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놀바덱스(타목시펜)를 먹은 지 3년 5개월째.
놀바덱스는 항호르몬제로 재발률을 낮춰주는 유방암 치료약이다. 보통 5년을 먹는다(2019년 현재 10년을 처방하는 추세란다, 허걱). 과연 치료약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수많은 부작용을 일으키긴 하지만. 적어도 내겐 그렇다. 이 약을 먹자마자 찾아온 첫 번째 부작용은 지독한 불면증. 할 수 없이 수면을 유도하는 진정제를 처방받아먹었다.
3년째 되는 작년부터는 골다공증이 찾아왔다. 두 번째 부작용이다. 역시 병원에서는 골다공증 약을 주더라. 거기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졌다. 세 번째 부작용. 이건 아직 약을 먹지는 않지만 의사는 이 수치가 계속되면 또 약을 주겠단다.
에헤라 올해 초부터는 소화가 안된다. 그냥 가벼운 소화불량이 아니라 매우 심각한 위장장애. 3년 넘게 이런저런 약들을 먹다 보니 원래도 약한 위장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5개월을 넘게 한약 먹고 침 맞고 운동하고 해도 차도가 없었다. 한의원을 바꿔 체질에 맞는 약을 먹으니 약간 나아졌다. 지금도 무언가를 먹고 나면 1시간 정도는 걸어줘야 조금 편안해진다. 그리고 새 모이만큼 적게 먹어야 겨우 소화가 된다. 음식을 맘껏 먹는 꿈을 자주 꿀 정도로 먹고 싶은데 못 먹고 산다. 잠 못 자는 괴로움에 못 먹는 괴로움까지 겹치니 정말 사람 미치겠다.
이쯤 되니 나도 심각하게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놈의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 걸까??? 다음엔 또 어떤 부작용이 튀어나오려나? 이렇게 몸을 망가뜨려 가며 과연 5년을 채워야 하는 걸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 끊고 싶은데 대안이 없으니.
병원 치료라는 게 믿음이 안 간다. 놀바덱스가 재발률을 낮춰 준다지만 세트로 딸려오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그냥 이 증상이 나오면 이 약으로 막고 저 증상이 나오면 저 약으로 막고... 부작용으로 인한 약들이 점점 늘어가고 그로 인한 소화장애는 더욱 심각해지고 악순환의 반복, 하나 의사들은 외눈 하나 깜빡 안 한다. 지난주 병원 가서 소화가 안돼서 고생한다고 했더니 그럼 소화제를 처방해 주겠단다. 누군 소화제 먹을 줄 몰라서 이러나? 그리고 소화제 정도로 해결될 일 같으면 말도 안 하지. 저런 의사 노릇이라면 나라도 하겄네.
해서 일주일을 넘게 고심을 했다. 남편과도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했다. 놀바덱스, 이 녀석을 그냥 이쯤에서 끊어 버릴까. 혹시라도 나중에 안 좋은 일 생기면 감수할 수 있을까? 괜히 5년 채우지 않아서 이런 일 생겼다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편으로 약을 안 먹는 세상을 상상하니 그보다 좋을 순 없을 것 같았다. 항호르몬제도 골다공증 약도 진정제도 한약도 안 먹는 세상. 그게 천국일 것 같았다. 약 없이도 잠들고 약 없이도 소화 잘 되는 꿈같은 세상. 그 유혹이 얼마나 달콤한지 거의 결심을 할 뻔했다.
그래, 이쯤에서 이 넘의 놀바덱스, 고만 던져 버리자. 이후에 재발이 되더라도 그건 운명이겄지. 5년 안 채웠다고 다 재발되는 건 아니잖아, 어디까지나 프로테이지일 뿐, 누가 알겠어.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5년 채워야 하는데, 가슴으로는 정말 이쯤에서 그만하고 싶었다. 사실 5년 채운다고 재발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단지 확률이 낮아지는 것이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확률게임. 거의 99%쯤 결단을 내리고 저녁 시간을 맞았다. 늘 식탁 위에 놓여있는 놀바덱스. 저 약을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데 내 손이 다시 약을 집어 들더니 결국 입 안으로 넣는다.
그리고 그제 밤에 이어 어젯밤도 잠을 못 잤다. 약을 먹었음에도 새벽 4시까지 잠들지 않는 내 몸. 약을 먹어도 종종 잠이 안 드는 날들이 있다. 뭐 별다른 이유도 없이 말이다. 그동안 잠자는 약을 줄여 보려고 애를 썼지만 여전히 못 줄이는 이유가 이것이다.
아침에 잠깐 선잠을 자다 깨다 겨우 일어났다. 거실에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니 하늘은 어찌 그리 파란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는 시구가 절로 떠오른다. 요가를 가야 하는데 이러 날은 실내에서 요가를 하기 싫어진다. 나는 요가 대신 걸어서 40분 걸리는 약국엘 갔다. 3개월치의 놀바덱스를 사러 말이다. 에라, 잠자는 약도 못 줄이겠고 놀바덱스도 못 끊겠고 나는 그저 파란 하늘이나 실컷 보고 싶었다. 약봉지를 들고 근처 벤치에 앉았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니 어찌나 아름다운지. 살랑살랑 부는 바람도 사랑스럽다. 참 좋은 계절이다.
2.
결국 나는 놀바덱스를 끊어 버렸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도 더 이상은 정말 먹고 싶지 않았다. 아니 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라 해야지. 특히 올 한 해 너무 소화가 안 되다 보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영어공부도 책 읽기, 글쓰기도 1년 내 다 손 놓고 있었다. 명색이 책 한 권 낸 사람인데 이렇게 본업을 내팽개쳐야 하다니. 1년을 맘대로 못 먹으니 나중엔 오히려 에라 모르겠다가 되어 버렸다. 소화가 되거나 말거나 과자도 먹고 빵도 먹고 탄산음료도 퍽퍽 마셔주고... 평소의 내 식생활과는 정반대로 되더라는. 생전 없던 악마 같은 식탐이 마구 샘솟더라는. 소화는 안 되는데 오히려 살은 찌는 기현상까지 생겨 버렸다.
근본적으로 놀바덱스를 안 먹어야 그에 따르는 부작용들이 줄어들 테고 현재 먹는 각종 약들 또한 줄일 수가 있다. 약을 덜 먹으면 자연적으로 소화기능도 돌아오겠지. 사실 항호르몬제가 불러오는 가장 나쁜 부작용은 자궁내막증이다. 지난번 산부인과 검진에서는 다행히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는 언제 자궁도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일. 마지막 남은 부작용 차례가 자궁이니까.
그래서 과감히 결심을 해버렸다. 더 이상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만 이쯤에서 멈춰야겠다고. 타목시펜이 재발률을 낮춰주긴 하지만, 그건 프로테이지일 뿐. 주변의 환우들을 보면 재발이나 전이는 그저 운명이라고 해야 할 경우가 많다. 일상을 오직 자신의 건강에만 신경 쓰고 살아도 누구는 재발, 전이가 된다. 또 누구는 그저 맘 편하게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아도 멀쩡하다. 나중에 혹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타목시펜을 중단해서 그렇다고 후회는 안 하기로 했다. 이 정도로 부작용에 시달렸으면 먹을 만큼 먹은 거다. 그 이상의 것들은 그야말로 하늘이 하시는 일인 것을.
그렇게 놀바덱스와 이별한 지 벌써 40 여일쯤 되었다. 일단 아침저녁으로 먹던 알약 두 개를 안 먹으니 참말로 편하다. 한 30일쯤까지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한 달이 넘어서자 조금씩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잠자는 약은 여전히 먹고 있지만 적은 개수로도 훨씬 잘 잔다. 밀가루만 안 먹는다면 소화력도 좋아졌다.
얼마 전 대만 여행 가서 하도 많이 걸었더니 집에 돌아와서도 자꾸 걸어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기더란 말이지. 몇 년 전 아들이랑 제주올레를 걸을 때도 그랬다. 한 3일 걷고 나자 그다음 날부터는 눈만 뜨면 자동으로 걷게 되더라.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걷는 게 참 좋았다. 평소에도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늘 걸었지만 이제 이걸로는 성이 안 찬다. 요즘 두 시간 정도는 걸으려고 노력한다. 대만에서처럼 아침 먹고 걷고 점심 먹고 걸으니 소화가 잘 되네.^^ 소화가 잘 되니 모든 일에 의욕이 생긴다.
유후! 요즘은 하루가 얼마나 알찬지 모른다. 운동도 영어도, 글쓰기도 재밌게... 심심할 틈이 없네그려~ 이제야 생활이 제자리를 찾는 듯하다. 그동안 참말로 고생 많이 했다. 토닥토닥 ~~~