가 되기도, 그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특히 작가들은 흔한 사물 속에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딱딱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스며드는 것>


수많은 시간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꽃들이 햇살을 어떻게 받는지
꽃들이 어둠을 어떻게 익히는지
외면한 채 한 곳만을 바라보며
고작 버스나 기다렸다는 기억에
목이 멜 것이다.

조은, <언젠가는>


주변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많이 놓치고 사는 것 같다. 애정 어린 눈길과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고, 이 감각을 날카롭게 기르고 기르면 똑같은 일상이라도 매일 다르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책에서는 많이 보는 것보다 깊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호학심사, 즐거이 배우고 깊이 생각하라. 이 말에서 더욱 깊게 새겨야 할 것은 '심사'입니다. 너무 많이 보려 하지 말고, 본 것들을 소화하려고 노력했으면 합니다. 피천득 선생이 딸에게 이른 말처럼 천천히 먹고, 천천히 걷고, 천천히 말하는 삶. 어느 책에서 '참된 지혜는 모든 것들을 다 해보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끝까지 탐구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이게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길거리의 풀 한 포기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간장게장에서 새로운 세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깊이 들여다본 순간들이 모여 찬란한 삶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이따금씩 가슴속에 답답함이 차오를 때마다 책에서 만난 몇 가지 단어들을 꺼내보고, 현재를 즐기며 잘 살아가자고 다독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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