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일까 타인일까
그동안 여행했던 도시를 떠올려보면 유명 랜드마크보다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누군가를 만났던 기억은 총천연색으로 선명한 반면, 그저 관광지만 돌아다닌 날은 초점이 나간 흑백사진처럼 흐릿하다. 멋진 풍경과 엄청난 유적지가 없어도 좋은 사람과 함께 한 여행은 행복했다. 사람이 좋으면 다 좋았다. 반면 사람 때문에 고생했던 여행은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새로운 풍경과 문화를 접하려고 여행을 떠나지만, 여행에서의 진짜 탐험은 역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닐까. 여행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사람을 만나게 된다. 사는 곳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낯선 타인을 만나는 모험. 이 타인의 범주에는 신기하게도 자기 자신이 포함된다. 이전에는 몰랐던, 마치 타인 같은 자신 말이다. 같은 한국인 여행자는 물론 다른 국적의 여행자, 그 나라에 사는 현지인들을 만나고 부딪치는 과정이 여행의 속성이다. 사람을 빼놓고는 여행을 논할 수가 없다.
직장생활에서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가 힘들다고들 말한다. 어찌 보면 여행에서도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여행의 질을 좌우한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서로 잠시 스쳐가는 이방인이지만 그런 이유에서 또 쉽게 친구가 된다. 그게 여행이 부리는 마법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적극적으로 사람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피해다니기도 한다.
친구가 필요해
혼자 떠나온 여행이라고 해서 친구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혼자이기 때문에 더 친구를 찾고, 혼자여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나 같은 여행자는 기꺼이 여행지에서 친구를 사귀는 편이다. 아들과 여행을 할 때도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과 어울렸고, 혼자 여행을 하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버스나 기차를 타면 옆 사람에게 말을 건다. 같은 숙소에 묵는 여행자에게 같이 투어를 하거나 밥을 먹자고 제안한다. 숙소의 주인과 직원은 가장 친해지기 쉬운 사람들이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미소를 주고받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나에게는 여행의 가장 큰 기쁨이다.
당신도 만약 사람을 만나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꼭 여행경험이 많거나 영어가 유창해야 가능한 일은 아니다. 초보 여행자거나 영어가 서툴러도 크게 지장이 없다. 조건은 오직 마음을 열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 경험해 보니 언어보다 태도가 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말을 걸고, 먼저 다가가는 것. 이럴 때 “안녕”, “고마워”, “미안해”만 잘해도 반은 성공이다. 특히 현지인에게는 영어보다 그 나라 말로 하는 게 좋다. 상냥한 말 한마디가 마음을 말랑거리게 한다.
화를 내기보다는 미소를 짓는 것. 모든 것이 낯선 여행지에서 내 뜻대로 내 계획대로 안 되는 일은 당연히 벌어진다. 여행이란 돌발 상황을 동반하는 일이다. 화내기보다 미소가 필요하다. 미소는 언제나 옳다.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을 때도 돈이나 먹을 것보다는 미소가 낫다. 그 다음으로 좋은 건 풍선이다. 돈이나 먹을 것은 아이들을 계속 구걸하게 만들지만 풍선은 아이들을 웃게 만든다.
자신을 믿고 다음엔 타인을 믿는 것. 내가 나를 믿어 주지 않으면 남도 나를 믿어 주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서툴고 어리숙한 자신을 발견하더라도 비난하지 말고 격려해 준다. 그 대상이 친구였다면 당연히 그리 하지 않았을까. 자신을 사랑하는 자의 눈은 타인을 향해서도 반짝거린다. 그런 사람이라면 친구를 만들기 어렵지 않다.
사람들과 거리 두기
그러나 항상 사람들이 좋을 수는 없다. 사람들에게 치이고 지쳐서 떠나온 여행이라면,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라 제발 여행지에서만이라도 입을 다물고 싶다면, 오직 혼자만의 시간을 원해서 선택한 여행이라면 사람들을 피하고 싶어진다.
그 외에도 사람들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여행지에 도착하자마자 소매치기나 사기를 당했다면 돈도 돈이지만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게 된다. 그 도시 사람이라면 다 싫어지고 자기 자신마저 원망하게 된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장거리 버스비를 두 배로 뜯기는 사기를 당했을 때, ‘멍청하게도 그렇게 속아 넘어가다니!’라는 자괴감이 컸다. 이럴 때는 하루 빨리 마음을 가라앉히고 잊어버려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래도 여행의 수업료라 생각하는 편이 도움이 된다. 다음에는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도록 더욱 주의를 기울인다.
끈질긴 호객꾼에게 붙잡히고 싶지 않을 때는 일단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이다. 못 본 척 무시하고 지나가는 게 좋다. 또한 여행자에게 적대적인 현지인을 만났을 때도 무시하는 방법이 제일 낫다. 기분 나쁘다고 맞서 싸우거나 언쟁을 벌여봐야 득 될 게 없다.
원하지 않는 지나친 친절은 성희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친절하지만 어쩐지 부담스럽다면 정중하게 거절을 한다. 그런데도 같은 행동을 계속한다면 더 이상 친절로 받아들이지 말자. 그때는 강하고 단호하게 거절을 해야 한다. 과감하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기를 권한다.
여행지에서 일단 도움을 받은 쪽은 뭔가 아니다 싶은 상황임에도 대놓고 거절하기가 힘들다. 이런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는 경우는 이미 친절이 아니라 흑심이다. 반대로 사기가 아닐까 의심했는데 순수한 호의인 경우도 있다. 가끔은 친절과 사기를 구분하는 게 어렵다. 너무 경계를 하다보면 여행이 피곤해지고 재미없어진다. 그렇다고 너무 마음을 놓아도 안 된다.
경계심과 믿음 사이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할까? 정답은 없다. 단 뭔가 애매할 때는 자신의 감을 믿으라고 말하고 싶다. 의외로 느낌이 가리키는 방향이 정확할 때가 많다. 기본적으로 안전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되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동안의 여행을 돌아보면 악의를 품은 사람보다는 선의를 가진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에도 여행을 계속 하는 게 아닐까.
어떤 일에서 계획을 세운다는 의미는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을 포함한다. 다시 말해 지키기 위해 세우는 게 계획이다.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 해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여행에서만큼은 계획이란 철저히 지키기보다는 유연하게 바꾸라는, 아니 바뀔 수밖에 없는 성질을 가졌다. 여행은 익숙한 안전지대를 스스로 벗어나는 행위다. 불확실성이 여행의 본질인데 계획이 그대로 지켜질 리가 없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이런저런 변수가 튀어나와 당신의 여행을 바꾸어 놓을지 모른다. 아무리 잘 세운 계획이라도 막상 여행지에서 부딪쳐보면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동그라미 유형’이라는 전제하에 여행계획을 세웠는데 여행을 해보니 ‘의외로 세모 유형이었어.’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이럴 때도 예상과는 전혀 다른 여행이 펼쳐진다.
여행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짜증을 내봐야 기분만 상한다. ‘여행에서 계획이란 바뀌라고 있는 것’이란 명제를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다음 단계는 플랜 B를 찾는 것. 그럴 때 우리에게는 정녕 플랜 B가 필요하다. 철저한 여행자라면 플랜 B까지 이미 계획해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라도 상관없다. 플랜 B의 묘미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여행지에서 변덕을 부리는 건 여행자의 특권이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자신을 위해서 마음껏 변덕을 부려보겠나. 일상이 아닌 여행에서만큼은 내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 보자. 어쩌면 플랜 B가 원래 계획보다 더 맘에 들지도 모른다.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게 여행이다.
아들과 아프리카 여행을 할 때 우리의 계획은 아프리카 종단이었다. 남쪽 남아공에서부터 북쪽 이집트까지 오른쪽 방향으로 10개국을 거쳐 가는 여정. 실제로는 탄자니아까지만 갔고 나머지 케냐, 에티오피아, 수단, 이집트는 포기했다. 갔던 나라는 모두 6개국으로 계획의 반 정도만 이룬 셈이다.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을 실컷 보고 순수한 현지인을 만날 거라는 기대는 무지에서 비롯된 순진함이었다. 야생동물은 지극히 제한적인 장소에서만 볼 수 있었고, 순수하기보다 무례한 사람들에게 지쳤다.
결국 우리는 친절한 미소가 보장된 태국의 방콕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이때부터 계획이라고 부르던 것을 미련 없이 던져버렸다. 그렇게 시작된 ‘막가파 여행’은 새로운 플랜 B였다. 계획대로 아프리카 종단은 하지 못했지만 마음이 가는 대로 다니는 자유를 얻었다. 나머지 아프리카 나라들 대신 선택한 네팔, 미얀마, 태국, 폴란드에서도 충분히 행복했으니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