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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Aug 29. 2022

계절은 깜빡이 없이 훅 치고 들어온다, 동백동산

6월에서 7월, 8월까지 먼물깍


6월의 먼물깍


장마철 초반 6월에 두어 번 동백동산에 갔다. 습해도 너무 습했다. 당연한 것이 동백동산은 습지이므로, 다른 곶자왈보다 더욱 습할 수밖에 없긴 하다. 곶자왈은 나무가 빽빽해 기본적으로 바람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또한 지반과 숲이 습기를 머금고 있다. 대신 겨울에 가면 따스하게 느껴진다.


7월의 먼물깍


한동안 가지 않다가 7월 말에 걸어보았다. 장마철이 끝났기에 훨씬 나았다. 6월이 습도 10 중 9 정도에 해당한다면 6 정도. 나름 많이 건조해졌다. 숲 바깥과 달리 바람이 불지 않는 건 여전했지만. 문제는 바람보다 모기였다. 내내 얼굴 주위에서 윙윙거리는 모기들 때문에 짜증이 났다. 모자를 벗어 휘휘 내저으며 걸었다.


반환점 먼물깍 습지. 여기가 절반 지점. 계속 가면 트레일을 한 바퀴 돌아 원점(습지센터)으로 되돌아온다. 선흘리 마을 길을 지난 후 나머지 부분은 숲길이 더욱 좁아지고 무성해진다. 겨울부터 동백동산을 자주 드나들던 나는 꾀를 부렸다. 먼물깍에서 곧장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이러면 상대적으로 넓은 그늘 길만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먼물깍은 전성기였다. 마치 벼처럼 보이는 올방개가 삐죽삐죽 솟았고 작은 연잎같이 생긴 순채가 연못을 가득 메웠다. 해가 쨍쨍 내리쬐어 더웠지만 사진은 예쁘게 나왔다. 저녁 5시가 가까웠다. 그늘이 진하게 생겨서 그림자놀이를 했다. 어딜 가나 혼자 놀기 시전은 필수. 돌아오는 길에도 어찌나 모기가 달라붙던지. 한여름 동백동산의 방해꾼은 끈질긴 모기들. 몇 방을 물리고 말았다. 약간의 피를 통행세로 내야만 걸을 수 있는 여름의 동백동산이여.


8월 28일, 오늘 아침 8시 15분. 동백동산에 도착한 시각이다. 날은 흐리고 기온은 24도. 요즘 하루가 다르게 날이 시원해지고 있다. 여름과 가을 사이의 간절기 따위는 없는 것 같다. 마치 징검다리 건너듯 여름에서 가을로 퐁당 넘어간 느낌이랄까. 오늘 아침엔 거실이 너무 썰렁해서 얇은 카디건을 걸쳤을 정도였다. 육지 출신이 겪는 섬의 계절은 정말 예측불가일세.


동백동산 입구에 설 때마다 '여기부터는 특별구역입니다'라고 (곶자왈이) 말하는 듯하다. 밖은 밝아도 안쪽을 들여다보면 어두운 공간이 펼쳐진다.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오늘 같이 흐린 날은 강도가 더하다.



먼물깍까지 아직 멀었다. 동백동산에서 제일 잘 생긴 나무가 저기 있다. 위로 뻗은 가지들과 땅에 붙은 뿌리가 멋지다. 구실잣밤 나무다. 그 옆을 파란 옷을 입은 남자가 지나간다.



나무들의 뿌리가 세로로 섰는가 하면 울근불근 얽혔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나는 항상 뿌리들이 대견하고 신기하다. 넓적하게 솟은 걸 판근이라 한다. 나무가 쓰러지지 않게 선 뿌리로 받치는 것이다. 어떡하든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내려는 안간힘이 대단하면서도 안쓰럽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생존은 절실한 법이다.



내가 감상하기 좋아하는 또 하나의 풍경. 이번엔 고개를 공중으로 쳐들어야 들어야 한다. 하늘을 떠받들 듯 여러 개의 가지가 올라간 나무들. 나뭇잎을 무시하고 가지만 쳐다보라. 가지들의 춤이 더 다가온다.


8월의 먼물깍


중간 지점인 먼물깍에 도착했다. 7월의 올방개와 순채는 아무것도 아니다. 8월 말, 연못을 완전히 뒤덮었다. 지난겨울엔 저 올방개가 황금빛으로 물들어 아름다웠다. 아니 11월쯤부터 누런 색이 되겠구나. 일 년 살이의 장점이 봄여름 가을 겨울의 모습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


온도는 아직 25도. 바람이 많이 불진 않는다. 이마와 콧잔등에 땀이 맺힌다. 흐리고 시원한 날에도 땀은 나는군. 10월이 되어야 땀으로부터 해방될까? 하긴 11월에도 어떤 날은 여름처럼 더웠다. 제주의 날씨는 며느리도 모를 천방지축인 것을.


동백동산 안에서 밖으로


나는 나머지 절반을 마저 걸을까 하다가 먼물깍에서 되돌아왔다. 한 바퀴를 도나, 중간에서 돌아오나 시간은 똑같이 걸린다. 선흘리 마을 끝을 지나는 절반의 트레일은 숲이 더 우거졌다.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하지만 아직은 8월. 진드기가 무서워 쉬운 길을 택했다. 다음에 이곳에 올 땐 루트대로 원을 돌아야지.


참참, 지금도 모기 천국이다. 나는 두 팔을 휘휘 저으며 걸었다. 이번에도 헌혈을 하고야 말았다. 7월보다 오히려 많아진 것 같다. 어쩐지 파란 옷의 남자는 한 손에 잎사귀가 달린 나뭇가지를 휘둘고 다니더라. (그냥 막 꺽은 건가요?) 처서도 지났는데 모기들 입은 안 비뚤어지나? 동백동산에선 모기 조심하세요!


1주일 전부터 운전할 때 창문을 모두 열고 달린다. 머리가 헝클어지지만 바람이 몰아치는 느낌이 상쾌하기 그지없다. 에어컨보다 백 배는 더 기분이 좋아진다. 제주의 계절은 깜빡이 없이 훅 치고 들어온다. 2월 말에도 하루아침에 갑자기 따뜻해져서 깜짝 놀랐었다. 그렇게 덥던 여름 역시 한순간에 서늘해졌다.


제주에선 그저 철을 따라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육지의 도시에선 전혀 몰랐던 자연의 힘에 끌려다닌다. 온도에 바람에 비에 민감해지는 동물적인 인간이 되어 버린다. 우리도 동물이 확실한데 마치 동물이 아닌 것처럼 살아왔다. 유전자에 숨어있던 동물로서의 감각이 살아나는 곳, 그게 제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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