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주도에 있을 동안 한 번 놀러 와" 말했더니

별로 안 옵니다

by 소율


"내가 제주도에 있을 동안 한 번 놀러 와."


가족은 물론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숙박권을 날렸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온 것은 아니니까(맞나)? 혼자이면서 굳이 방 2개짜리 집을 얻은 이유는 저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누구라도 오면 마음 놓고 쉬라고, 또한 나도 내 방에서 편안히 자려고. 행원리 내 집에 와본 사람들은 혼자 살기엔 과분하고들 한다. 서너 명의 가족이 살 만한 집이라고. 작은 방이 두 개이고 넓은 거실이 있다. 물론 한 가족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명색이 (오래된) 타운하우스라 작은 잔디밭이 집을 둘러싸고 (수도요금이 무서워 사용하지 못할) 개인 수영장(남들은 목욕탕인 줄 착각함)도 딸려 있다. 겉보기엔 그럴싸하다. 지난겨울 이사를 오던 날, 곰팡이로 뒤덮인 방과 작동하지 않는 보일러가 나를 반긴 것만 빼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한 뒤, 봄이 되자 제습기와 에어컨이 고장 난 것만 빼면.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쳐 고치긴 했다. 지금은 티브이가 소리만 나오고 화면이 새카맣다. 이것도 주인에게 수리를 요청했는데 아직 답이 없는 것만 빼면. 얼마 전엔 테라스의 썩은 나무판이 꺼져서 다리가 부러질 뻔한 것도 빼면. 다행히 허벅지 전체에 진한 보라색 멍만 들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속 사정이야 나의 몫이고. 의외로 지인들은 놀러 오지 않았다. 오미크론이 한창 유행했던 도중이라곤 해도 솔직히 뜻밖이었다. 겨울에 남편과 아들이 왔고, 이후에 언니가 왔다. 그게 전부였다. '제주도'라는 이름이 가진 로망 때문일까. 사람들의 마음속 '제주도'란 방문하는 장소가 아니라 여행하는 장소. 1박이나 2박은 성이 차질 않는다. 숙소는 해결되겠다, 기왕 가는 김에 최대한 길게 잡고 싶은 것이다. 문제는 그게 어렵다. 다들 바쁘니까.


물러갈 것 같지 않은 코로나가 드디어 잦아든 5월 말. 친구 두 명이 오기로 했다. 통 크게도 4박 5일이란다. 2년이 넘도록 못 한 여행이라 오래 즐기고 싶었으리라. 난 많이 놀랐다. 초대는 했지만 당연히 하루나 이틀 정도, 봉사할 생각이었다. 내 일도 해야 하고 나름 생활이 있으므로. 그렇다고 그들이 무례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서로가 생각하는 기준이 달랐을 뿐. 아마 나를 그만큼 편하게 여겼나 보다. 평소 친구 1에게 소소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친구 2가 자카르타에 살 때 나도 며칠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여행 중 하도 들르라고 성화를 해서 간 거였지만) 어쨌든 이번엔 내가 신세를 갚을 차례였다.


나는 미리 통고했다. 이틀은 데리고 다닐 수 있지만 나머지는 둘이서 다니라고. 시골이라 버스가 불편하다, 택시를 이용하라고. 두 친구는 알아서 할 테니 걱정을 붙들어 매시란다. 오랜만에 손님을 맞을 생각에 나도 들떴다. 집을 청소하고 이불을 빨아 말리고 장을 보았다.


첫날 저녁 세화 읍내에서 반갑게 친구들을 만났다. 그 후 하루는 백약이 오름과 다랑쉬 오름, 김녕 바다를 안내했다. 이곳 구좌읍 동쪽 마을은 오름의 고장이잖우? 다음 날은 사려니 오름에 오를 수 있는 한남시험림에 갔다. 일정한 기간에만 예약해서 갈 수 있는 숲이다. 한마디로 좀 귀한 곳? 서귀포시 남원읍이라 왕복 운전이 부담스럽지만. 친구들에게 멋진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다 좋았다. 혼자서 살다가 여럿이 수다 떨며 노는 것이 새삼 즐거웠다. 그런데 세 번째 날, 사건이 터졌다. 아침에 친구들이 섭지코지를 가겠다고 집을 나섰다.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 1이 뒤로 세게 넘어졌단다. 친구 2는 CT를 찍을 수 있는 가까운 병원을 물었다. 이게 뭔 일이래??? 이보시오들, 제주 시내가 아니면 큰 병원이 없소이다. 여긴 수도권이 아닙니다. 게다가 하필 일요일!


나는 무조건 택시를 타고 제주대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슬기롭게 119를 불렀으나 제주대병원은 응급실이 꽉 찼다. 다시 한라병원으로 옮겨 CT를 찍었다네. 결과는 이상 무. 휴, 진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마 몸이 약한 친구 1이 무리가 되었던 모양이다. 이틀 동안 오름 세 개를 오르고 많이도 걸었다.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진 줄을 본인도 우리도 몰랐다.


오후 네 시쯤 진이 빠진 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왔다. 자빠진 것쯤이야 웃고 넘길 수도 있는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전에 머리를 크게 수술한 경험이 있어서 더욱 겁이 났을 것이다. 애들도 아니고 다 큰, 아니 나이 먹은 아줌마 두 명을 밖에 내놓기가 무섭네. 결국 다음날은 내가 두 분을 차로 모셨다. 막날이라 쇼핑이 빠질 수 없었다. 어제의 사고는 잊은 듯 두 사람은 세화오일장에서 신이 났다. 햇고사리, 완두콩, 갈치, 귤 등을 샀고 2차로 하나로마트에서 선물용 제주 과자를 골랐다.


돌아가는 날 아침, 제주공항 행 급행 버스가 서는 김녕에 친구들을 내려주었다. 길고 즐겁고 탈도 났던 방문이 끝났다. 둘은 무사히 귀가했다. 제주도로 이주를 하면 한 3년은 손님을 맞느라 정신없다고 한다. 나야 완전한 이주가 아닌 한시적 1년짜리. 오히려 예상보다 지인 방문은 적었다. 코로나 탓인지 덕분인지. 그래도 누가 온다는 것은 꽤나 손이 가고 마음이 쓰이는 일이다. 나는 딱 이틀이 한계인 것 같다. 하루면 젤 좋고 이틀까진 괜찮다. 그 이상은 애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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