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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영어, 너는 누구냐?

영어를 못할 때의 여행법

by 소율


영어를 못할 때의 여행법


자유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인은 뭘까? 열에 아홉은 영어를 꼽는다. 시간도 돈도 체력도 어찌어찌 만들 수 있겠는데 영어만큼은 대책이 없다. 한국에선 수다쟁이, 해외에 나가면 꿀 먹은 벙어리, 여행지에서 누군가 말을 걸면 그냥 웃지요. 근데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이게 바로 우리 현실. 이제라도 뒤늦게 영어 공부를 하자니 엄두가 안 나고 아예 포기하자니 여행할 때마다 걸림돌이다. 그렇다면 영어를 못하니 여행도 포기해야 하나?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영어를 못해도 자유여행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국인 숙소와 여행사를 이용한다


초보 여행자가 만나게 되는 현지인이란 주로 여행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여행자는 대부분 이들과 의사소통을 하게 되는데 영어가 서투르다면 한국인을 만나면 된다. 외국이라고 해서 그 나라 현지인만 사는 게 아니다. 웬만한 여행지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와 여행사가 꼭 있다. 과연 한국인이 진출하지 않은 나라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행업체는 수두룩하다. 정보도 쉽게 얻을 수 있고 한국인 동행도 구할 수 있고 여러 모로 편리하다.


꼼꼼하게 준비를 한다


영어를 못해도 준비만 잘하면 여행은 문제없다. 대신 더욱 꼼꼼하고 세심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세밀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을 것인지, 이동 루트, 목적지를 찾아가는 방법,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방법 등. 쉽게 말해서 뭔가를 영어로 물어봐야 하는 상황을 최소화하는 것. 사전정보가 충분하면 굳이 못하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성격이 세심하고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하는 유형이라면 이 방법을 추천한다.


젖은 낙엽수법


영어도 못하지만 준비하는 것도 귀찮은 유형에게 권한다. 아주 간단하다. 영어 잘하는 사람 옆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기. 마치 늦가을 젖은 낙엽처럼 말이다. 처음부터 영어 잘하는 사람을 동행으로 구하면 만사형통이다. 아니면 여행지에서 영어 잘하는 사람을 동행으로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언뜻 쉬워 보이지만 이 방법을 구사하는 건 대단한 능력이다. 내게 없는 남의 능력을 적절히 활용하는 자체가 또 하나의 능력이다.


아들과 동남아시아 3개국 여행을 할 때 라오스에서 만난 여행자가 있었다. 그녀는 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는 내 또래의 엄마였는데 본인은 영어 한마디 할 줄 몰랐다. 그런데도 가는 곳마다 영어 잘하는 동행을 만나 불편 없이 다녔단다.


이 방법을 쓰려면 영어능력자 동행이 나를 귀찮게 여기지 않게끔 해야 한다.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게 있는 법. 도움을 받는 대신 맛난 밥을 산다든지, 숙박비를 더 부담한다든지, 그에 상응하는 보답이 있어야겠다.


번역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다


날이 갈수록 번역 애플리케이션이 발전하고 있다. 언젠가는 외국어를 힘들게 배우지 않아도 전 세계인과 자유롭게 대화가 가능하기를 기대해 본다. 현재 쓰이는 애플리케이션 중에서 구글 번역파파고가 성능이 우수하다. 구글 번역은 음성인식뿐만 아니라 이미지 번역과 오프라인 모드까지 가능해서 매우 유용하다. 게다가 100가지가 넘는 언어를 지원한다. 파파고는 번역시 온라인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국 언어만 가능하다. 여행영어책 한 권을 통째로 집어넣은 것과 마찬가지인 ‘글로벌 회화’ 부분은 오프라인 모드에서 쓸 수 있다.


영어는 그저 도구


영어 때문에 자유여행을 망설이는 사람들은 “영어만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한탄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여행자에게 필요한 것은 유창한 영어실력이 아니라 여행하기에 무리 없을 정도의 의사소통 능력이다. 즉 그냥 영어가 아니라 콕 집어 ‘여행을 위한’ 영어를 말한다. 범위가 굉장히 좁혀진다. 목적도 굉장히 분명하다. 여행을 위한 영어, 여행영어에서 방점을 찍어야 하는 것은 영어가 아니라 ‘여행’이라는 것. 영어는 여행을 불편 없이 하기 위한 여러 가지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여행을 하기 위한 도구에는 무엇이 있을까? 돈도 있어야 하고 시간도 내야 한다. 체력과 정보도 필요하다. 여기에 영어까지 할 줄 알면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부실하다고 해서 여행을 못 하지는 않는다. 그것 대신 다른 도구들을 더 활용하면 되니까.


예를 들어 엄마가 요리를 한다고 치자. 요리를 하려면 칼, 도마, 밥솥, 냄비, 프라이팬 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마침 도마가 없다면 요리를 포기하고 아이들을 굶길 것인가. 아니다. 도마 대신 커다란 접시를 써도 되고 쟁반을 사용해도 된다. 어떡해서든 요리를 해서 아이들을 먹이려고 하겠지.


도구란 이런 것이다. 있으면 사용하고, 없으면 대용품이라도 쓰는 것. 그래서 있으면 편리하고 없으면 불편한 것. 이런 의미에서 여행영어는 잘하면 편리하고, 못하면 불편하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영어를 잘하면 자랑스러워하고, 영어를 못하면 창피해한다. 여행을 갔는데 여행 자체보다 영어를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더 신경을 쓴다. 그 이유는 자꾸 영어를 목적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주객이 전도되었다. 진짜 목적은 영어가 아니라 여행이다. 영어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모시지 마라. 영어에 감정이입을 하지 마라. 도마가 없다고 창피해 하느라 아예 밥을 안 하는 엄마는 없다. 강조하지만 여행에서 영어는 막 굴려도 되는 도구다. 그것도 유일한 도구가 아니라 여러 가지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그까이거 영어, 좀 만만하게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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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게 권하는 여행영어 연습법


우리 중년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에 젊은이들보다 불리한 게 사실이다. 우선 기억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은 못 했어도 암기과목만큼은 문제없었다는 사람이라도 마흔이 넘어가면 절대 기억력을 자신하지 못하게 된다. 고백하자면 내 이야기다. 일찍이 아들로부터 ‘까마귀엄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기억력이 저하되었다.


또 학생 때처럼 공부할(연습할) 시간이 많지 않다. 내가 뒤늦게 영어공부를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지점이었다. 기억력보다 집중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더 문제였다. 전업주부의 시간이란 늘 조각조각 난 틈새시간이다. 공부에만 오롯이 집중할 시간이 별로 없다. 아마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면 더 부족할 것이다. 해주는 밥 먹고 공부만 하던 전업학생 시절이 좋았다는 걸 나이 먹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중년의 영어연습법은 젊은이들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더 간단하게, 더 쉽게, 그리고 꼭 필요한 것만.


첫째, 기본문장만 익혀라

여행영어는 기초영어라고 했다. 기본적인 문장만 익히면 된다. 그것도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문장만 알면 된다. 너무 많이 알려줘도 부담만 된다. 어차피 소화하기 힘들다.


둘째, 반드시 입으로 연습하라

기본문장은 반드시 입으로 연습해야 한다.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는 것이 아니라 큰 소리로 외치는 게 좋다. 툭 치면 톡 튀어나올 정도로 몸에 배게끔 반복한다. 한꺼번에 많은 시간을 하기보다는 조금씩 자주 하는 게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 방문마다 쪽지를 붙여놓고 오며가며 연습하는 방법을 권한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연습할 수 있다.


셋째, 포인트만 전달하라

능력이 된다면 문장 전체를 익히고, 그게 어렵다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된다. 즉 문장 전체를 완벽하게 익히지 않아도 괜찮다. 핵심 포인트가 되는 한 단어나 두 단어만 전달해도 뜻은 통한다. 완벽하게 하려다 질리는 것보다는 부족하게 해도 포기하지 않는 게 이득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포인트’가 되는 단어다. 하고자 하는 말을 단번에 표현해주는 하나의 핵심 단어를 말한다.


넷째, 내게 가장 편한 것(가장 간단한 것) 1개만 익혀라

같은 뜻이라도 표현은 여러 가지다. 그걸 다 익히려 애쓰지 말고 딱 1개만 익히자, “한 놈만 팬다.”는 영화 대사도 있잖은가. 내가 쓰기에 가장 편한 문장 1개만 말할 수 있으면 된다. 아마 가장 간단한 문장이 가장 쓰기 편한 문장일 것이다.


다섯째, 미소와 몸짓을 같이 하라

한국어가 평면적인 언어라면 영어는 입체적인 언어다. 말소리 외에 다른 표현수단을 같이 사용하는 게 효과적이다. 손짓, 발짓 같은 몸짓을 같이 해보자. 훨씬 의사전달이 잘된다. 더불어 미소는 여행자의 필수소지품. 내 나라가 아닌 곳에서 여행자란 늘 약자의 위치이다. 웃는 얼굴에는 침 뱉지 못하는 법이니 같은 말이라도 미소와 함께라면 더 잘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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