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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디 May 23. 2020

에필로그 - 목표의 성

어느 나라에서 살 것인가

'목표'라는 성이 있다. 


조금은 막연하지만 먼저 떠난 선배들이 남긴 지도를 보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목표의 구체적인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상상으로 그리며 일단 출발하는 것이다. 지도가 틀리지 않았다, 내가 성실히 걸음을 옮길 수록 목표의 성에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 지도가 맞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의심한 적도 많다. 걷다가 지쳐서 포기하고픈 적도 많다. 그러나 꿋꿋이 나아갔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그 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시에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이 성이 내가 찾던 그곳이 맞는지, 이제는 조금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그동안 추구해오던 목표의 성은 제한된 숫자의 인원만 수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알고보니 나 말고도 이 험난한 길을 묵묵히 걸어온 사람들이 있었고 마차를 타고 쉽게 도착한 이들도 있었다. 알고보니 그들 중에는 나보다 이 성에 더 적합한 사람들이 많았다. 결국, 나는 이 성에 들어갈 기회를 얻지 못했다. 힘들게 성 앞까지 도달했지만 나는 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면 나는? 내가 들인 노력은? 나는 이대로 실패자가 되고 마는 것인가? 혹시라도 문을 열어주나 기다려야 할까? 아니면 또다른 성을 찾아 먼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일까?


걷다가 걷다가 느낀 것이 있다면, 목표라는 것이 사실 생각만큼 단순하진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직업이 될수도 있고, 금전적인 여유가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처음에 목표라고 생각한 것을 바라보며 열심히 달렸던 덕분에,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단지 목표의 성 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 안에 있는 비밀열쇠를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성 문을 열고 들어간다고 비밀열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열쇠를 찾기 위해 또 다시 새로운 모험의 길을 찾아 걸아야 할 것이며, 열쇠의 주인이 되기 위해 나 스스로가 더 발전해야 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사실은, 열쇠가 적어도 이 성 어딘가에는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직면한 문제는 내가 그 성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점.


그러던 중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성은 매우 넓었고, 성으로 들어가는 문 또한 여러가지였다. 또 한가지, 열쇠는 바다가 보이는 지역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마침 선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덕분에 승선할 기회를 얻었다. 배를 타고 이동하여 꿈에 그리던 성 안에 도착하게 되었다.


목표라는 성을 향해 걷는 것은 분명 힘들었다. 하지만 즐거웠던 것도 사실이다. 살아있는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목표라는 성을 향해 걸으며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할 수 있었고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젠가 열쇠를 찾는 그날까지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외국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었고, 이를 위해 험난한 과정을 거쳐 유학에 도전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운 좋게도 외국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싱가포르에서 1년, 덴마크에서 1년 살아볼 수 있었다.


덴마크에 온 지 1년이 지나 나에게 선택의 기회가 찾아왔다. 싱가포르에서는 타의에 의해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이번에는 내 의지로 덴마크에 남을 수 있었고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여러가지 스토리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유 두 가지를 꼽고 싶다. 우선, 나에게 있어 '외국에서 산다는 것'이 '맹목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목표'는 아니라는 점이다. 막연히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었지만, 왜 외국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구체적인 목적이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해외는 좁으니 외국에 나가라'고 이야기 했었지만, 이는 한국이라는 굴레에 갇히지 말라는 것이지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반드시 한국에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반드시 외국에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 보다는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적어도 커리어 측면에서는 답이 보였다. 나는 더 배우고 성장하고 싶었다. 새로운 기회가 있다면 도전해보고 싶었다. 덴마크에서 글로벌 업무를 담당하는 것과 한국으로 돌아가 고객들에 가까이 가는 것에 대해 고민하였다. 두 가지 모두 욕심이 났지만, 결국 한국에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더불어 상황이 허락하는 한 글로벌 업무에도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협의하였다. 


싱가포르와 덴마크라는 두 나라에 살아보니 저마다 매력이 있었다. 싱가포르는 물리적으로 살기 편했고, 덴마크에 있을 때는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두 나라 모두 다시 한번 살아보고 싶다. 하지만 타지 생활을 해보니 모국(Mother Country)에 사는 것이 가장 유리한 것 같긴 하다. 우리들 각각은 오랜시간 모국의 문화와 언어적인 환경에 길들여 졌으며, 이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식습관 등에 뿌리깊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해외 생활을 꿈꾼다면 나는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다양한 경험은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나도 여전히 삶의 목표를 찾는 긴 여정의 중간에 있지만, 외국에서 살았던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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