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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율 Oct 18. 2022

비밀의 숲 말고 진짜 '안돌 오름'에 가보셨나요?

사진 말고 마음에 남기시길

이틀 전 밧돌 오름에 이어 오늘은 안돌 오름에 가는 날이다. 밧돌과 안돌은 쌍둥이처럼 붙어 있어 한 날 같이 가는 게 제일 좋다. 현재는 두 오름을 잇는 경계선이 출입 금지가 되었다. 그래서 두 오름을 지척에 두고도 각각 다른 입구로 들어가야 한다.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귀찮다.


7월에 안돌 오름에 갔을 때. 걷다 보니 내려가는 방향이 자연스레 밧돌 오름으로 연결되더라고. 일부러 찾지 않아도 길이 그쪽으로 나있었다. 나무 울타리만 넘으면 밧돌 오름. 쉬운 길을 무시하기엔 유혹이 강렬했다. 나는 모르는 척 울타리를 넘었다. 솔직히 조금 양심이 찔렸다.


사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안돌 오름에서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 자체를 막아야 한다. 뻔히 나있는 길을 못 본 척 발길을 돌리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당연하게 길 따라 걷게 되니까. 고양이에게 생선을 내어주고 먹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번엔 착한 모범생이 되기로 했다.


안돌 오름이 나름 유명하지만 실제로 오름을 올라가는 여행자는 매우 드물다. 오름 앞에 '비밀의 숲'이라는 관광지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곳을 방문한다. 사진 찍기 좋은 편백나무 숲이다. 이른바 인스타 성지. 네이버 검색창에 안돌 오름을 치면 비밀의 숲이 한 쌍으로 따라온다. 아마 안돌 오름에 가봤다고 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이 비밀의 숲을 말하는 것이리라.



나는 비밀의 숲을 지나 직진했다. 비포장길이라 타이어가 염려스러웠다. 농업용 도로라는 플래카드가 보이면 오름의 입구. 밧돌 오름과 마찬가지로 조그만 안내판이 서있다. 들어가는 나무 울타리 주변의 풀들이 깨끗하게 정리된 모습이었다. 밧돌보다는 안돌이 유명하니까 조금 더 관리에 신경을 쓴 걸까.



들어서자마자 꽃처럼 둥그렇게 핀 수크령이 방문객을 맞이했다. 탐스럽게도 피었다. 오른쪽 그물 너머엔 밭이었다. 곧이어 작은 삼나무 숲이 나타났다. 여기서부터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오솔길 양쪽엔 수크령과 억새가 가득했다. 3일 연속 오름에 오르자니 허벅지가 비명을 질렀다. 내일은 하루 쉬어야겠다.



여긴 아직도 푸른 억새들이 남아 있었다. 다른 오름들보다 지대가 낮은 걸까. 누렇게 활짝 핀 억새를 손바닥으로 만졌다. 부드러운 노란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고 사이사이에 하얀 털이 수북했다. 덜 핀 것들은 붉은빛을 띠었다. 손가락으로 살살 훑었다. 보송하고 푹신했다.


올라가면서 한 번씩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오름의 재미는 바로 이 맛이다. 그저 열심히 직진만 하지 말고 자주 뒤를 돌아보는 것. 앞만 보고 가는 건 오름을 절반만 즐기는 것이라고 장담한다. 높다고 무조건 모든 게 잘 보이는 게 아니다. 각 높이에서 볼 수 있는 경치가 다 다르니까.


오름을 오르는 길은 직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부러지는 데다 가끔 장애물이 시야를 가린다. 지금처럼 솔숲이 양옆에 빼곡하면 뒤도 옆도 안 보이기 일쑤. 이제 오르막 끝인가 싶더니 다시 억새 오르막이 나타났다. 정상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능선 길. 억새는 누웠고 하늘은 점점 흐려졌다.



오른쪽에 갈아놓은 밭과 그 너머 오름들 사이에 작은 상록수 숲이 내려다보였다. 드디어 맞은편에 밧돌 오름이 솟았다. 여기가 정상이겠구나. 이쪽부터 바람이 거세졌다. 바람을 마음껏 맞아도 춥지 않은 이 날씨, 딱 좋다!


안돌 오름에서 바라본 밧돌 오름


아래로 예쁘게도 뻗어 있는 저 길. '이제 밧돌로 건너갈 차례야!'라며 부르는 듯했다. 그러나 여름처럼 밧돌 오름을 침범(?) 할 생각이 아니라면 내려갈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려간 이유는 책에서 본 둘레길 때문이었다.


1. 추천 코스: 입구 - 안돌오름 정상 - 입구 순으로 트레킹

2. 난이도 높은 와일드 코스: 입구 - 안돌오름 정상 - 밧돌 오름 경계지역 - 안돌오름 둘레길 - 입구 순으로 트레킹



안돌오름 아래는 너른 풀밭이었다. 마치 잔디밭을 다듬듯 깨끗이 깎아놓았다. 풀밭을 걸을 때만 해도 왜 이 평지가 왜 와일드 코스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풀밭을 지나 이어지는 일명 둘레길은 온통 가시덤불과 억센 풀이 발목을 잡았다. 한여름처럼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길 비슷한 흔적만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난이도 높은 와일드 코스'가 맞았다. 15~20분이 걸린다는 둘레길을 도저히 뚫고 갈 수 없었다. 나는 재빨리 포기했다. 으, 안돌 오름으로 돌아가야겠다. 아까는 내리막이었지만 돌아갈 땐 오르막으로 변신하는 길. 그래도 보이지 않는 풀숲보다 오르막이 훨씬 쉽다고 인정한다.


뻣뻣한 다리를 두드리며 간신히 올라갔다. 오름에서 헛짓을 하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이젠 나에게 새삼 놀랍지도 않았다. 안돌 오름과 밧돌 오름을 따로 오르기 성공. 그래서 모범생 노릇도 성공.


'비밀의 숲'에 오시는 분들께 부탁을 드리자면. 기왕 오신 거, 코앞의 '안돌 오름'까지 올라 보세요. 인스타용 사진도 좋지만 진짜 오름, 안돌오름에 오르는 맛도 경험하시길 강추합니다. 사진보다 마음에 남는 시간이 될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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