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려고 엉덩이를 들썩이다 말았다

가긴 어딜 가

by 소율


제주시에 사는 사람들은 구좌읍은 알아도 행원리는 모른다. 곶자왈사람들의 숲길 걷기 모임의 도민 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행원리???" 얼굴에 커다란 물음표를 달고 눈동자가 위로 향한다. 머릿속 지도를 뒤적이는 표정. 내가 일 년 살이를 하는 이곳은 제주 시골 중에서도 지극히 존재감이 약한, 말하자면 이름 없는 깡촌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왔지만.




지도에서 보면 월정리와 한동리의 가운데 애매한 지역이다. 일주 동로를 사이에 두고 바다 쪽 3분의 1 정도와 내륙 쪽 3분의 2 정도를 합한 구역. 현지인이 모여 사는 '진짜 마을'은 일주 동로 건너편 바닷가에 붙어있다. 내가 있는 곳은 사실 동네라 칭하기엔 무리가 있다. 임야 한가운데 덜컥 자리한 오래된 타운하우스이므로.


타운하우스라는 단어도 이전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전원에 위치한 일종의 별장 같은 개념이라 보면 된다. 관광객이 아닌 현실 도민들이 살기엔 비싸고 불편한 집. 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세컨드 하우스로 이용한다. 나는 그저 이 집의 뻥 뚫린 거실과 부엌에 반했다. 매물이 거의 없어 제대로 비교할 집조차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만. 직사각형으로 쭉 뻗은 한가운데 넓은 공간이 맘에 쏙 들었다. 그동안 여러 번 토로했던 많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만은 참 좋다.


어느덧 6개월을 이 집에서 보냈다. 걷기 모임의 리얼 도민들을 통해 사정을 파악했다.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제주 시내에서 산다는 걸. 간단한 이치였다. 시골은 모든 면에서 불편하니까. 부득이 시내가 아니라면 읍내를 선호한다. 그나마 도시 시설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라산이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제주도는 동서나 남북으로 이동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팔랑귀 스타일은 아닌데 요즘 자꾸 귀가 펄럭거렸다. 도민 분들이 시내로 나오라고 부추겼다. 남은 6개월은 '승계'를 하면 된단다. 이것도 제주도에만 있는 문화 같았다. 내가 직접 나머지 연세 기간에 들어올 사람을 찾거나 공인중개사를 통해 세입자를 들이는 것이다. 매우 흔한 일로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걷기 모임에서 내가 집이 가장 멀다. 따라서 모임 장소까지 가는데 운전 시간이 가장 길다. 집주인의 갑질도 한몫했고요. 그동안 서쪽이나 서남쪽을 거의 가지 않았다. 버스를 이용하면 두세 시간, 내 차로 가면 편도 1시간 30분이 걸린다. 어딘가를 걷거나 방문하는 주요 목적을 제외해도 왕복 3시간 운전이 계산된다. 10년 이상 운전을 해온 베테랑도 아닌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피곤함이었다.


동쪽에서 오래 살았으니 서쪽으로 가볼까? 아예 시내로 들어갈까? 모임의 회원들은 제주 시내를 강력하게 권했다. 생활하고 이동하기엔 시내가 최적의 조건이란다. 구 제주, 신제주를 이야기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나는 모른다오. 비행기 소음 없는 한적한 동네로 이도이동과 아라동을 추천받았다. 나는 2주 전부터 오일장 닷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시내라면 대부분 원룸이다. 원룸에선 예전에 보름 동안 지내보았다.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다. 무조건 탈락.


나는 방과 거실이 분리된 1.5룸을 찾았다. 두 개를 물망에 올렸다. 드디어 방을 보러 가는 날. 시내는 난개발 한 서울의 귀퉁이 같았다.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집 1은 전용 주차장을 갖춘 새 빌라였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다. 좁은 골목에 잔뜩 주차된 차들. 매일 그 사이를 묘기하듯 지나가야 하겠지. 내가 남의 차를 긁거나 남이 내 차를 긁거나, 아님 둘 다 당첨될 확률이 높았다.


깨끗한 복층 구조에 풀옵션. 엘리베이터도 있고 괜찮다. 그런데 좁다 좁아.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다락방 구조인 위층. 천장이 낮아서 쓸모가 없어 보였다. 더구나 깜짝 놀랐던 건 여기도 LPG 가스란다! 아니 시내는 다 도시가스가 아니었어? 대단지 아파트나 오피스텔이 아니면 대부분 LPG 가스를 쓴다고. 음, 매력이 반감되었다.


집 2는 멀쩡한 겉모습에 비해 내부가 허름했다. 작은 붙박이장이 있는 방이 어찌나 작은지. 과연 싱글 침대를 놓을 수 있을까? 공인중개사 말로는 다 들어간단다. 이전 세입자도 침대 놓고 잘 썼단다. 거실 겸 주방에 책상을 놓아야 하는데 어디다 놓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창밖은 다른 집으로 막혔다.



나는 두 개를 모두 퇴짜 놓고 돌아왔다. 새삼 지금 집이 얼마나 넓은지, 어찌나 조용한지! 집의 전면과 측면에 총 차 두 대를 넉넉하게 댈 수 있다. 종일 새소리 들리고 거실 앞 커다란 후박나무가 든든하게 지켜준다. 단층이라 층간 소음 걱정도 없다. 곶자왈 동백동산과 오름이 모여있는 송당리도 가깝다. 가긴 어딜 가.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을 찾을 수 있을까? 답은 명확했다. 노우. 코로나가 물러가는 중이라 연세가 더 올랐다. 즉 이사를 가는 게 결국 손해다.


사실 이 집의 가장 큰 단점은 제주 시내와 멀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두 번 공항에 갈 일이 꼭 생기는데 여간 불편하지 않다. 최근엔 공항 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가 없다. 대안은 시간 맞춰 급행버스를 타는 수밖에. 급행버스가 서는 김녕까지 또 차를 몰고 나가야 해서 꽤나 번거롭다. 공항까지 합이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두 번째 단점은 생활 시설이 세화리 읍내에 몰려 있다는 것. 하나로마켓이나 오일장, 다이소를 가려면 세화까지 차로 15분을 가야 한다. 이건 익숙해져서 크게 불편하진 않지만.


내 마음은 이미 단점보다 장점에 기울었다. 단점을 감수하더라도 장점이 더 나으니까. 비정상적으로 오른 연세가 내려가고 선택지가 많아진다면, 전원 생활을 누리면서 공항도 가까운 완벽한 집을 찾고 싶다. 아마도 내년 이후나 그리 될까? 두 번째 제주살이가 가능할까?


어쨌거나 결론. 들썩이던 엉덩이를 나는 조용히 내려놓았다. 6월의 한가운데, 장마 직전이다. 습도가 80퍼센트를 육박한다. 종일 방 두 개를 번갈아 제습기를 돌린다. 거칠었던 겨울에 이어 두 번째 힘든 계절, 여름이 다가왔다. 설마 겨울보단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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