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게 여행하기
안전한 여행을 위해서 내가 추구하는 원칙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20대 열혈 청년이라면 모를까, 무탈하게 여행을 마치려면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잘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또다시 떠나올 수 있다. 무리하면 후유증이 찾아온다.
나만의 속도로
해치워야 하는 임무처럼 전투적으로 여행을 대하지 말 것. 여행을 가면 ‘여길 또 언제 오겠어?’라는 마음으로 강행군을 하기 쉽다. 그러면 여행이 고행이 된다. 결혼식을 할 때 평생에 한 번뿐인 결혼인데 남부럽지 않게 하겠다고 무리하는 것과 같은 심리다. 아쉬움이 남으면 다음에 또 와야 하는 이유가 되니까 그것도 나쁘지 않다. 내 경우, 저질체력에 속하는 편이라 어차피 하루에 많은 곳을 둘러보지 못한다. 워낙 샛길로 빠지기를 좋아해서 여러 곳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지키지 못하기 일쑤다. 하루에 두 군데 정도가 나에게는 알맞다. 천천히 느리게, 그게 나의 여행법이다. 꼭 나 같은 여행을 하라는 건 아니다. 단지 남 눈치 보지 말고 자신만의 속도를 존중하라는 의미다.
숙소가 편안해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편안한 숙소가 필수조건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여행자가 인터넷으로 미리 숙소를 예약한다. 화면으로는 완벽하게 보여도 막상 숙소에 가 보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온수가 잘 안 나온다거나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다거나 등등. 이럴 때는 대책을 요구하거나 방을 바꿔달라고 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초보 여행자인 데다 영어까지 서투르다면, 요구해도 들어줄지 의문이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난감하다. 그래서 그냥 참기 십상이다. 언어가 부족하면 번역기를 쓰든지 손짓 발짓으로라도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 정말 이상한 숙소가 아닌 다음에야 웬만하면 손님의 정당한 요구는 받아들인다. 그러니 걱정 말고 일단은 문제 제기를 해보자. 화내거나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전달하면 된다.
그래도 소용이 없다면 두 가지 결론이 난다. 돈이 아까워 할 수 없이 참고 지낸다, 아니면 돈보다 여행이 아까워서 숙소를 옮긴다. 상황에 따라, 개인 성향에 따라 선택은 달라진다. 아들과 짠순이 세계여행을 할 때는 주로 전자였다. 요즘엔 나이도 더 들었고 체력이 부실한 만큼 후자를 택한다. 하다 하다 정 안 될 때 마지막 보루는 돈을 좀 더 쓰는 것이다. 중년의 여행자라면 돈보다 심신의 컨디션을 더 중요하게 챙기는 게 남는 장사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여행자보험은 반드시 들도록 하자. 국내 대부분의 보험사에서 판매하는 해외여행자보험은 최대 3개월까지만 보장한다. 기간이 그 이상이라면 해외 유학생보험으로 알아봐야 한다. 며칠 정도의 단기여행은 보장 내용이 비슷하므로 선호하는 것으로 들면 된다. 환전이나 카드 결제 시 공짜로 들어주는 보험은 보장 내용이 부실할 수도 있으니 꼼꼼히 따져보자. 단기여행은 보험에 큰돈이 들지 않으므로 기왕이면 보장이 잘 되는 상품이 낫다. 특히 태풍이 많은 8월이나 9월에 여행하는 경우에는 ‘여행불편 보상’이 되는 보험을 드는 게 안전하다. ‘여행불편 보상’이란 비행기 지연이나 결항, 수하물 지연 등을 보상해 주는 것이다. 나는 대만 여행 시 태풍으로 비행기가 결항될 뻔했던 일을 겪은 뒤로는 항상 여행불편 보상이 되는 보험을 선택한다.
저가항공을 이용할 때도 여행불편 보상이 되는 보험을 추천한다. 메이저 항공사들은 항공기 결항이나 지연이 발생하면 알아서 보상을 해주지만, 저가항공은 대부분 보상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여행불편 보상이 되는 보험사는 에이스 손해보험, 삼성화재 다이렉트가 있다.
인도네시아 여행 막바지. 에어아시아를 타고 발리에서 출발해 쿠알라룸푸르를 경유,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갑자기 경유지인 쿠알라룸푸르에서 비행기가 무려 4시간 30분이나 연착을 했다. 원래 출발 시간이 새벽 1시였는데 아침 5시 30분으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2시간 45분이었던 경유시간이 7시간 15분으로 늘어났다. 느닷없이 공항 노숙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안심을 한 이유는 바로 여행자보험 덕분이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비행 지연을 보상받을 수 있는 보험을 들어 놓았다. 불편한 공항 노숙 대신 공항 내 호텔에서 편안하게 몇 시간 자고 일어나 따뜻한 국수로 배를 채우고 비행기를 탔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보험사에 호텔비와 아침식사비를 청구해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었다.
기본을 지켜라
사고와 각종 위험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혼자, 늦은 밤, 한적한 골목길, 만취 상태는 피해야 할 네 가지 조합이다. 강도나 소매치기 사고를 가장 많이 당하는 부류는 ‘혼자서 밤늦게 돌아다니는 남자’ 혹은 ‘밤늦게 만취 상태로 돌아다니는 남자들’이다. 여자들은 워낙 알아서 조심을 하기 때문에 사고가 많지 않다. 나도 11년간의 여행 동안 심각한 사고는 거의 없었다. 다 기본을 지키는 덕분이라 생각한다. 또한 어느 도시를 가거나 위험하다고 알려진 동네가 한두 곳쯤은 있다. 간혹 객기로 이런 곳을 찾아갔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중2병 같은 허세는 한국에 내려놓고 가기를. 사람들이 가지 말라는 곳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소매치기와 가방 도난
비수기보다는 성수기에, 소도시보다는 대도시에서, 항공 이동보다는 육로로 국경을 통과할 때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여행자에게 가장 많이 일어나는 사고는 소매치기나 가방 도난이다. 전철 안,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같이 붐비는 곳에서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가방이 사라져 버린다. 흔히 선진국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여름방학 성수기 때의 파리나 바르셀로나, 로마는 소매치기 천국이다. 우리나라가 워낙 치안이 안전하기에 한국 여행자들은 소매치기에 대한 경각심이 적은 편이다. 이런 곳에서는 특히 뒤로 메는 보조 배낭을 반드시 앞으로 멘다. 들고 다니는 가방에 모두 자물쇠를 달아두면 어느 정도 소매치기 예방을 할 수 있다. 숙소에서는 로커에 소지품을 보관할 수 있게 좀 더 튼튼한 자물쇠를 따로 준비한다. 자물쇠 달린 와이어로 가방과 주변 고정물을 묶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 밖에도 새똥이나 케첩을 묻혀서 정신없게 만든 뒤 가방을 털어가는 것, 물건을 판다며 여러 명이 둘러싸는 것, 길을 묻거나 물건을 일부러 내 앞에 떨어뜨리거나 함께 사진을 찍자며 다가오는 등 수법은 가지가지다. 주로 일당 중 하나가 여행자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다른 사람이 가방을 낚아채 간다. 수상한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면 얼른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다.
사기수법 확인하고 갈게요~
여행지별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면 각종 사기 수법들이 나온다. 택시를 탔는데 잔돈이 없다며 거스름돈을 가로채는 귀여운(?) 속임수, 환전할 때나 물건을 구매할 때 고액권을 주었는데 소액권을 받았다고 우기는 것 등은 전통적인 사기에 속한다. 사복 경찰이라며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우, 터미널 등에서 돈이 없다고 차비를 빌려 달라는 사람도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다가와 친절하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현지인도 요주의 인물이다. 저런 한심한 수법에 당하나 싶겠지만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면 똑같이 당하기 쉽다. 요즘 횡행하는 사기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꼭 확인하고 떠나자. 미리 알고 있으면 아무래도 조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