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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o Sep 15. 2023

사람은 떠나도 좋은 일은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

집주인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별다를 것이 없었던 평일 오전.

잠시 통화가 가능하냐는 집주인 할아버지의 아들분의 연락이 왔다. 


실은... 조금 돌아가신 지가 되셔서요...


나는 다세대 주택에 산다. 집주인 할아버지는 맨 꼭대기인 3층에 사셨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1층 집 앞 집은 주인 할아버지의 아들 가족이 살고 있다. 가끔 아버지 대신 일을 처리해 주기 위해 연락이 온 적은 있었지만, 갑자기 통화가 되느냐는 것을 물었을 때, 일반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후 통화에서 들어보니, 집주인 할아버지는 약 1달 전 세상을 떠나셨다. 그로 인해 월세나 관리비 등을 아들이 받기 위해서 연락을 준 것이었다. 세입자들 때문에 조용히 처리했는지 몰라도 그 말을 듣고 나니 아들분 집 앞에 제사 용품 박스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당시도 '설마...'라는 생각은 떠올랐지만,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생각을 접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조금은 기분이 이상했다. 과거의 기억들 때문이었다. 


나는 이 집에 들어와 산지가 약 7년 정도 됐다. 처음에는 반지하 방으로 들어와서 지금은 1층에 산다. 이 집에 처음 오려고 했을 때만 하더라도, 난 사정이 더욱 좋지 못했다. 한 때, 친구와 같이 살았던 나는 집도 급하게 구해야 했다.


카페를 통해 구경하던 중 괜찮은 집을 찾아냈다. 급하게 나가야 해서 살고 싶은 집인데 양보하는 거라는 사람을 만나 집을 구경했다. 반지하였지만, 500만 원에 월 30만 원을 줘야 되는 방 치고는 크기가 컸다. 그 사람도 당시 주인 할아버지가 좋으신 분이라 했다. 나는 그날 이사를 결정했다. 


불을 끄면 어두컴컴했지만, 혼자 사는 그 공간이 너무 행복했다. 당시 나는 회사 사람과 갈등이 있어서 성급하게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지만, 혼자 있는 시간의 자유로움과 나태함은 꿈만 같았다. 그런 감정만 이어졌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 행복감은 금전적인 부족으로 이어졌다. 


생각만큼,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너무 수입이 적거나 안 좋아 보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지원하고, 면접보고, 선택하는 시간까지 수입은 없었다. 결국 월세를 내지 못하는 달이 생겼다. 30만 원이 수중에 없었다.


처음이야 이렇게 저렇게 대처가 가능했지만, 수입이 몇 달간 전무후무하니 월세를 내기에 빠듯했다. 어쩌다 한번 월세가 밀렸는데, 먹고사는 게 급급하다 보니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월세를 안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지난 시간만 10개월. 


당시 집주인 할아버지는 10개월이 지나서야 월세가 좀 밀린 것 같다고 처음 전화를 주셨었다. 이 건물에 한 두 집이 사는 게 아닐 것인데, 그걸 알면서도 별 말을 안 하고 참아주신 것 같았다. 그게 미안해서 밀린 월세라도 갚아보자고 별 일을 다 했다. 신촌, 의정부, 지방까지 막노동이어도 돈이 될만한 건 다 했다. 그리고 나서야 목돈이 된 밀린 월세를 다 드릴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수입 가구 회사에 들어갔다. 연봉을 많이 주는 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방구석에 틀여 박혀서 알바를 찾는 나보다는 훨씬 좋았다. 이후 서서히 난 정상적인 삶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난 집을 옮기지 않았다. 


오래 이 건물에 산 만큼, 가끔 집주인 할아버지와 연락하거나 뵐 일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실제 뵈었던 건 지금 살고 있는 1층으로 옮기면서 계약서를 쓸 때였다. 늘 모자를 쓰고 계셨는데 그날은 집에서 모자를 안 쓰고 계셔서 이마가 크게 부풀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랐지만, 이상이 있으신 것만은 분명했다. 


그게 할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어쩔 순 없었지만, 장례식에 가지 못한 게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그 할아버지에게는 한 때 참, 골치 아픈 세입자였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죄송스럽고 한편으로는 좋은 인품을 가지신 분이었기에 좋은 곳에 가셨으리란 생각도 든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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