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디 Mar 16. 2020

프롤로그 - 나도,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

해외 취업을 하기까지

"한국은 좁으니 해외로 나가라"

아버지께서 자주 하셨던 이 한마디에 세뇌되었던 것일까.., 나는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아니, 그 나라가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언젠가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기정 사실로 여겨졌다. 당연하게 다가오는 미래라 생각해왔다.

미디어를 통해 보아 온 '외국생활'의 뒤에는 돈 많은 부모의 넘치는 금전적 지원이 필수적이었다. 부족하진 않았지만 넘치지도 않았던 형편의 나의 부모님으로부터 그러한 투자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녀만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기에는 '쿨'한 유형의 어른들이었다. 운이 좋았던 건,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풀어갈지 희망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할만큼 '똑똑'한 부모님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이공계 대학원에 진학하면 외국 명문 대학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작이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유학을 가면 그 나라에 적응하는데 자신있었고 졸업 후에는 현지 취업을 통해 정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거라 생각했다. '외국생활'을 꿈꾸는 나에게 '유학'은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누군가는 기피하던 이공계가 나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나보다 먼저 유학의 기회를 잡아 독일로 떠난 누나를 보며 용기를 얻었다.


해외생활에 대한 로망이 나 혼자만 꿈꾸는 고유한 것은 아니었다. 내 대학 시절에는 어학연수, 교환학생, 워킹홀리데이 등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외국을 경험할 수 있는 멋진 프로그램들이 많았고, 내 주변에도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좋은 추억을 만들고 돌아온 친구들이 많았다. 본말전도처럼 들리라고 하는 말이지만, 취업에 도움이 되는 건 덤이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외국에서 살테니 이러한 프로그램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외화를 쓰기보다는 벌고 싶었고, 파트 타임보다는 정규 직업을 갖고 싶었다. 그것이 그 나라의 진정한 구성원으로서 그 사회를 제대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학창시절 경험할 수 있는 해외 체류 프로그램은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하루라도 어릴때 더 놀아두자. 어쨌든, 내가 대학교와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짧은 해외여행 몇번 외에 '외국생활'은 없었다.

졸업 후 조선해양으로 유명한 국내 대기업에 입사하였다. (이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다루어 보자.) 이곳에서 근무하는 동안 '해외진출'의 꿈을 놓지 않았다. 입사 4년 반이 되는 시점을 퇴사일로 계획하고, 미국 대학원의 박사과정에 입학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였다. 비 영어권에서 공부한 학생이 미국 대학원에 원서를 지원하려면 먼저 TOEFL 혹은 IELTS 시험 점수가 필요하다. 이는 영어로 공부할 능력을 검증하기 위한 것으로, 학교마다 그리고 전공마다 요구하는 최소 점수가 있으며, 어학 점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서류 전형에서 탈락한다. (일부 예외가 있을 수도 있다) 다음으로 GRE(Graduate Record Examinations) 시험 점수가 있어야 한다. 내가 다니던 학원 선생님이 말하길, 이 시험의 목적은 '글쓰기'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학자가 되면 이에 대한 결과물로 논문을 써야 하기 때문에 GRE 공부를 잘 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곤 했는데, 주제 혹은 질문에 대해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영작'을 해내는 것이 핵심이다. 개인적으로는 유학을 가지 않더라도 GRE 시험 공부는 한번쯤 해보길 강추한다. 그 다음은 SOP(Statement of Purpose, 수학계획서)이다. 지원자는 SOP라는 에세이를 통해, 왜 이 대학교를 지원했고 이 전공을 공부하려 하는지, 그리고 학교 및 교수로 하여금 왜 자신을 합격시켜야 하는지 설명한다. 본인이 지원하는 대학교 전공의 교수들과 연구분야를 미리 확인해야 설득력있는 SOP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추천서이다. 일반적으로 학부 및 석사과정 전공 교수님들의 도움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이미 직/간접적으로 유학 경험이 풍부하신 교수님들께서는 꿀조언을 아끼지 않으신다. 도와주셨던 교수님들,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미국 대학원 입학을 위해 준비할 사항
- 어학 시험 점수 (TOEFL 혹은 IELTS)
- GRE 시험 점수
- SOP
- 추천서


본격적인 유학준비를 위해, 우선 어린 시절부터 줄곧 자신 없던 영어라는 벽을 넘어야만 했다. 매일 매일 회사 퇴근 후 새벽 2시까지 공부하였고, 그 시기에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잠시 접어두었다. 고3 수험생활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고되었을까? 어느 쪽이든 지금 다시 하라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긴 유학준비기간 끝에 입시원서 제출을 마무리하고 나니,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과정이 남아있었다. 어드미션(Admission, 입학 허가)을 받지 못한 채 각 학교의 합격자 발표일이 하나씩 지나가는데, 초조한 마음으로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대학원에 합격을 하려면 위에서 언급한 시험점수, SOP, 추천서 외에 학부 성적과 연구 실적(박사 과정을 지원할 경우)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톱 클래스 학교의 경우 학부 성적은 절대적인데, 정시 전형에서의 수능 점수만큼 당락을 좌지우지한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공부했었지만 특출난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꿈에 그리던 최고의 대학교 위주로 지원했다. 유학을 준비하던 열정에 대한 자신감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자만심 혹은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모두 떨어지는 것이 당연할만큼 무모했고, 어디 한 곳이라도 합격하면 그야말로 기적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학교마다 합격 여부를 이메일로 혹은 우편으로 통보해주기 시작했다. 유학을 준비하는 동안 몸이 힘들었다면, 불합격이라는 당연한 결과를 하나씩 마주하던 이 기간은 심적으로 더 힘들었다.

어지간한 학교들은 결과 발표가 끝나던 무렵, 입학을 허가한다는 한 통의 희망 어린 이메일을 하나 받게 된다. 꿈인지 생신인지 만세를 불러야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니 뭔가 개운치 않다. 내가 받은 어드미션에는 금전적인 지원이 포함되지 않았으며, 장학금은 알아서 마련하라는 일종의 조건부 어드미션이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안가서 나에게 어드미션을 주기로 한 교수에게 연락을 하고, 그 학교를 다니는 선배들로부터 정보를 취합해 보았다. 보아하니 나를 받아들이기로 한 교수는 당장 연구비가 없는 상황이고, 언제 연구과제를 확보할 수 있는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다른 교수를 알아보거나 외부에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을 권장한단다. 그 학교의 선배들을 수소문해보니 내가 지망한 기계-항공 공학과의 경우 국가장학금 등 외부에서 장학금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TA(Teaching Assistant, 수업 조교)로 학비 및 생활비를 마련한다고 한다. 이 와중에 영어 점수를 통화하지 못하면 TA 자격을 얻지 못해 자비를 쓰면서 버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RA(Research Assistant, 연구 조교) 자리를 구하면 가장 좋지만, 그게 쉽지는 않아 보였다. 

분명 시도해볼만한 부분이 남아 있었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해소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가운데 한 헤드헌터가 링크드인(LinkedIn, 비즈니스에 특화된 SNS)을 통해 이메일을 보냈다. 덴마크에 본사를 둔 산업용 로봇 제조사에서 싱가포르에 사무실을 열었는데, 한국인 엔지니어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스타트업에 가까웠던 이 회사를 잘 알진 못했지만, 이 회사의 로봇은 한번쯤 본 적이 있는 것 같았고, 제품에 대해 조금 찾아보니 아주 훌륭한 로봇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마침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력서와 영어 시험 점수도 준비되어 있었고, 그날 바로 지원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기나긴 유학준비와 달리 입사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한 주 뒤 실무 인터뷰 일정을 잡았고, 며칠 뒤 인사 결정권자와 최종 면접을 진행하였다. 참고로 인터뷰는 스카이프(Skype)를 통해 영어로 진행되었다. 일부 대학원은 학생 선발 과정에서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여 미리 준비해 보았었는데, 그것 또한 큰 도움이 되었다. 최종 면접을 마치고 30분 후, 담당 헤드헌터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회사에서는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다다음날 계약 상세 조건이 담긴 계약서를 전달 받았다. 이 모든 것이 2주 내에 진행되었다.

해외 취업을 위해 준비할 사항
- 영문 이력서
- 해당 회사 및 직무 파악
- 영어 인터뷰 

합격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한편으로는 미국 대학에서 그렇게 받기 어렵던 합격통보를 너무 쉽게 받은 것 같아 얼떨떨했다. 생각해보면 박사 유학을 원했던 이유도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게 가장 큰 동기였고, 유학 이후 해외 취업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그렇다면 유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해외 취업이 가능하다면 이것은 분명 나에게 호재였다. 특히, 돈을 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외화를 벌 수 있다는 점은 심리적으로 크게 다가왔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회사였고 입사과정도 너무 빨랐기에 어머니는 무언가 꺼림찍하다며 불신어린 반대표를 던졌으나 나와 주변에서 어머니를 안심시킨 후 나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이 회사에서 찾던 인재상은 1)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하고, 2) 로봇 관련 업무 경력이 있는, 3) 미혼의, 4) 젊은 5) 엔지니어였다. 잠을 쪼개가며 영어시험을 준비한 덕분에 영어라는 벽을 넘을 수 있었는데, 유학을 준비한 효과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나타났다. 4년 반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산업용 로봇을 연구개발한 경험 덕분에 로봇 기술에 대한 이해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이전 회사에서는 로봇에 대한 이론을 바탕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였다면 새로운 곳에서의 직무는 로봇을 잘 사용하도록 고객 및 파트너 엔지니어들에게 기술적인 부분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이 차이에 대해서는 추후 자세히 다루어보자) 회사 입장에서 현장 경험은 추후 보강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고 나를 받아주었던 것 같다. 미혼이라는 부분은 의아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한국인을 싱가포르라는 타지로 데려와야 하는데, 부양가족이 있다면 그에 대한 추가 지원 등 애로사항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실제로 비자발급 과정에서도 미혼자가 기혼자보다 쉬워 보였다. 비슷한 맥락으로 젊은 사람이 싱가포르로 이주하기 쉽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나의 조건은 이 회사에서 필요한 요구사항과 절묘하게 들어 맞았던 것이다.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계약서에 사인하자마자 재직 중이던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였는데, 마침 유럽 경제위기로 주요 사업인 조선해양 분야가 흔들리며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회사는 아주 쿨하게 보내주었다. 곧이어 싱가포르 행 비행기를 타고 드디어 외국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