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수 있는 용기
딱 일곱심히만 살아야겠다고
요즈음 내 마음속에 맴도는 말은 '포기'라는 단어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만 필요하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있듯이 포기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우리는 이런 말을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 나 역시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을 때는 어쩐지 패배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하기 싫은 일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포기하고도 별로 죄책감이 들진 않았지만. 문제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고 할 수도 있는 일인데 포기를 해야 하는 경우다.
올해 나는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다. 1월의 필리핀 여행이 그 첫 번째였고 그 뒤로 차근차근 새로운 일들을 벌이려는 찰나였다. 비록 유방암 환자지만 중요한 병원 치료는 이미 끝났고 항호르몬제를 3년가량 먹고 있는 중이었다. 암(혹은 다른 엄청난)이라는 병에 걸리면 누구든 지난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어떻게 살았기에 이런 병이 내게로 왔을까? 무엇이 문제였나? 먹는 것? 운동? 스트레스? 과로?
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밖에는 이유가 없었다. 원인을 아니 답은 쉬웠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혀 오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오직 내가 하고 싶은 일들만 하면서 살리라 마음먹었다. 중병환자가 되니 오히려 그 모든 것이 쉬웠다. 가족들도 주변 사람들도 나의 변화를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죽음의 영역에 한 발을 넣고 있는 환자에게 모질게 굴 수는 없었을 테니. 나의 병은 양날의 검처럼 나의 적이자 동지였다. 그동안 내가 진정 원하는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후회가 컸다. 흘려버린 아까운 시간들... 모두들 백세시대를 외치지만 정작 '내겐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자각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3종 세트라는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겨우 6개월이 지났을 뿐인데 나는 책 쓰기 강좌를 찾아갔다. 6개월간의 세계여행에 대한 원고를 썼고 운이 좋아 출간이 되었다. 다음엔 영어 공부가 하고 싶었다. 앞으로의 여행에 가장 필요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학원에 온라인 강의에 열심히 했고 어학연수도 두 달 갔다 왔다. 그리고 18일간의 필리핀 여행까지 다녀왔다.
이 모든 것을 하는 동안 몸에 여러 번 무리가 왔다. 이석증이 몇 번 왔었고 영어학원 두 달 다니다가 체력이 완전 방전되어 도저히 더 이상 다닐 수가 없었다. 어학연수 도중 다시 이석증이 도지고 어지러워서 2주일이나 당겨 돌아오고야 말았다. 필리핀 여행 이후엔 한 달 넘게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다. 왜 이렇게 모든 일에 지나치게 열심이었을까? 날마다 열심히 말고 아홉심히만 살자고 다짐하건만 나는 자꾸 무리를 하고 있었다. 사실 무리일 줄 몰랐다가 하고 나면 무리가 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내 몸 상태를 잘 몰랐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니 괜찮겠지 라는 안일한 낙관주의자였을 뿐.
아마 보상심리가 컸을 것이다. 발병 전까지 약 15년 간을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살았다는 후회, 남에겐 백세시대일지 몰라도 내게는 내일이 없을지 모른다는 조바심, 그동안 못 했던 많은 것들을 모두 해보고 싶다는 욕심, 죽기 전에 무언가 이뤄놓고 싶다는 소망. 그러나 하고 싶은 일들만 한다고 해서 몸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마음은 천리길을 달리는데 몸은 이제 겨우 몇 발자국을 떼고 있는 형국이었다. 의욕이 넘치는 새파랗게 젊은 기수가 병들어 늙은 말을 타고 있다고나 할까. 그는 달리기 전에 말부터 돌보아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반대로 병든 말의 모든 기운을 짜내어 어떻게든 달려왔던 것이다.
이런 내달림을 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정말 대단하세요, 멋져요, 파이팅!" 단 한 사람도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닐까요? 좀 멈추어 쉬는 건 어떨까요?"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우리들은 그만큼 '열심히'라는 신화에 목매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열심히 하는 게 물론 나쁜 건 아니지만 때에 따라서는 사람에 따라서는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임을. 나는 그런 격려의 말들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겠지. 이미 아홉심히만 살자고 마음먹었지만 열심히에 중독된 마음과 몸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한의사가 그러더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 무리를 하게 되면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몸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고. 더구나 큰 병을 가진 사람이 아니냐고. 내려놓고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가시란다. 벡 번 옳은 말. 무조건 끄덕끄덕 하고 왔다.
한의원에서 보는 내 몸의 상태는 이렇다. 원래 약한 위장을 타고났는데 그걸 치료하지 않고 놔두고 살았다, 거기에 오랜 시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유방암으로 발전했다(한의학적으로 위장과 유방은 연결되어 있단다), 그런 몸을 잘 돌보지 않고 (여행, 어학연수, 책 쓰기 등등으로) 과로를 많이 했다. 그러므로 암을 유발한 예전의 환경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것과 과로를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단다.
내겐 좀 그런 성질이 있는 것 같다. 한 번 무슨 일에 꽂히면 쉬지 않고 지칠 때까지 달린다. 대신 한 번에 두 가지 일은 못 한다. 더구나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심리가 하늘을 찔렀으니 오죽했을까? 나는 요즘 천천히 가는 법을 익히고 있다. 그리고 포기하는 법도 같이. 나 같은, 좋아하는 일에 미쳐서 몸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사람은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올해 세웠던 멋진 계획들 - 여러 가지 공부, 여행, 새로운 시도...- 을 거의 다 포기해야만 한다. 실은 포기하기가 미치게 싫다. 다 하고 싶다.
포기해야 할 일을 포기할 줄 아는 건 커다란 용기다.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것만큼이나 똑같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할 지도, 적어도 내게는.
요즘 나의 생활은 얼마나 단순한지 거의 지루할 지경이다.
아침 먹고 1시간쯤 산길을 걷는다. 그 길로 헬스클럽으로 내려가 근력운동을 조금 하고 샤워하고 돌아온다.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다시 40분쯤 동네를 걷는다(날씨가 추울 때는 집안에서 걷는다). 중간에 이런저런 집안일을 한다. 그러고 나서 한의원에 가 침을 맡는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왔다 갔다 하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 또 침 맡는 시간을 합하면 거의 2시간이 걸린다(동네 걸을 때와 한의원에서 기다릴 때는 시원스쿨을 듣는다). 돌아오면 무려 4시! 이쯤 되면 이미 피곤하다. 1시간쯤 누워 있거나 책을 읽으며 쉰다. 저녁 준비를 간단히 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 또 30분쯤 집안을 걷거나 화상영어 준비를 한다. 7시~8시 화상영어 수업. 소화가 안 되니 서서 한다. 이 시간에는 몹시 피곤하다. 컴퓨터 켠 김에 잠깐 내 블로그 들어가서 이런저런 것 체크하다 보면 남편이 돌아온다. 같이 조금 얘기를 나누다가 10시가 되면 잔다.
이 모든 걸 줄이면 '먹고 걷고 한의원 갔다 온다.' 이 한 문장이 되시겠다. 하루 종일 걷거나 서있기 때문에 오후가 되면 다리 꽤나 아프다. 인터넷을 보거나 글을 쓰기는 매우 어렵다. 괜찮았다가도 의자에 앉아서 무얼 하면 위장이 바로 안 좋아지니까.
몸은 대각선 방향으로 나아지지 않고 계단식으로 나아지는 것 같다. 조금 나은 것 같다가도 정체상 태거나 다시 나빠지는 듯도 싶다. 그러다 다시 조금 좋아진다. 감질난다, 에효. 한약까지 같이 먹고 있으니 차차 나아지겠지. 두 달째 못 먹고 집에만 있다 보니 우울감이 찾아왔다. 잠깐씩 친구들을 만날 때면 잠시 기분이 좋았다가도 작은 일에 다시 내리막길을 걷는다. 여기서 더 심해지면 우울증이 오겠구나 싶다. 3종 세트 치료를 받을 때도 우울증 없이 즐겁게 치료를 끝냈는데 이런 복병을 만날 줄이야! 아마 맘대로 하고픈 일하다가 멈추어야만 하니 더욱 그런 것 같다.
포기하는 법도 배우라는 섭리일까? 아직은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겠다. 이러다가도 몸만 조금 좋아지면 다시 이런저런 일을 추진할 내가 보인다. 그러면 안 되지.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돌부리를 걸림돌로 볼 게 아니라 고마운 죽비로 받아들여야겠지. 이렇게 한 번씩 걸려 넘어져야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거겠지.
요즘 나는 이런 기도를 한다.
"포기해야 할 일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다시 다짐한다,
열심히도 말고 아홉심히도 말고 딱 일곱심히만 살아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